들뢰즈의 책에서 떠올린 진전사터의 아늑함

누구나 책을 만나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큰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큰 감동을 받은 책이라 할지라도 세월이 지나면 언제 그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나 싶게 잊어버리고 만다. 아마도 세월이 지난 만큼 더 성숙해서일 것이다. 나에게도 큰 감동을 받았지만 잊고 만 책들이 꽤 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화이트헤드의 ‘과학과 근대세계’ 같은 책들은 대학교 1학년 때 자의든 타의든 만난 책이고 감동을 받은 책들이다. 지금 받는 감동에 못 미쳐서일까, 그때 받은 감동의 깊이를 잊고 말았다. 그후에도 감동을 받은 책들을 꽤 만났지만 솔직히 나는 왜 내가 그토록 감동을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이번 여름방학 때 만난 책이다. 큰 감동을 받았지만 세월이 지나가면 이미 만난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 감동이 줄어들리라. 어쨌든 큰 감동을 받아서일까. 이번 방학 이 책이 이끄는 대로 느끼면서 절을 찾아다녔다. 무엇보다도 진전사터의 탑에서 나는 들뢰즈를 강렬하게 느꼈다. 단아함을 느꼈고 그 단아함에서 우러나오는 긍정의 힘을 느꼈다.  

한적한 산 한 구석에 자리잡은 절터. 적막감과 한량함마저 느끼는 곳에 자리잡아서 그런지 절터의 탑은 더욱 힘 있게 다가온다. 숱하게 절을 찾아다녔지만 그때마다 잘 갖추고 있는 절보다 무언가 비어 있는 절터가 더 절실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이 한적한 곳에 탑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 보라. 한적함을 느끼면 느낄수록 탑은 그 빈 곳을 가득 채울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준다. 이래서 빈 절터의 탑은 더 위대하다. 진전사터의 탑이 바로 그러한 탑이다.    

나는 오륙년 전 서산 마애불을 보고 나서 위쪽으로 올라가 보원사터에 다다른 적이 있었다. 보원사터가 열릴 때의 그 느낌이란! 보원사터는 보원(普願)이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모든 것들 그대로가 원(願)이라는 것을 고요히 외치고 있었다. 그 아늑함의 깊이를 나는 아직껏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강원도 진전사터의 탑. 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라는 책을 읽고 있어서일까, 진전사터의 탑은 들뢰즈의 긍정을 담고 있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들뢰즈의 자살은 그의 철학만큼이나 의미롭겠지만 만약 그가 한반도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자기의 철학이 실현되고 있는 이 아름다운 광경을 더 누리기 위해서라도 그대로 살아 있지 않았을까.

박 인 성
불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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