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맑시스트이자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

한편에서는 대선자금이, 또 한편에서는 카드 빚으로 인한 범죄가 온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음습한 지하 주차장에서 검은 돈을 건넨 구태의 주역은 “대한민국은 이미 새로워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한 기업이었다. 350여만 명 신용불량자의 상당수는 필시 “부자 되세요” 혹은 “능력을 보여주세요” 라는 말에 고무되어 신용카드를 맘껏 사용했음에 틀림없다.

실재와 기호(혹은 상징)와의 아득한 거리, 그 끝의 간 데 없는 균열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이 난감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 할 때, 우리는 프랑스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1929 ∼  )를 만나게 된다.
장 보드리야르의 사상적 궤적은 대체로 두 시기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사물의 체계’‘소비의 시대’‘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등을 저술했던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로, 1968년 5월의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네오-맑시스트로서 활동했던 시기였다. 스승인 앙리 르페브르의 세례를 받은 맑시즘에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의 기호학과 구조주의를 접목한 그의 화두는 ‘소비’였다. 그에게 있어 소비란 사회적 제도이자 강제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는 소비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기호의 질서라고 단언하면서, 기호가 은폐하는 이 세계는 필연적으로 불안과 공허, 무기력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장 보드리야르의 두 번째 시기는,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로서 명성을 확인시킨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의 자장 위에 놓여 있다. 시뮬라크르(simula cre)·시뮬라시옹(simulation)이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인공물 혹은 그 행위를 뜻하는 용어이다.

그에 따르면 시뮬라시옹은 참과 거짓, 실제와 상상세계 사이의 차이를 위협한다고 한다. 나아가 “자본은 사실성의 기호들만을 증폭시키며 시뮬라시옹의 유희를 가속화할 따름이다"고 규정짓는다.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Hyper-reality(파생실재 혹은 과실재), 기호만 남아 실재를 대체하는 현상인 Implosion(함열 혹은 내파) 등의 용어도 포스트 모더니즘 이론가로서의 장 보드리야르를 알려주는 개념들이다.

때로는 극도의 냉소와 허무주의적 전망 때문에 ‘진부한 형이상학자’로 혹평 받기도 하는 장 보드리야르. 그는 여전히 소비, 기호, 상징, 광고, 미디어, 이미지의 의미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는 문제를 던졌고, 해결은 이제 우리 몫이다.

엄 창 호
광고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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