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만 있고 대책은 없나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티켓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봤을법한 ‘문예진흥기금 475원’. 문화예술진흥기금(이하 문예진흥기금)은 문화예술행사와 사적지 입장료 부과금, 정부출연금, 이자수익금 등으로 조성되는 문화예술분야 공적 재원 중 하나다. 구매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내야 하는 준조세의 형태를 지니는 문예진흥기금의 모금은 1973년 시작됐으며 조성된 기금은 상업적 성격이 약한 문학, 미술, 연극 등 순수예술 분야에 지원됐다.

그런데 이러한 문예진흥기금 모금이 2004년부터 폐지된다. 이는 세금 중 준조세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겠다는 정부 방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논리에 따르면, 이를 통해 소비자의 부담이 줄어들 뿐 아니라 사업비가 국고지원체제로 전환되면서 문화예술계에 더 많은 지원이 보장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결정에 문화계는 “마음만 앞섰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하 문예진흥원)이 지난해 12월 전국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75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문예진흥기금 사업의 운영개선’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모금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2.6%에 불과하다.
한편 ‘현행제도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의견은 52%, ‘모금방법을 다소 변경하더라도 모금 자체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견은 43.6%를 차지했다.
이러한 결과는 정책 전환에 따른 몇 가지 문제점과 맥을 같이 한다.

먼저 2004년부터 지금까지 조성된 기금의 이자수익금만으로 지원사업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가 문제시된다.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금리 추세에 맞춰 매년 1천억원 이상의 국고가 추가로 문예진흥사업비로 투입되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매년 500억원씩 향후 5년 동안 문예진흥사업비 예상부족분 2천 500억원을 국고지원으로 충당한다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다음으로 소비자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이유에 근거한 문예진흥기금 모금 폐지가 실질적으로 소비자에게 이득을 주는가에 대한 지적을 할 수 있다. 원론적으로는 영화관람료 475원을 내려야하나 실제로 그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영화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즉, 정부의 정책변화로 이득을 얻는 쪽은 소비자가 아니라 극장과 영화 투자·배급사라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문제점들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문예진흥원 총괄협력팀의 한 관계자는 “현재 로또복권·경륜 등 국가 수익사업금의 일부를 문예진흥기금으로 돌리는 방안을 계획 중”이라며 “그렇지만 법제화가 되지 않을 경우 실질적인 가능성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현 모금 비율은 영화관람료의 11%를 영화진흥위원회에 해당하는 CNC에 내놓는 프랑스에 비하면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보다 안정적인 조성 체제를 통해 거대 자본가들에게 외면당한 비주류 장르에 대한 고른 지원을 한 것, 이로써 얻어진 문화 다양화는 그에 비해 훨씬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90년대 후반부터 연이은 영화 흥행으로 인해 일정 수준의 자생력을 갖게 된 문화예술분야. 그러나 지속적인 뒷받침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육성·발전시키지 않는다면 이러한 성과는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준조세를 줄이는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기에 앞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문제점과 대안을 고려하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과제이다. 허울 좋은 조세제 변화를 위해 어렵게 튼 문화기반의 물꼬를 막아버리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책은 분명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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