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 지리지식 집성한 이중환 (1690-1756)

청담 이중환(1690~1756)은 조선후기의 지리학자로 이익의 실사구시 학풍을 계승하였다. 그는 여주 이씨 가문에 태어나 1713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1718년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을 거쳐 1723년 병조정랑(兵曹正郞)을 지냈다.
18세기에 극심했던 당쟁에 연루되어 수차례의 형을 받고 38세에 유배된 후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30년간 전국을 방랑하면서 뛰어난 문필의 재능과 실용적인 지식을 토대로 지리서인 ‘택리지(擇里誌)’를 저술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괄목할만한 연구업적을 남겼다.

택리지는 팔역지(八域誌), 팔역가거지(八域可居地)등의 다른 이름으로 된 전사본들이 전한다. 택리지는 전편과 후편으로 나누어지며, 전편인 팔도총론(八道總論)에서는 각 도의 역사, 지리, 지세, 기후, 산물, 인물, 취락 등을 설명하였고, 후편인 복거총론(卜居總論)에서는 지리(地理), 생리(生理), 인심(人心), 산수(山水)의 네가지를 들어 사람들이 살만한 곳을 서술하였다.

또한 전통적인 풍수지리사상의 틀에서 벗어나 학문연구에서 새롭게 과학적이며 실용적인 접근방법을 택한 것은 후기 실학파 학자들의 학문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택리지의 가치와 의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즉 택리지는 이전의 동국여지승람과 같은 관찬 지리지에서 볼 수 있었던 백과사전식 나열에서 탈피하였으며, 실학의 영향을 받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지리지식을 기술하였다.

또한 자연지리적 현상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곁들였다.
그 뿐 아니라 수운의 이용을 강조하고 상업을 경시하지 않았으며, 환경결정론적인 사고, 환경가능론적인 사고 등과 같은 현대 지리학의 주요 개념들을 개괄적으로 잘 소개하였다. 또한 지리적 현상의 뛰어난 관찰력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보인다. 그 예로는 대관령 부근에서 행해지고 있는 무계획적인 화전의 개발과 그에 따른 토사의 문제, 수레보다는 배를 이용하는 것이 물류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하는 수운의 문제 등을 잘 간파하고 있었으며, 지형관찰에서는 철원부근의 용암대지에 관한 언급을 예로 들 수 있다.

따라서 택리지는 조선 후기에 편찬된 본격적인 인문지리적 접근을 갖춘 새로운 유형의 지리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택리지는 조선시대에 가장 널리 보급된 책 중의 하나로 필사본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1912년 육당 최남선의 교정으로 조선광문회에서 활자 인쇄본으로 간행되었다.

청담은 당시 사회전반의 변화 분위기속에서 사대부와 농공상의 구분을 단순히 직업상의 차이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지배계급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생산활동과 상업적 농업을 중시하고 지리적 환경조건에 적합한 수운과 교역(交易)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지금과 같이 어지러운 세상에 청담과 같이 사회현상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또 종합할 수 있는 혜안이 부럽다.


김주환
지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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