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추석을 맞아 새벽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던 날 난 도라산행 기차에 올랐다. 명절이 돼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 먼 이북 산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분단의 현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신문사를 택한 것은 졸업 후 남들보다 좀 더 값진 대학생활의 경험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위의 만류가 많았지만 내가 신문사라는 ‘늪’에 빠진지 벌써 6개월이 됐다.
일주일의 시간을 쪼개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 신문 한부를 만드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쌓인 일 때문에 자정이 넘어 귀가하기 일쑤였고 지친 몸은 학업과 교우관계를 소홀하게 만들었다. 이는 ‘기자의 길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신문사는 그 어느 곳보다도 따뜻한 ‘사람’의 정과 많은 경험을 내게 주었다. 그동안 도외시했던 사회·문화적 현상에 관심을 갖고 내 생각을 정립할 수 있게 된 것도 신문사에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6·13추모대회 참가는 불평등한 한미 관계를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여름방학 때 갔던 농활을 통해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처음 나갔던 사진 취재에서 일간지 기자들에게 밀려 원하는 대로 사진을 찍지 못했던 것은 추억거리가 됐다. 많은 취재훈련은 앞에 나서기를 꺼렸던 나를 당당한 기자로 거듭나도록 만들었다. 그렇기에 더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일간지 기자들과 자리다툼을 하고, 모두가 앉아 있는 조용한 회의실에서 카메라를 들고 앞에 나가 셔터를 누르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쑥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제 지난 6개월간 용서받을 수 있던 수습기자의 명찰을 떼고 내 이름을 단 기사에 책임질 줄 아는 정기자로 거듭나려 한다. 앞으로는 독자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 ‘꼭 읽을 수밖에 없는’ 기사를 쓰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치고 힘든 순간을 말끔히 씻어주는 기사에 대한 격려와 쓴소리가 있기에 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기자의 ‘늪’에 깊이 빠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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