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력 약한 연출력 ‘반전’ 외침 허공으로”

‘나는 인간이다’는 극단 기린이 ‘작은 극장 개관 기념 레파토리 4’로 올린 연극이다. 운명도 필연도 아닌 인류의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지만 그러면서도 너무나 쉽게 잊혀지고 있는 우리의 과제인 바로 ‘전쟁’을 다룬 작품으로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장에 내던져진 한 병사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 비인륜성, 죽음의 공포 등을 의식의 흐름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전쟁’. 결코 쉽게 얘기할 수도, 가볍게 지나칠 수도 없는 무거운 주제이며 그렇다고 잠시 뒤로 미루어서도 안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세계 인류의 어느 누구도 전쟁의 위협과 위험에서 완전하게 안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인류 공통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는 우리에게 각성하길 바랬던 것일까. 그는 전쟁이 무섭다고 말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반전을 외치는 것이고 그 방법이 바로 ‘연극’이라고 한다.

관객은 연극이 재미있기를 기대하고 공연장을 찾아간다.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도 관객이 감동 받기를 기대하고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거운 것이든 가벼운 것이든 주제의 무게감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연극은 어떻게 재미있게 연극적으로 풀어냈느냐(연극이라는 형식으로 관객을 만나고자 했다면)와 어떠하게 관객을 만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소극장 가는 길에서 마주친, 포스터를 쓰레기더미 차에 붙여놓은 장면에서 비롯된 불쾌함을 억누르고 찾아간 공연의 연극적 문법이나 원리, 기술에 대한 논의는 뒤로 제쳐두고라도, 텅빈 무대에 이유없이 세워진 초라한 세트는 개연성 없는 배우들의 행동을 보여줬고, 철학적이고 시적인 대사와 몇몇 상징적인 동작들 그리고 이와는 달리 너무나 일상적인 의상과 소품은 양식의 혼란과 부조화를 낳았으며, 이미 이야기의 전개와 주제의 전달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는 부연의 또 부연적인 장면들은 결국 관객에게 억지스러운 감정의 동요와 슬픔만을 강요하고 있었다.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사색은 연극을 보고 난 후 여운으로 가지고 가는 관객의 몫이다. 배우의 연기가 철학적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연극은 이와 같은 주제를 인물 상호간의 갈등과 극적 전개에 의지해 보다 재미있고 동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로 꾸며야 하는 것이다.
또한 희곡의 대사도 마치 소설처럼 수없이 많은 미사여구나 시적이고 낭만적인 어구들로 꾸며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모든 과오로 인해 ‘나는 인간이다’는 연극이 관객에게 행하는 가장 큰 폭력인 지루함을 낳았다.

연출가(작가)는 적어도 가장 기본적으로 자신의 철학을 얘기하고 함께 나누기 위한 방법으로서 연극이란 예술을 택했다면 연극은 관객의 존재로서 창조의 완성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반전(反戰)을 이야기하기 전에 어떻게 관객을 만나고 호소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객의 존재부터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송 효 숙
본교 교양강좌 ‘연극의 이해’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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