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성격 쭰 … 자유로운 소통문화 모색

학회와 동아리 등 각종 학내 자치모임은 8, 90년대 학생운동의 중요한 기반이었지만, 이들 역시 변화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이에 학회 및 동아리의 현황을 살펴보는 동시에 당 학생위원회 등 새로운 학내 정치세력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아울러 그동안 3차례에 걸쳐 진행됐던 기획을 바탕으로 본교 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본교 학생회관 2층에 밀집한 중앙학술동아리들은 한 때 활발한 활동으로 학외에서도 유명했지만, 지금 그들은 스스로 ‘명맥유지가 급한 상태’라고 말한다.
“선배들이 해 왔던 조직적인 ‘운동’은 이제 힘들다고 봐요. 동아리의 성격도 학술에 더욱 맞춰가고 있구요. 다만 사회문제에 대한 토론을 자주 하려고 노력하는 정도지요.”
회장을 맡을 사람이 없어 2년째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민족사연구회 김명화(신방3) 양의 가장 큰 과제는 동아리의 안정적 운영이다. 적극적으로 동아리 생활을 하는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 다른 학술동아리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맑스철학연구회는 졸업선배를 제외한 회원이 8명 정도에 그칠 정도다.

학술동아리들은 점차 세미나 등 학술적 활동에 무게를 두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민중미학연구회에서 “운동권 냄새를 풍기는 ‘민중’이라는 단어를 떼어버리자”는 논의가 일었던 것은 이 같은 정체성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학생운동에 적극적이었던 탈, 문학회 등 공연 및 문예 중앙동아리들은 그나마 공연, 문예 등의 활동에 집중할 수 있기에 이들 만큼 ‘주저앉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획일적 문화에 질리다

학회·동아리 쇠퇴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보통 학부제 도입과 개인주의 심화·대중소비문화의 범람 등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내부의 획일적인 소통문화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동국문학회 이동철(독문3) 군은 “학생운동이 도덕성에 큰 타격을 받고 정부에 집중포화를 맞았던 97년 이후부터 학생운동이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해 경직되고 폐쇄적인 문화를 형성한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가르치기식’ 소통, 다양한 생각을 인정하지 못하는 억압적 분위기가 형성돼 동아리, 학생회 등 대학 곳곳에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부의 ‘일상적 파시즘’을 반성하고 다른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학회, 동아리들 또한 거의 동의하고 있는 부분이다.
다른 학회에 비해 비교적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는 야간대 학술 소모임 ‘여명’ 의 정재승(국제통상2) 회장은 “여명회원들의 정치성향을 묶는 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일부러 다양한 생각을 나누기 위해 ‘신문읽기’시간을 통해, 정해진 커리큘럼 없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자 일부의 생각으로 치부하고 말았던 다소 보수적인 견해를 회원들이 직접 제시하는 빈도가 많아졌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면에서, 지난 7월 본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보수주의연대’ 커뮤니티는 그동안 대학 내에서 소외돼 온 보수를 위한 소통공간을 자발적으로 마련했기에 주목할 만 하다. 커뮤니티를 만든 김 모(교육2) 군은 “보수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많은 주위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사이버 공간에서나마 자유롭게 나눠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외에 정치적 목소리를 가진 다른 자치단체들도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본교생 개혁당 학생위원들의 모임을 준비하고 있는 이홍범(화공3) 군은 “개혁당의 기치는 생활정치니 만큼, 학생들 일상 속에서 이슈를 찾아 정치적으로 이슈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당처럼 전국적인 조직은 아니지만, 본교와 성균관대 등 네 개 대학을 중심으로 한 ‘노동해방학생연대’ 또한 다음달에 출범할 예정이다.


‘동악의 소통’을 위해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학교는 학내·외 사안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내놓고, 논쟁하고 여론을 만들어 가는 분위기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소위 ‘힘’도 없는 것이겠지요”
학생운동에는 관심이 없다던 김 모(신방3) 양의 말은 본교 학생사회의 경직된 분위기에 대한 비판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일반 학생들 사이에서도 소통로가 닫혀 있는 본교 학생사회의 현실에 대한 비판은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그동안 본 기획을 통해, 학생운동을 이끌고자 하는 이들이 제시한 ‘과제’와 맞닿아 있다. 그동안 제시됐던 대로 ‘학생들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슈화하는’ 혹은 ‘작은 소통이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활동이 학생운동이라면, 이는 곧 각자의 의견이 자유롭게 오가는 학생사회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시로 의견대자보가 붙고, 학생회 선거에는 각양각색의 선거운동본부가 출마해 다양한 담론의 ‘대결의 장’이 되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의 학교가 그나마 ‘대안’으로 꼽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힙합동아리부터 학술동아리까지 학내 80여 개 자치단체가 함께 반전대책위원회에 참가해 활동하는 모습을 본교에서는 쉽게 기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폐쇄적·억압적인 의사소통구조 개선, 동원되는 활동이 아닌 스스로 ‘주인이 되는’ 활동, 학생운동개혁을 위한 처방은 이제 너무나 익숙하다. 결국 남은 것은 자신의 생각을 용기있게 말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주 상식적인 실천일지도 모른다. 개인부터 소모임, 동아리, 각 학생회들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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