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수업이 끝난 강의실에 앉아

창작수업이 끝난 강의실에 앉아

                                                       박소란 (예술대 문창3)

부르주아 냄새가 나는 노교수의 뒤를 따라
옆구리에 시론을 낀 학생들 차례로 쓸려나가면
빈 강의실은 조심스런 숙제처럼 남겨진다
무심한 바람이 닫힌 문을 할퀴고
그 할퀴어진 자국이 아프게 시리다
언제부턴가
어둑해진 창 밖 수척한 은행 한 그루
물끄러미 내 눈을 들여다본다
웅크린 가지나 살갗을 드러낸 뿌리가
아주 사소한 듯 흔들릴 때마다
내 몸도 따라서 가볍게 흔들리다가
문득 그 아래
습작처럼 구겨진 이파리를 줍고 싶다
사는 것엔 저마다의 방패가 필요한 법이라고
지독하게 구린 열매 몇 알 달고 선
나무의 듬쑥한 마음을 읽고 싶다
나무가 자꾸만 바람 쪽으로 기울 때마다
내 몸도 따라서 가만히 기울이다가
분주히 찾아드는 추운 계절의 소리를 듣는다
옹색한 상처가 금세 들통 나고 이젠
내 몸 어딘가 구린 열매 몇 알 달고 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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