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의 정취 느낄 수 있는 벌교 가슴에 새겨

내 생애 최고의 여행지라?
집사람이 이 글을 읽을 확률이 매우 낮을 터이니 좀 솔직해지자. 아내가 아닌 한 여인을, 그것도 유부녀를 만나고 짝사랑에 안타까워하던 20여년 전의 그 곳을 손꼽아야 하겠다.
유난히 큰 가슴 때문에 고민하고 봉숭아꽃과 치자꽃을 좋아하던 여인, ‘쫄깃쫄깃한 겨울 꼬막맛’에 비유되던 여인, 바로 빨치산 강동식의 아내 외서댁을 나는 짝사랑했었다.
 
그러니 내 생애 최고의 여행지는 바로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전남 벌교이다.
내가 최근에 펴낸 ‘태백산맥 문학기행’(해냄출판사)이라는 책에서 주로 다룬 것도 바로 벌교이다. 이곳이 왜 최고의 여행지냐고? ‘태백산맥’을 읽지 않은 자는 모른다. 그분들은 더 이상 이 글을 읽지 말라.

80년대 작품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벌교를 정작 실제로 가본 것은 1995년이었다. 조정래 선배와 함께 찾아간 벌교의 도로표지판에서 ‘외서’라는 지명을 만났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외서댁의 친정 외서나 그미가 살던 회정리 뿐이 아니다. 벌교는 온통 ‘태백산맥’이다. 정하섭이 순천에서 벌교로 숨어들던 진트재, 소화가 그를 감춰주었던 현부자네 별장, 빈농들이 개돼지 취급을 받으면서 쌓아올린 중도방죽, 염상구의 아지트였던 청년단, 그리고 아, 율어 해방구.

벌교에는 그 무대들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도로표지판들 하나하나가 작품을 연상시키며, 심지어는 카페나 선술집 이름조차도 ‘태백산맥’이다.
벌교에서 ‘태백산맥’은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50여년 전의 작품 무대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까닭은 물론 근대화에 소외된 ‘낙후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때나 이제나 벌교는 중앙에서 너무나도 먼 곳. 우리 생명의 젖줄이면서 늘 수탈 당해야 했던 우리 농촌의 상징이다.

세계화라는 강자의 논리는 농업개방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농촌은 더 이상 퇴로가 없다. 우리의 외서댁은 오늘도 농약중독에 시달리면서 밭고랑에 엎드려있다. 벌교는 ‘최고의 절망’이 되고 말 것인가.

한 만 수
문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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