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학교에서 동국대학교까지

돌발퀴즈, ‘동국의 애칭인 동악의 유래는 무엇 ?’.
정답은 조선 중기 시인 이안눌의 호라고. 동악 이안눌은 예전 우리학교의 학림관 근처 동산에서 당대 명사들과 동악시단이라는 모임을 갖고 시를 지으며 풍유를 즐기던 대학자로 유명했다.

어느새 건학 100주년을 2년여 앞둔 지금 본교 역사에는 이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많다. 그렇다면 ‘동악’의 역사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본교는 지난 1906년 불교계가 불교 교육의 중흥을 이루기 위해 근대적 교육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려 원흥사에 전문학교 수준의 불교학교인 ‘명진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이어 ‘중앙학림’을 거쳐 ‘혜화전문학교’로 개칭됐다.
불교의 근대화와 민족자주정신을 내세우며 불교혁신운동을 했던 학생들이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일제시기 여러 번 강제 폐교당하기도 했다.

이런 강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우리선배들은 민족의 내일을 우리것으로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사회활동과 창작활동을 계속했다. 때문에 다른 사학에 비해 많은 선배들이 투옥되고 강제징집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는 지금 본교 자리인 중구 필동으로 교사를 옮기고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이때 전국 사찰에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동국 발전을 위해 약 5백만 평의 토지를 기부했다.

이렇듯 많은 사람의 노력과 마음을 모아 본교는 1946년 동국대학으로, 1953년에는 마침내 일제강점기의 시련과, 6.25동란의 비극을 딛고 거친 종합대학교인 ‘동국대학교’로 승격돼 오늘에 이르렀다. 이렇듯 우리가 몸담고 있는 동국의 역사는 우리 근대사의 시련과 맥을 같이 한다. 지난 6.25전쟁 당시에도 수많은 양의 도서와 자료가 불타고 건물이 파괴되는 등으로 피해가 있었으나 한 교직원이 학적부를 자신의 집으로 옮기는 등의 노력으로 완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또한 4.19혁명 당시 동국인들은 곧은 기상과의기를 온세상에 떨쳤다. 독재자 이승만을 몰아낸 4.19혁명은 선봉에 나선 수많은 선배들의 피와 눈물로 이루어진 성과였다. 이를 기리는 동우탑은 오늘도 만해광장 위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동국은 이처럼 꾸준한 교육시설 향상과 제도확충을 하며 발전해 왔다. 1979년 경주캠퍼스 건립, 1983년 동대부속 한방병원 개원 등 ‘동악’은 현재 건학 100년을 맞이하고 앞으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과정을 하고 있다. 이에 학내 구성원들이 모여 ‘변화하는 동국’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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