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도 참여민주주의로


도로시 넬킨 외 저
김명진 편역
잉걸 펴냄

 


최근 벌어지고 있는 위도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과학기술과 대중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일련의 TV 토론회나 관련 기관의 홍보책자에서 나타나는 전문가들의 상황인식은 일반인들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원자력 전문가나 관료들은 지역주민들이 핵폐기장 건설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로 핵 폐기장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꼽는다. 심지어 일부 관료들은 지역주민들이 핵폐기장을 핵폭탄과 동일시 여긴다며 개탄하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간단히 말하면 대중이 핵폐기장을 반대하는 것은 무지와 오해가 아니라 정부에 대한 불신과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이런 인식은 대중이 과학기술에 무지하다는 ‘결핍모델’에 기반하고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대중은 과학기술에 무지해 전문가로부터 정확한 지식을 공급받아야 할 수동적 존재로 인식된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향식의 ‘과학대중화’라는 접근이 이런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결핍 모델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맥락 모델’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은 대중들의 과학이해가 그들이 처한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여러 연구결과에 의하면 과학과 대중 모두를 단일한 실체로 상정하는 것 그리고 과학지식의 공급이 늘면 과학에 대한 신뢰가 증가한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대중과 과학기술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인가. 학계와 시민단체를 넘나들면서 활발한 연구활동과 글쓰기를 하고 있는 김명진씨가 편역 한 ‘대중과 과학기술’은 과학기술과 대중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잘 보여주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1부에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적 통념을 무참히 깨부순다. 때에 따라서 과학은 ‘과학적’이지도 않고 자연세계를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하지도 않으며 과학자 사회가 언제나 합리적인 것도 아니라며 과학기술에 대한 ‘신화’를 도발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뒤이어 대중의 과학이해에 관한 모델들을 개괄한 후 그 함의까지 살펴보고 있다. 2부에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 논쟁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분석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논쟁이 일어날 때 이것을 예외적인 사건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편역자의 주장은 사뭇 다르다. 오히려 이런 논쟁은 정상적인 것이며 나름대로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편역자가 꼽은 긍정적 역할은 논쟁 공간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엿볼 수 있고, 비공식적인 기술의 영향에 대한 평가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책의 끝 부분도 한국사회에서는 꽤나 생소하고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과학기술영역 또한 참여민주주의 적용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의 민주화’라는 개념을 상세히 정리했다. 흥미로운 점은 과학기술의 민주화가 정책결정 과정의 시민참여 뿐만 아니라 ‘지식생산의 민주화’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대중과 과학기술의 상호관계에 대해서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하려는 의도로 구성돼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내 사례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과학기술을 균형 있게 이해하고 판단하려고 할 때 혼란과 애매함을 느끼는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다. 

김 병 수
국민대 과학기술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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