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한 시선에 담긴 따뜻함 감동적

한창 취업준비에 몰두해야 할 졸업년도. 때아닌 영화열풍에 휩싸여 하루평균 대여섯편의 비디오를 보던 시기가 있었다. 신작 선정에는 한계가 있는지라, 어떤 영화를 봐야하는지는 삶의 화두가 되다시피했고, 비디오가게에 들리게 되면. 선택의 기로 앞에서 늘 많은 고민들을 하곤 했는데 친해져버린 주인 아저씨나 옆에서 영화를 고르는 낯선이들의 혼잣말같은 영화평을 참조하는 경우가 자주 있곤 했다.

그렇게 영화를 골라주던 주변인들이 관람을 100% 적극 만류했고, 또 내가 권해서 보게 됐던 다른 사람들에게 100% 혹독한 공격(?)을 받았던 곽경택 감독의 ‘닥터K'.
적어도 내 주변에선 완벽에 가까운 혹평을 받았던 영화를 두 번 세 번씩 기억날 때마다 되풀이봤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어렴풋하게 여전히 느껴지는건. 어떤 ‘따뜻함’ 때문아 아닐까.

이상한 능력을 가진 신경외과 레지던트가 회생불능의 환자들을 살려내고, 자신에게만 마음을 연 악성 뇌종양 환자를 살려내기 위해 애를 쓴다는 고만고만한 이야기 속에서 보면서 눈물까지 흘렸던건,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누군가를 위하려 하고, 그 배려를 소중히 조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느껴졌던 따뜻한 시선이 마음깊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어느 한 장면에서 느껴지는 조그만 느낌만으로도 그 영화는 충분한 가치를 갖게 된다는 소중하고도 뻔한 교훈까지 덤으로 얻었다.

감독의 전작 ‘억수탕’의 끝 무렵. 여주인공이 평화롭게 목욕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둘러보는 장면이 있다. 미소 짓는 여주인공과 더불어 나 또한 웃을 수 밖에 없었던. 따뜻하다! 따뜻하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울 정도의 시선이 다른 분위기로 베어있는 영화 '닥터K'.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목숨과 환자의 목숨을 바꾸려는 의사와, 고마워하며 그 배려를 뿌리치고 떠나는 환자. 눈물까지 흘리면서 감동받았다면, 혹자는 그럴테지. 매트릭스의 네오가 죽은 트리니티를 살리는 장면을 보고 울었다는 정신나간 놈이 여기 또 있구나.
사람들의 사는 모양새가 각박해지고 내 자신의 여유없음이 서늘하게 다가오는 가을저녁, 홀로 영화한편 보다가 마음 포근해지는 소중한 경험을 다른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 추천의 이유는 단 하나... 따! 뜻! 함!


이 창 용
중앙도서관 학술정보관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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