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자생적 학문지형,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
교수신문 역음
생각의 나무 출판


우리나라의 자생적 학문의 지형은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아직 뚜렷한 굴곡을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생성·변화·발전의 단계를 거치며 형성되고 있는 상태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를 통해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자생성과 구체성, 독창성과 현실성을 잣대로 도출한 20개의 ‘현대 한국의 우리 이론’을 담고 있다. 지식의 종속성과 허구성을 극복하려는 학계의 논의와 노력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각 이론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이론의 현재적 의미도 눈여겨 볼만 하다. 이를 통해 자생적 학문의 가능성을 진단해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이 곧 책 제목 그대로 오늘의 우리 이론, 그 활로를 모색해 보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책에서 살펴보고 있는 자생이론에는 △민중사건에 바탕한 민중신학 △김용옥의 동양학 △경제성장론의 입장에서 본 내재적 발전론 △강만길(상지대 총장·사학) 교수의 분단극복사학 △김지하의 생명사상 △송두율(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의 내재적-비판적 접근 △최장집(고려대 정치외교학) 교수의 한국민주주의론 등이 있다. 이러한 이론들 중 특히 주목되고 있는 탈식민주의 글쓰기와 분단체제론, 온생명 사상에 대한 평가와 의미를 살펴본다.


■탈식민주의 글쓰기- 조한혜정(연세대 사회학) 교수, 김영민(한일장신대 철학) 교수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책읽기 현상을 보면, 이론을 좋아하기만 할 뿐 자신의 일상과 현실을 읽어내는 성찰적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1·2·3’를 통해 탈식민주의 논쟁을 촉발시킨 조한혜정 교수는 이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이를 테면 우리의 삶과는 괴리된, 이른바 ‘수입’된 학문의 문제점이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    

이러한 문제의식은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에서 중심적으로 이론화 한 김영민 교수의 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그에 따르면, 탈식민주의 글쓰기는 개념 이전의 ‘실천’ 그 자체다. 단순히 수입된 학문에 대한 설명과 의미 해석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니라 우리의 상황과 맥락 속에서 나오는 글쓰기로서의 인문학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이론 중에서 ‘탈식민주의 글쓰기’가 가장 돋보이는 ‘우리’ 이론으로 꼽히는 이유도 앞서 말한 것처럼 자생적 학문 모색이라는 점이 형식적 측면에서도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김정근(부산대 문헌정보학) 교수는 이러한 탈식민주의 글쓰기 논의에 대해 “시각적 종속성의 폐해와 비효율성에 대한 성찰, 학문 후속 세대를 유도하는 길잡이 역할의 측면으로 볼 때 주목할 만 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모색’의 권경우 편집장은 “현실적으로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삶의 글쓰기가 되지 못하는 게 문제”라며 논의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분단체제론- 백낙청(전 서울대 영문학) 교수


‘민족문학론’의 창시자로 불리는 백낙청 교수는 민족문학운동의 중요한 요인이 분단현실에 대한 관심이라고 보았고, 이러한 그의 문제의식은 “한반도 분단 현실을 좀더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보되,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보려는 이론적 모색”으로 나타났다.
그 과정의 산물이 바로 분단체제론이다. 한국사회의 모순을 ‘분단’으로 설정하고, 세계체제를 구성하는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이 분단체제라는 매개항을 통해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어떻게 발현, 작동해왔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김윤철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원은 이러한 분단체제론에 대해 “정파논리에 머물던 분단과 통일 문제에 대한 논의를 보다 공개된 장에서, 보다 확장된 주체를 통해 수행할 수 있게끔 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남북한 사회의 현실 분석 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관점에서 분단현실을 극복해야 하는가라는 대안제시까지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분단체제 극복 문제에 대한 비판적 해석도 있다. 이수훈(경남대 사회학) 교수는 “분단체제론에서 분단극복의 무게중심은 한반도의 통일을 넘어 한반도 전체의 개혁, 즉 기득권세력의 혁파와 그에 따른 사회개혁에 두고 있다”며 “개혁과 쇄신의 종착점이 통일이라고 보는 분단체제론은 통일론이라기보다는 개혁론에 가깝다”고 평했다.  
한편, 본교 박순성(북한학) 교수는 “분단의 역사와 전망에 대한 체계적 연구에 기초해서 분단체제라는 개념을 분석도구로 발전시키고, 핵심 명제를 체계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온생명 사상- 장회익(녹색대학 총장·물리학) 교수


인간과 동식물 등의 개체생명들은 필수적으로 상호연관 돼 있으며, 개개 생명들은 ‘어떤 진정한 하나의 생명’ 속에 포함되어 있는 생명의 부분들일 뿐이다. 이는 장회익 교수가 말하는 온생명 사상의 핵심이며, ‘어떤 진정한 하나의 생명’이 바로 ‘온생명’이다.
“현대 과학이 생명에 대해 의미 있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으면서도 정작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만족스런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장 교수는 생명의 외연을 외부의 도움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자족적인 단위로 보고 그 계에 있는 것을 온생명으로 바라본 것이다.

정정호(중앙대 영문학) 교수는 이 이론에 대해 한마디로 ‘종합과 혼융’이라고 특징짓는다. “인문학적 사유와 함께 생명론을 종합하고 서구의 과학사상과 동양사상을 혼융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는 것이 그의 평. 하지만 “동양의 직관과 서양논리가 어떻게 결합할지 구체적이고 실천적 사례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온생명 사상을 “창의적인 철학적·생태학적 개념”으로 바라본다는 이봉재(서울산업대 과학철학)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생명 개념이 지적 동조자를 얻는 데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새로운 경험과의 연관이 모호해 생산성을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