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한총련 합법화 움직임이 5.18시위, 스트라이커 부대 시위 등을 계기로 논란이 계속되면서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사는 지난 29일 팔정도에서 ‘한총련 합법화, 왜 늦어지는가’를 주제로 거리토론회를 개최했다.
한총련에 대해 누구든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장을 통해, 한총련합법화에 대한 학내구성원들의 여론은 어떠한지 살펴보았다.    편집자


지난달 29일 오후, 팔정도에서 열린 거리토론회의 분위기는 토론의‘치열함’이라기보다 ‘기다림’이었다.
때로 발길을 멈추는 이들도 있지만 방청석으로 걸어와 앉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몇 개의 빈 방청석에는 햇볕만 쏟아지고 있었다.
허전하기는 불상 앞에 놓인 패널석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한 패널부터 어쩔 수 없이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선 패널도 있었다. 마지막에는 달랑 두 명의 패널만이 자리를 지켰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날 토론에 알맹이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패널토론 후 진행한 ‘방청객 자유발언대’는 우리에게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자연스럽게 방청객과 패널의 대화가 이뤄져 교직원의 격려발언부터 한총련의 운동방향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광장으로’나왔다. 
건물 바깥으로 첫 나들이를 한 토론회. 이 자리에서는 ‘시선’만을 남기고 간 이들까지도 모두 방청객이었다. 그리고 토론회를 향한 수많은 무관심한, 혹은 호기심 어린 표정들 또한 중요한 ‘발언’들이었다.

 


한총련 합법화 논의의 의미

박순성(북한학과 교수, 이하 박)=한총련의 이적규정 철회 문제가 우리사회의 의제로 등장한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우리사회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이제는 한총련의 이념도 일정정도 허용해야 한다.
주진완(국교4, 이하 주)=한총련 합법화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한총련의 주장이 북의 주장과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에 보장돼 있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통일운동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보안법 철폐의 문제이다. 세 번째는 학생운동의 대중화 문제이다. 학생회장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해 몇 백 명씩 수배되는 현실이 학생운동의 대중화를 더욱 어렵게 한다.   


스트라이커부대시위를 보고

김현정(사과대1, 이하 김)=한총련 합법화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이루어내야 할 문제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한총련도 기다리고 참으면서 절제된 방법을 쓸 필요도 있다.
이번 스트라이커부대시위도 그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과연 ‘부대내 진입까지 해야했나’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러한 행동 때문에 위험한 세력이라는 오해만 사지 않았나.

주=활동 자체가 아니라 그 활동에 대한 언론의 시선이 문제인 때가 많다. 언론은 한총련 학생들이 단순히 “장갑차에 올라탔다”는 자체만 부각시키고 있다. ‘왜 그랬는가’에 대한 보도는 없다.
박=언론도 문제이긴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언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황, 즉 기성사회 구조적 책임도 있다.

사실 유럽의 평화시위에 비하면 스트라이커부대 시위 자체는 평화적이었다. 다만 기존의 가치를 ‘깨려면’ 형식과 의식의 복합적 측면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한총련에게 남겨진 과제는

주=형식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 국민들의 의식수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거기에서 합법과 불법이 판가름난다. 예를 들어 한보비리와 IMF 등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던 97년 김영삼 정부 말기에, 가두시위는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같은 가두시위라도 지지를 받지 못할 때가 있다. 문제는 형식 자체에 있지 않다.
김=지금은 그 때와 상황이 다르다. 한총련도 변화해야 한다.

먼저 운동권적 말투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써야한다. 예를 들어 ‘투쟁’이라는 단어는 일부 운동권 이외에는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알아들어도 거부감이 느껴진다.
박=미국에 대한 비판이나 북한에 대한 인식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북의 주장 또한 너무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비판할 것은 비판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총련 내부에서 원칙을 버리느니 차라리 합법화하지 말아야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 인정받고자 하는 원칙을 위해서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주=한총련의 주장은 북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우리 자체의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형식적 유사성으로 문제삼아서는 안 된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가 북에 대해 경직된 생각을 갖고 있어 그런 오해가 자꾸 생긴다고 본다.

또한 원칙과 합법화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대중운동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합법화의 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법화다. 학생운동의 대중화, 사회적 합법화를 위해서도 이적의 굴레는 벗겨줘야 한다. 그것이 선결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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