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만든 감옥 그곳에서 찾은 자유”

영화계가 오랫동안 꺼려왔던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대담하게 건드린 영화 ‘선택’은 “당신의 생각에 반대하지만 당신의 생각을 억압하는 이들과 싸울 것”이란 볼테르의 경구로 시작한다.
이어 차가운 감옥의 이미지와 함께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꿈은 꿀 것”이라는 김선명의 나지막한 나레이션. 감옥 안에서 비로소 자유로운 그의 꿈이 바로 선택의 대상이다.

이 영화는 ‘감옥 갈 각오’로 시나리오를 썼을 만큼 민감한 소재를 다뤘을 뿐 아니라 지난 88년 서울대 총학생회 조국통일위원장을 역임한 배우 김중기가 주인공 역할을 맡아, 제작 초기부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물론 거기에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영향력을 통해 가려져 온 한국사의 진실이 들춰지기를 바라는 다소 정치적인 바람을 가진 이들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실존 인물을 극화한 여느 영화처럼 주인공을 영웅화시켰으리라는 추측과 달리 ‘선택’은 매우 담담하게 ‘김선명’이란 인물을 그려낸다. “북과 남을 먼저 혼인시켜놓고 하려고 본인은 아직 총각”인 그는 5.16 당시 ‘남한의 모스크바’라고 불리는 대전형무소에 모인 8백명의 좌익수 중 한 명으로 45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인물이다.
영화는 사회주의나 통일에 관한 사상적인 설명을 배제하고 인간 김선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영화가 ‘2003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이유도 ‘색깔’을 차치하더라도 충분히 감동적인 휴먼드라마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갇힌’ 이들의 몸부림은 극적임과 동시에 사실적이다. 육체적 폭력은 물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소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교화 방송, 어머니를 생각나게 만드는 따끈한 밥상, 야한 차림의 여자 등 전향을 유도하는 갖가지 방법은 폭력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끊임없이 문자를 갈구하고 벽을 통해 자신들만의 언어로 소통하는 장기수들의 모습은 “감옥에서의 가장 큰 고통은 문자를 보지 못하는 것”이라는 ‘옥중서한’ 서준식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한편 작품성에 대해 우수한 평가를 받았음에도 영화가 전국 20개의 상영관에서만 개봉한 것은 유감이다. 작품 자체보다는 배급망과 마케팅이 관객과 영화와의 만남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선택 살리기 운동과 예술영화전용관의 높은 객석 점유율 등 ‘관객의 힘’ 덕택에 롱런 가도에 합류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선택’은 국가보안법과 정치수배자가 여전히 존재하는 지금의 현실과 맞닿아 있어 감상으로 그치기엔 ‘불편한’ 영화이다. 김선명이 ‘한낱 종이 한 장’인 전향서를 쓸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이념을 지키는 수단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각인시켜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택은 어느 한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한쪽을 버리는 것”이기에 그는 세월이 흐르고 형무소의 처우가 개선되어도 여전히 ‘빨갱이’로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를 억압하는 ‘오태식’의 손에 묻은 붉은 피가 쉽게 지워지지 않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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