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략가

1985년 필자는 미국 Emory대학에서 알제리 태생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 자끄 데리다의 ‘쉬볼레쓰(Shibboleth)’라는 제목의 강연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쉬볼레쓰는 구약성경 사사기에 나오는 ‘곡식의 이삭’ 또는 ‘알곡’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방언으로, 이 단어를 발음할 수 있는가를 봄으로써 셈족의 두 종족인 에브라임과 길르앗족을 구분, ‘슈(sh)’ 발음이 없어 ‘스(s)’발음으로 할 수밖에 없는 에브라임족 도망자를 길르앗족의 국경경비대원들이 색출해 처벌하는 장치로 삼았다고 한다. 데리다는 이 강의에서 바벨탑 붕괴 이후에 언어가 분화되어 결국 인간은 그 이래로 원래의 바벨탑을 다시 구성하기 위한 ‘상징적 죽음’을 구성하는 언어적 노력이라는 자신의 프로젝트의 단면을 제시했다.

이 강의 이후로, 필자는 현대철학에서의 언어적 전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어 데리다의 철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데리다는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니체와 하이데거의 문맥에서 해체주의의 계보학을 이루었고 롤랑 바르트, 미셀 푸코, 자끄 라깡 등과 함께 포스트구조주의를 구성하여, 포스트모던적인 문화현상에 이론적 선구자로 남게 되었다.

데리다의 전략은 오랜 시간과 집중을 요하는 문체로 제시되어 있지만, ‘하얀 신화(White Mythology, 1972)’에 비유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고대의 동전(medallion)이 장구한 세월 끝에 양면에 새겨진 화폐로서의 명목가치가 지워져 단순히 동전의 형태만을 지닌 채 그 실질가치를 상실하는 결과를 나타내게 되는데, 언어적 기호가 바로 이 동전을 대변, 역사적 기록과 인류의 기억 속에 본질가치는 사라졌지만 존재한다는 역설적 논리를 함축하고 있다. 언어가 표출하고 있는 존재의 의미는 프로이드의 글쓰기 패드에서처럼 지워졌지만 존재한다는 부재의 존재를 나타내는 말이다.

데리다의 구체적 전략은 명목과 실질을 동시에 이중부호화한 글쓰기에서, 자세히 읽기와 명상적 정독을 통해 이중해독을 행하게 되는 가치의 재창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전략을 위해 데리다는 차연(differance), 흔적(trace) 등을 전략적 개념도구로 삼는다. 이를 통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음성중심주의, 로고스 중심주의의 이분법적 사고구조를 구성하고 있는 서구 형이상학의 극복을 위한 열린 구조의 사변이라는 대안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자아도취적 편견과 익숙하고 인지한 것에 대한 집착은 우리 삶의 현장에서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열림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니체, 하이데거 사상의 맥을 잇는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사고의 틀과 전략은, 우리 자신의 세계관을 돌이켜보고 나의 일상생활을 반영하게 해준다. 또한 고급문화와 하급문화의 경계선이 허물어진 포스트모던 시대의 대중문화를 체험하는 평범한 일상의 우리에게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틀을 던져, 열린 사고와 열린 세상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김영민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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