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희곡·시나리오 장원 - 김지원(예술대 문창3)


◆등장인물
아이 아빠, 최씨 (30대 후반)
아이 엄마, 이 집사 (30대 초반)
아이 (최씨와 이 집사 사이의 아들, 7세)
차를 타고 최씨와 함께 온 사장
사장의 비서
동네 여자 1, 2, 3
동네 아이 1, 2
행인 (노파, 청년)

#1. 비 오는 밤. 어느 동네 (실외, 밤)
F. I (빗소리가 화면보다 먼저 들린다.)
비 오는 밤. 허름한 어느 동네. 철거가 진행되는지 허물어 진 집들 사이로 포크레인 등의 장비들이 보인다. 집들의 벽에는 락카로 쓰인 숫자들이 어지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카메라, 한 집으로 Z.I.에 이은 TRACKING. (카메라는 대문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간다.)
집 안, 방 쪽에서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란함이 들린다. 남자와 여자가 싸우는 듯한 소리다. 그러나 소란함은 계속되는 빗소리에 묻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다.

#2. 집 마당 (실외, 밤)
집 마당에 아무렇게 뉘어진 낡은 자전거 한 대가 보인다. 그 옆으로 물웅덩이도 보인다. 물웅덩이에 투영되는 자전거 바퀴. 그것은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3. 집 안 (실내, 밤.)
조그만 경대의 거울에 반사된 남자와 여자. 싸우고 있다. 남자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으나 여자가 남자에 의해 떠밀리는 모습이 거울 안으로 흘낏흘낏 들어온다.

이 집사 : (한껏 억누르는 듯한)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되는 거야? 내 생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구 이 꼴을 참고 살아, 집에서 마음 졸이는 사람 생각도 해줘야지, 그게 도리지.
최 씨 : (흥분된 마음을 애써 참으며 타이르는듯) 글쎄 니가 뭘 안다구 난리야, 이 난리가. 내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생각했으면 이 집구석에 남아있지도 않지. 다같이 잘 살자구 하는 짓인데…….(여자 대사 오버랩)
이 집사 : (남자의 말허리를 자르며)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그 다같이(길게)가 누군데, 나? 동네사람들? 다방 미스…….(남자 대사 오버랩)
최 씨 : (여자의 말허리를 자르며) 글쎄, 남자하는 일에 여편네가 이래라저래라 지랄 떨지 말어!
이 집사 : 동네사람들이 나한테 뭐라 그러는 줄 알아?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못 쓴다고! 나두 이렇게는 못살아. 더 이상은 안 살아진다구!

남녀의 격해지는 몸짓에 따라 경대의 거울에 비치는 그들의 모습이 빠르게 보이고 안 보이고를 반복한다. 카메라는 거울을 통해 두 남녀를 찍고 있다. 이런 남녀의 싸움을 아이가 거울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아이는 남녀의 싸움보다 그것이 거울에 비치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갖는 듯 하다. 이미 이런 전경에 익숙한 듯 얼마간 거울을 바라보던 아이는 문득 거울에 묻은 손자국에 주목한다. 거울의 때. 그것이 거슬리는 지 조그만 손으로 닦아보는 아이. 어느새 남녀가 싸우는 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아이의 손이 남녀를 지우듯 아이는 거울을 닦고 또 닦는다. 이윽고 아이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울을 접어서 경대를 덮어 버린다.

F. O. (아이가 경대를 접는 리듬에 따라, 사운드도 함께.)

BGM이 화면과 사운드가 사라짐에 따라 들려오기 시작하다가 #4으로 넘어가면서 줄어든다.

#5. 제목 (C.G.)
검은 화면 바탕의 중앙에 밝은 점 하나가 나타난다. 그 점에서 시작된 빛은 화면을 아래위로 가로지르는 세로의 선으로 변한다.(효과음 삽입) 그 선에서 빛이 쏟아져 나와 화면은 금새 새하얗게 밝아진다. 제목 ‘첫 눈 오는 골목’이 검은 색으로 화면 중앙에 세로로 나타난다.

#6. 집안 (실내, 오전)
최씨가 옷을 입으며 서 있다. 어제 밤의 일로 방안이 신문이며 술병, 엎질러진 술잔과 밥상, 옷가지들로 온통 난장판을 이루고 있다. 경대도 쓰러져 있다. 최씨는 촌스런 넥타이를 매고 서 있다가 문득 난장판인 방 안을 둘러본다. 때마침 옆에 있던 유리 재떨이를 발로 걷어차며 밖에다 대고 소리친다.

SE) 재떨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

최 씨 : 넌 밤새 뭘 한거야? 이래 놓고도 잠이 오디? (재떨이를 찬 발이 아프다. 발쪽을 바라보며 엉거주춤하다가) 집안 꼴이 이러니, (구석의 아이를 바라보다 다시 문 밖을 향해) 야! 내 말이 말같이 안 들려!

카메라 천천히 PAN하면, 방구석에 무릎을 두 팔로 웅크린 듯 안고 앉아있는 아이가 보인다. 아이는 아버지 최씨가 무서워 고개도 들지 못하고 꼼지락거리는 자신의 발만을 바라본다.
신경질적으로 물건들을 발로 차는 최씨. 아이는 엎어져 있는 경대의 거울을 통해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경대는 아이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다. 아이는 고개를 약간 기울여 거울 속의 아버지를 유심히 쳐다본다. 최씨의 움직임에 따라 아이의 고개도 함께 움직인다. 아버지가 아이를 한 번 힐끗 쳐다본다. 놀란 아이가 얼른 시선을 피하지만, 이내 도로 고개를 들고 배시시 웃는다. 최씨를 향해.
최씨는 아이의 웃음을 보지 못한 채, 발로 문을 차고 나간다. 최씨가 나간지라 아이는 그만 허공을 향해 웃음을 지어보인 꼴이 되고 만다.
아이는 어색한 그 표정 그대로 슬금슬금 무릎으로 기어서 경대로 다가간다. 경대를 바로 세운다. 밖에서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고 나가며 침을 뱉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의 엄마인 이 집사가 방안으로 걸레를 들고 들어와 지저분해진 방을 청소한다. 아이는 그녀의 동선에 따라 거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장난을 친다.

이 집사 : (혼자 중얼거리듯) 밤새 어디서 자빠져있다 들어온 주제에, 지도 남자라고……. 에유, 애 눈이 무섭지도 않나, 걸핏하면 문 박차고 뛰쳐나가니……. (아이를 본다.)

그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한 숨을 쉬며 방문을 열고 나가자 밖에서는 동네여자들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동네여자1(소리만) : 이 집사, 없이 사는 사람끼리 이럴 수 있어? 교인이면 교인답게 행동을 해야지…….
동네여자2(소리만) : (동네사람1의 말허리를 자르며) 행동은 무슨, 행동은 집어치우고 가만히나 있으란 말이야, 가만히나 좀, 왜 나서서 욕을 처먹고 돌아댕겨!

이런 식의 너도나도 질러대는 소리들로 밖이 무척 시끄럽다. 아이는 밖의 일에는 관심도 없는 듯이 경대의 서랍을 열어, 그 안의 물건들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동네여자들과 엄마의 말다툼이 계속되는 동안 카메라는 아이의 모습만을 비춘다. 엄마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진다.

엄마(소리만) : 나더러 어쩌라구요! 맨날 이렇게 찾아와서 왜 나만 못살게 구는 거에요! 이거 안보여요? 나도 맨날 당하고 사는 사람인데, 왜 나만 못살게 구냐구요, 내가 힘이 있어 뜯어 말릴꺼에요, 돈이 있어 보태드릴꺼에요, 나도 똑같다구요, 살고 싶다구요!

잠시 조용해 진 듯하다가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

동네여자1(소리만) : 다 한통속이지 뭐! 한 이불 덮고 사는 연놈들이 어련할라구.
동네사람2(소리만) : 우리도 가만있지는 않을 거야. 돈을 얼마나 처먹는지는 몰라도 더럽게 먹은 돈, 체하게 돼있어!
동네사람3(소리만) : 교회에서도 안 봤으면 좋겠네, 앞으로.
동네여자1(소리만) : 교회는 무슨! 아주 유황불에 콱 떨어져 죽을꺼여, 예약 다 됐어, 아주

아이의 엄마인 이 집사에게 성토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무리들이 돌아간다. 소음이 사라지고, 아이는 서랍에서 반창고를 발견한다.
그 때, 엄마가 자신의 가슴을 치고 못살아못살아를 연신 되뇌면서 방으로 들어온다. 엄마는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아이가 경대의 서랍을 죄다 열어 놓은 것을 본다. 이어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아이의 등짝을 때린 후 경대를 빼앗아 방 한쪽으로 치워 놓는다.

이 집사 : (아무런 의미 없이) 서방복 없는 년이 자식복도 없다더니.

그리고는 다시 못산다는 말을 계속 되뇌이면서 방안의 어질러진 물건들을 대충 구석으로 밀어놓은 후 두루마리 휴지를 모로 베고 눕는다. 아이는 그새 뭔가를 생각하다 살금살금 무릎으로 기어 경대로 다가가 서랍속의 반창고를 꺼내 누워있는 엄마를 타넘고 문밖으로 나간다. 아이가 방문을 닫고 급하게 신발을 신고 뛰어간다. 뒤로 또 어디 가냐고 묻는 엄마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7. 집 마당 (실외, 오전)
아이가 마당의 물웅덩이를 힘차게 밟고 뛰어간다. 물웅덩이의 수면위로 큰 파문이 일었다가 다시 잔잔해진다.

#8. 동네 전경 (실외, 오전)
하늘, 전 날의 비로 인해 여운이 남았는지 구름이 낮고 어둡다. 카메라가 하늘로부터 Tilt Down하면 예의 철거가 진행 중인 동네가 보인다.
동네는 한적하다. 그 골목 사이로 노파가 머리에 짐을 이고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날씨가 쌀쌀한 계절이다. 노파는 옷을 든든하게 입었다. 맞은편엔 웬 젊은 청년하나가 깡통을 발로 차며 걸어간다. 깡통차이는 소리가 다소 과장되어 크게 들린다. 

#9. 빈 집, 밖 (실외, 오전)
사람이 기거하지 않을 법한 빈집이다. 대문에는 완벽한 폐쇄를 위한 각목이 못질된 채로 엇갈려 붙어있다. 아이는 주위를 살핀 후 집 뒤로 돌아간다. 아이는 책가방만한 합판조각과 그것을 받치고 있던 벽돌 두 개를 치워낸다. 그 뒤로 나타난 것은 강아지나 몸집이 조그마한 아이만이 왕래할 수 있는 구멍이다. 아이는 구멍으로 들어간다.

#10. 어두운 집 안 (실내, 오전)
아이는 능숙한 발걸음으로 집안을 돌아다닌다. 아이는 집안 구석구석 숨어있는 자신의 물건들을 확인한다. 장난감, 구슬, 딱지 등. 벽에는 아이의 글씨로 보이는 낙서들이 보인다.
엄마, 아빠로 보이는 사람들이 정답게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서툰 그림도 보인다. 아이는 집의 안방으로 사용되었을 법한 곳에 걸려 있는 커다란 거울 앞으로 다가간다. ‘축 개업’ 따위의 글귀가 적혀 있는 그 거울은 깨져서 금이 가있는 상태이다. 그 금은 거울의 위에서부터 아래 끝까지 종단하고 있어 거울에 비친 아이의 얼굴도 반으로 쪼개져 보인다.
아이는 준비해온 반창고를 주머니에서 꺼낸다. 아이는 쪼개진 거울위로 두 세 겹 두껍게 반창고를 붙여 댄다. 반창고가 모자라 반 정도 밖에 붙이지 못하자 다시 뜯어내어 나름대로 계산을 한 후, 얼마간의 간격을 더 벌려서 붙인다. 정성을 들인 수리가 끝이 나자 아이는 만족감에 흡족해 한다. 아이는 책상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서랍안의 딱지와 구슬을 꺼낸다. 딱지는 주머니에 넣고 구슬은 손에 든 채, 들어왔던 구멍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간다.

#11. 빈 집, 밖 (실외, 오전)
다시 장애물들을 이용해 출입구를 막은 아이는 골목길로 뛰어간다.

#12. 공터 (실외, 오전)
공터의 아이들, 구슬치기를 하고 있다. 아이가 주뼛거리며 다가와 무리사이에 쭈그려 앉는다. 저희끼리 놀고 있던 동네아이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아이를 쳐다본다. 무리 중 동네아이1이 아이를 밀치며 말한다.

동네아이1 : 절루가!

동네아이 2, 엉덩방아를 찍고 다시 일어나려는 아이의 손에 있던 구슬을 쳐낸다. 구슬이 땅바닥에 구른다.

동네아이2 : 너네 아빠 땜에 우리 집, 이사 가야 돼! 

아이는 구르는 구슬을 잠시 쳐다보다 일어나서 엉덩이를 털고 골목 바닥에 떨어져 있는 구슬들을 하나하나 줍기 시작한다. 구슬을 다 주은 아이는 힘이 빠진 걸음걸이로 걸어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다보고 무리에게 혀를 내보인 후 카악 침을 뱉고는(아이의 아빠, 최씨처럼) 다시 몸을 돌려 뛰기 시작한다.

#13. 골목길 (실외, 오전)
아이가 골목을 따라 걷고 있다. 아이는 한 쪽 팔을 벌려 골목길의 담을 손으로 비비며 걸어간다. 그 반대편에 #8의 청년이 깡통을 차며 걸어간다. 두 사람은 골목길에서 스치며 엇갈린다. 

#14. 거리 (실외, 오전과 오후 사이)
골목을 벗어난 거리, 아이는 어느새 다소 번잡한 도시의 거리로 나와 있다. 골목에 익숙한 아이는 차도를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차들과 늘비한 상점,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걷고 있는 사람들이 생경하다.
상점 중 애견 센타가 보인다. 유리창을 통해 강아지를 구경하는 아이. 아이는 강아지가 귀여운 듯, 연신 웃으며 유리창에 손을 대본다. 그 때, 인도 변에 묶여있던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아이를 향해 짖는다. 깜짝 놀란 아이는 뒤로 물러서고 애견센타 주인이 밖으로 나온다. 주인을 멀끔히 바라보던 아이는 등을 돌려 다시 걷기 시작한다. 차도에는 무슨무슨 유치원이라는 문구가 적힌 통학용 승합차가 지나간다. 승합차 차창 사이로 팔을 빼고 장난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승합차부분은 관객이 눈치 채지 못하게 빠르게 지나가야 한다.)

#15. 빈 집 (실내, 오후)
조금씩 해가 저물어 간다. 아까보다 많이 어두워졌다. 아이는 바닥에 앉아 있고 손에는 여전히 구슬들을 들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금이 간 것을 발견하자 아이는 그 구슬을 어루만지며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일어나 거울 앞으로 다가간다. 거울에 붙어 있는 반창고를 하나 떼서 그 구슬에 붙이는 아이. 하지만 몇 번씩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했더니 잘 붙지 않는다. 자꾸만 일어나는 반창고의 끝부분을 열심히 눌러 붙이는 아이.
그때 자동차의 정지하는 소리며 차문을 여닫는 소리, 남자들 말소리 등이 집 밖에서 들린다. 아이는 놀라서 창문의 조그만 틈으로 밖을 내다본다. 잘 닦인 검은 색 고급 승용차가 좁은 창 틈 사이로 보이고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화면에는 좁은 승용차에서 내린 남자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아이의 모습이 교차되어 보여진다.

최 씨 : 저기 초록색 지붕 집은 내일모레 뜬답니다.
사 장 : (손짓으로 가리키며) 그럼 저기 저 집은?
최 씨 : 아, 그 집이요? 거기도 이제 조만간…….
사 장 : 최씨, 제대로 해. 여기 정확히 10일 날 싹 쓸어버릴거야. 서로 소란스럽게 만들지 말자구. 내말 알지?
최 씨 : (허리를 굽신거리며) 아,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싹 비워놓겠습니다.
사 장 : 무슨 방법을 쓸껀데?
최 씨 : 예?
사 장 : 흐흐, 알아서 하라구. 최씨가 힘써주면 나야 편하고 좋지.
최 씨 : 아, 예. 허허허. 그런데 사장님, 이게 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서……. (잠시 후, 다급하고 조심스럽게) 내년에 애 학교도 보내야하고…….
사장의 비서 : 사장님, 시간이…….
사 장 : 어, 그래. 밥 먹을 시간은 있나? 슬슬 배가 고파오는데. (발길을 돌리다 고개를 찡그리며) 원 동네, 뭔 냄새가 이리 나는 거야? (최씨를 향해) 자네, 아까 뭐라구? 
최 씨 : 아닙니다, 나중에, 나중에 말씀…….

아이는 놀란 듯 뒤로 물러서다 들고 있던 구슬 하나를 떨어뜨린다. 왠지 모를 겁에 질린 채 문틈으로 밖을 쳐다보는 아이. 아이의 얼굴에는 깨진 거울에 비친 얼굴처럼 한 줄기 긴 빛이 드리운다. 아이의 어두운 얼굴을 반으로 가르며 직선으로 떨어지는 빛줄기.
무리가 자동차에 오르는 소리가 나고, 문틈 사이로 밖의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그 중 아이의 아버지도 있다.

#16. 아이의 집, 마당 (실외, 오후)
아이의 엄마, 이집사가 좁은 마당을 서성인다. 손목의 시계를 들여다보고 밥 때가 지났는데 아이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음에 걱정하는 것이다. 이 집사는 대문을 열고 골목 밖으로 나선다.

#17. 아이의 꿈 (환상)
이제까지 등장하던 빈 집이다. 아이는 늘 그랬듯이 집안을 돌아다니며 놀고 있다.
이 때, 누군가 집의 문을 열려고 한다. 삐그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침입자는 창문, 벽, 지붕을 가리지 않고 완력으로 입구를 만들려고 한다. 집은 서서히 흔들거리며 삐거덕거리는 마찰음은 점점 커져간다. 아이는 겁에 질려 어찔할 바를 모른다. 아이의 겁먹은 얼굴은 깨진 전신 거울에 비친다. 아이가 깨진 유리의 단면을 따라 둘 혹은 셋, 넷으로 파열되어 비친다.
이윽고 침입자가 문을 부수고 들어온다. 천천히 걸어오는 남자. 남자의 얼굴은 어두운 탓에 보이지 않는다. 이어 창문이 깨진다. 그 틈으로 들어오는 또 다른 남자. 지붕이 뜯기고 들어오는 남자. 사방이 정체모를 침입자 투성이다.
어느새 남자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섰다. 아이의 구슬이 바닥으로 떨어져 구른다. 또르르 구르던 구슬이 침입자의 발에 부딪혀 멈춘다. 아이는 구르는 구슬에서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면 그는 아버지 최씨다. 아이는 고개를 돌려 다른 침입자를 바라본다. 모두가 아버지 최씨다. 아이가 놀라 주저앉으면 아이의 뒤쪽 벽면에 붙여진 그림이 보여 진다. 아이가 직접 그린 듯한 서툰 그림은 놀이공원을 배경으로 아빠, 엄마, 아이 이렇게 셋이 그려져 있다. 

#18. 골목길, 아이를 찾는 엄마 (실외, 오후)
아이의 엄마가 골목길을 따라 아이를 찾아 나섰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몸짓으로 아이의 특징을 설명하지만 거리가 멀어 관객은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골목길엔 어느새 눈이 내린다. 이 집사의 얼굴이 화면 가득 보인다. ‘첫 눈이네……’ 무심결에 짧게 내뱉은 이 집사는 다시 고개를 돌려 골목길을 따라 아이를 찾아 나선다.
아이의 엄마가 골목 끝으로 사라지면, 카메라 Tilt Up. 교회의 십자가가 보이고 캐롤송이 어디선가 아주 작게 들리기 시작한다.

#19. 빈 집, 안 (실내, 오후)
아이의 발끝에 멈춰 서 있는 구슬이 보인다. 관객은 발의 주인이 아이인지 알 수 없지만 카메라가 Tilt Up하면 발의 주인공이 아이인 것이 드러난다. 아이는 그 상태로 잠시 서 있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라도 난 듯 구슬을 집어 책상으로 가서 급하게 서랍을 열고 구슬을 쏟아 놓는다. 그리고는 바로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

#20. 빈 집, 밖 (실외, 오후)
아이는 그전에 구멍을 막았던 벽돌과 합판을 걷어내고 주위를 둘러본다.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이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이는 큰 선반 하나를 힘겹게 끌고 와서 구멍을 막는다.

#21. 몽타주 (짧은 컷들의 교차)
1) 교회에서 예배 보며 웅성거리는 사람들, #6의 동네여자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무언가 이야기 하고 있다.
2) 사장과 식사하는 최씨, 연신 굽실거리기 바쁘다. 그 와중에서도 핸드폰으로 걸려오는 전화에 대고 무언가를 지시하고 확인한다.
3) 길을 걷고 있는 이 집사, 지나가는 사람이 무언가 얘기하려하면 인상 쓴 채 손사래를 친다.
4)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눈이 내리자 소리를 지르며 좋아라한다.
5) 포크레인 등의 기계들이 움직이는 모습, 철거작업 중인 인부들의 모습.

위 컷들의 사이사이에 빈 집에서 나오는 아이의 모습이 삽입된다. 

#22. 빈 집, 밖 (실외, 오후. #14-1의 연결 씬)
아이는 연이은 구멍막기 작업에도 성이 차지 않는지 다시 주위를 둘러보다 더 큰 돌을 낑낑대며 들고 와서 그 위에 얹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구멍을 막는 아이. 아이는 몇 번 그것들을 손으로 만져본 후 만족해한다. 밖은 이미 많이 어두워져 있다.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뛰어 간다. 카메라 앞으로 아이의 그런 얼굴이 프레임 반 정도에 걸려 보인다. 스틸 컷으로 잠시 보여준다. 아이와 주위의 모든 사물이 정지된 채로 하얀 눈송이가 공중을 부유한다. 혼자서만 자유로운 눈꽃이 춤을 춘다.
카메라, 서서히 아이에서 날리는 눈으로 이동하다가 다시 하늘로 이동한다.

F.O.

엔딩 크레딧 (#3에 BGM으로 깔렸던 주제음악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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