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스미스(A. Smith)가 스코틀랜드 계몽사상을 선구한 도덕철학자이자 으뜸가는 고전경제학자임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경제학에 공헌한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가 그린 사회질서에 대하여 스스로 어떤 도덕적 평가를 내렸는지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글은 그 당시 정경유착과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불공정한 중상주의 경제체제를 청산하고 이를 대체할 고전적 자유주의를 선구한 아담스미스의 사상과 고전 경제이론을 국부론을 중심으로 간략히 소개한다.
고전 경제학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맬서스의 ‘인구론’, 리카도의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그리고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등으로 구성된다.
또한 사상 계보상으로 보면 리카도의 노동가치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자본론’을 저작한 칼 맑스도 넓은 의미에서 고전경제학파로 분류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자본주의의 통렬한 비판자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핵심을 이해하고자 고민했었으며 특히 ‘국부론’과 ‘자본론’사이의 이론적 계승과 단절이란 이율배반적인 문제를 놓고 처절한 고뇌를 했기 때문이다. 자본론이 정치경제학 비판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이러한 고전경제학의 저작은 그 당시 영국의 시대적 과제에 대한 답을 하려는 노력을 집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사상적 원류를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국부론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그런데 200여 년 전에 영국의 중상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개혁의 청사진으로 제시된 국부론을 새삼 연구한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한국이 1997년 말에 외환위기를 맞아 사회와 경제의 구석구석에 시급한 해결을 필요로 하는 국가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의문은 당연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전경제학이란 시대를 초월하는 사상과 이론의 보고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경제사상과 관련된 문헌을 읽게 되면 그 당시 사상가들이 고뇌했던 개혁과제들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현실문제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데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국부론의 탐구는 학문적 거목인 저자의 문제의식과 사명감 그리고 사고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 개혁과 범세계적 지식·정보화의 물결이 우리 사회의 발전에 의미하는 바를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이해하고 세련된 추론 방법을 터득하는 데 적지 않은 시사를 받게 될 것이다.
스미스는 그가 소망하는 사회질서를 ‘완전한 자유의 사회’라고 불렀다. 국부론에서 그는 사회구성원 각자가 스스로 선택한 목적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를 찬양했다. 이러한 자유의 부산물이 바로 사회전체의 총체적인 선으로 되돌아오며 가난한 절대 다수를 번영의 길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자유 사회의 경제적 동인을 찬양만 하지 아니 하였다. 개인적 부의 추구를 위한 본능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갖는 생산력의 힘을 인정하고 찬양 하면서도 무분별하고 불공정한 방법으로 부를 쌓으려는 중상주의 체제는 도덕적으로 공감할 수 없다고 보았다. 세간에는 종종 아담스미스가 자본가의 이익만 옹호하는 사상가로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국부론 제1권에 다음 인용문은 그가 품었던 문제의식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어떠한 사회라도 그 구성원의 대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는 결코 번영하고 행복할 수 없다. ……(중략)…… 노동 빈민 즉, 국민의 대다수가 가장 행복하고 안락하게 보이는 것은 사회가 이미 충분한 부를 획득했을 때보다는 오히려 사회가 부를 점점 더 획득하기 위하여 전진하고 있는 진보적 상태에 있을 때이다. 노동빈민의 상태는 부가 정체상태에서 어렵고 쇠퇴사회에서는 비참하다. 진보하는 사회 상태는 실제에 있어서 사회의 모든 계급이 유쾌하고 즐거운 상태이다. 정체적인 사회는 활기가 없고 쇠퇴적인 사회는 우울하다.”
여기에서 국부론의 사상적 기초를 분명히 해 두고자 한다. 국부론은 자연적 자유의 체계(자연법사상)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는 곧 ‘보이는 손(국가)’인 정의의 법과 원칙의 지배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는 손 (시장)’인 시장질서가 국부증대와 공평한 소득분배라는 공동선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그 당시 시대사조인 중상주의를 신봉하는 부패한 권력을 매개로 소수의 거대 상인과 대자본가들이 누렸던 독점과 배타적 특권을 옹호하는 기존체제를 청산(체제개혁)하지 아니하고서는 더 이상 시장이 다수(서민대중)의 권익에 봉사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가 꽃을 피우려면 무엇보다도 정부가 먼저 특정의 제도적인 틀을 고안해야 하고 또한 과거의 생산양식을 주도했던 뿌리 깊은 전통과 지배를 탈피하여 사유재산, 자유노동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체제란 제도의 틀 안에서 누구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직업 노동을 통하여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런데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경제 성장이다. 경제 성장이란 노동생산성의 지속적 향상이다. 이 생산성 향상의 지름길이 바로 사회적 분업이며 분업의 정도는 시장의 크기에 달려있다. 시장이 클수록 분업과 교환의 이익이 증진되며 그 결과가 생산성 향상과 경제 성장이고 인간사회 번영의 기반이다.
인간은 사회적 분업인 직업노동과 시장 교환을 통하여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정신생활도 크게 윤택해 질 수 있다. 예컨대 내가 입고 있는 옷 한 벌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행한 분업의 산물이 모여서 시장에 통하여 나에게 전달된다. 내가 읽고 있는 책 한 권도 수많은 전문가의 생각이 모여서 보다 나은 생각을 형성하고 이러한 저자들의 작품이 시장을 통하여 내가 읽고 배우며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는 양식을 제공 받는다.
풀어 말하면 세계의 만인은 실로 엄청난 연기의 세계 속에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어찌 대자대비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회과학에서 이러한 연기의 세계는 사회적 분업과 협력과정인 시장이란 교환 질서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시장에서 직업노동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사익추구 행위이지만 그 결과는 이타적이다.
이렇게 보면 국부론은 단순한 경제이론서이기 전에 국부에 관한 혁신적 사상서이자 사회개혁의 지침서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분업과 협동질서, 나아가 상생의 질서원리를 보다 정교한 이론으로 재구성한 것이 바로 후생경제학의 두 가지 정리란 점을 상기하면 국부론의 현대적의 의의는 자명해진다.

장오현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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