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 돌아보면 역사가 술술~

남산 한옥마을, 장충단 공원, 유성룡 집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본교 주변에 있지만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숨겨진’ 문화재라는 것이다.
본교 정문과 혜화문으로 내려가는 길은 장충단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과 이어진다. 날씨가 따뜻하면 본교 학생들은 공원 내 이곳저곳에 모여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놀이를 즐긴다.
그런데 이렇듯 자연스레 우리와 친숙해진 장충단 공원은 단지 일반적인 공원이 아니라 문화재다. 장충단은 1900년 대한제국 때 고종이 을미사변과 임오군란으로 순사한 충신·열사를 제사지내기 위해 만든 곳이다.

그러나 1910년 8월 일제는 민족의 독립심을 억압하고 역사를 격하하기 위해 폐사하고 1920년대 후반부터 이곳 일대를 장충단 공원이라 이름 붙여 벚나무를 심고 일본영웅의 동상과 이토히로부미의 보리사인 박문사를 건립했다. 광복 후 동상과 박문사는 철거되고 6.25전쟁으로 장충단 사당과 부속건물이 파손돼 현재 장충단 비만 남았으며 과거 제단이 있던 곳에는 ‘장충단터’비가 있다.

또한 장충단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 왼편으로 분수대를 지나면 돌다리를 볼 수 있다. ‘수표교’라 불리는 이 다리는 세종 2년 현재의 청계천 2가에 놓인 후 1920년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수표가 세워지면서 이같이 이름지어졌다.
1959년 청계천복개공사로 신영동에 잠시 옮겼다가 6년 뒤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으며 본래 수표교가 있던 중구 수표동에는 그 터를 알리는 비가 있다. 장충단 공원에는 이밖에도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사명대사와 헤이그 밀사로 파견됐던 이준 열사 동상, 국권박탈에 대해 최초의 자결항쟁을 한 이한응 선생 기념비 등이 있다. 이렇듯 장충단 공원에서는 다양한 시대의 문화재들을 만날 수 있다.

후문으로 나가 대한극장 가는 길 좌측의 주유소 앞에서는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를 재정비하고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 문신이자 학자인 유성룡의 집터 비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대한극장을 지나 충무로역 4번출구 앞에는 ‘남학당터’비가 있다. 남학당은 태종 11년에 완성돼 1894년까지 지속된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인 한성 4학당의 하나다.

옛 남학당 터를 지나 중대병원 앞 왼쪽 길로 들어서면 남산한옥마을의 입구가 보인다. 남산한옥마을은 지난 98년 일반인들에게 공개됐으며 서울의 8대가로 불리던 사대부 집부터 일반서민의 집까지 전통한옥 다섯 채를 옮겨 놓았다. 오위장 김춘영 가옥,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도편수 이승업 가옥, 해풍부원군 윤택영댁 재실,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가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옥마을에서는 근대적인 학문으로써 국어학의 체계를 집대성한 이희승 선생 추모비도 볼 수 있다.

한편 정문 앞 신라호텔을 지나 국립극장 쪽으로 가다보면 국민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고양하고자 건립한 3·1 독립운동 기념탑, 1919년 음력 3월 1일 아오내 장터 만세운동을 지휘한 유관순 동상이 있다. 그리고 남산에 오르면 동악이 배출한 걸출한 시인 조지훈의 시비가 오롯이 서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본교 주변 문화재들을 둘러보았다. 예전부터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던 본교 주변에는 이밖에도 크고 작은 문화재들이 많다. 이러한 본교의 장점을 살려 이제 한번쯤 친구들과 숨겨진 문화재를 찾으러 다녀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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