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쯤 떠오르는 희극 셰익스피어 ‘겨울이야기

십일월이 마지막 잎새들을 떨구어 가는 이맘때면 셰익스피어의 말기극 ‘겨울이야기(The Winter’s Tale)’가 생각난다. 런던 테임즈강 유역 과거 셰익스피어 극 전용극장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같은 모습, 같은 이름으로 400여년만에 세워졌던 오늘의 지구(Globe)극장의 개관기념 레파토리로서, 1997년 이 극이 올려진 것은 의미로웠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지구촌 각 곳에서 모여든 관객들 앞에 막이 올랐을 때 드러난 ‘겨울이야기’의 무대는 당대처럼 빈 무대였다. 바닥은 자주빛에 가까운 짙은 땅 색이었고, 등장인물들이 걸쳤던 헐거운 무명의상들 역시 무대를 둘러싸고 관극하던 입석객들이 디디고 선 땅 색깔을 닮은 짙은 흙색이었다.

비를 맞으며 구경하던 이들 입석객들 중 무대 가까이 서 있던 관객들은 한바탕 연기를 마치고 제 역할이 끝났을 때 무대 가장자리로 나와 객석사이로 퇴장하려고 기어 내려오는 배우들을 안아 내려주고, 또 그들이 등장시간이 되어 무대로 기어오를 때는 손바닥으로 발을 받쳐주고 등을 떠 밀어 올려주곤 했다. 그 ‘뜨뜻’하던 손길이 전달해주는 즐거움이란, 살아 있는 사람인 배우와 살아 있는 사람인 관객이 한 공간에서 호흡하며 빚어지는 현장예술로서 오직 연극에서만 가능한 해프닝이 제공해주는 선물이었다.

이 극은 전반부 세 막이 비극적인 전개를 보여주다가, 나머지 두막에서 극적인 전환을 보여주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비희극’인데 희극으로 분류된다. 저 대 전환의 목전인 3막 끝에서 양치기와 그의 아들 바보(Clown)-결코 이상화되지도 않고 감상성도 가미되지 않은 단순 소박한 ‘촌놈들’-가 담담하게 주고 받는 대화는, 두고 두고 잊을 수가 없다.


바보: 금방 배가 돛대로 달님에게 구멍을 내 놓는가 했더니, 금방 맥주통 속에 빠진 콜크 마개처럼 거품 속에 꼴깍 삼켜졌어... 또 땅에서 벌어진 일인데... 곰이란 놈이 나리의 어깨뼈를 찢어 갈기더군... 그 나리는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이름은 앤티거너스, 귀족이라고 했어...
양치기: 지독한 일이구나. ...하지만 얘야, 고마워하자. 넌 죽어가는 것을 만났으나, 나는 갓 태어난 것(아가)을 만났거든.
바보: ...곰이란 놈이 가버렸는지, 그 나리를 얼마만큼 뜯어 먹었는지 보고 올게. 곰은 배가 고프지만 않다면 절대로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어. 그 나리가 먹히다 남은 것이 있다면 묻어 줄테야. (3막2장)


잇달아 ‘시간(Time)’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등장하여 직접 관객을 향해 말한다:

시간: 어떤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주고, 모든 사람을 시험하는 나는... 시간의 이름으로 나의 날개를 사용하겠습니다. 너무 날쌔다고 부디 책망하지 마십시오... 법률을 뒤엎고 단 한 시간 사이에 습관을 심고 파괴하는 힘을 가진 이 자를...(4막1장)
 

김 한
문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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