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협상 방식, 이유 있다

정확히 10년만에 북한 핵문제가 국제사회의 쟁점으로 다시 부각되었다. 이제 6자회담이라는 새로운 대화 틀걸이를 마련함으로써 핵위기 국면은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듯 하지만, 여전히 핵문제는 안개속을 걷는 듯 하다. 아마도 6자회담을 시작으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오랜 대화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시점에 지난 해 청년정신 출판사에서 시의적절한 내용의 책을 번역 출간한 바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국의 한반도문제 전문가 스코트 스나이더의 99년도 저서 ‘Negotiating on the Edge’가 ‘벼랑끝 협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것이다.
이 책은 정전협정부터 시작된 북한의 외교 대화유형에서부터 추적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주요한 사례들을 광범위한 자료조사와 직간접 인터뷰를 통해 치밀하게 분석 정리해주고 있다.

특히 북미간 핵문제와 관련한 대화를 중심으로 북한의 협상행태의 특징을 정리해줌으로써 협상 실무자들에게는 좋은 지침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관련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북한을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단순히 정보의 제공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저자인 스나이더의 분석 자세에서 기인한다. 그는 북한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결코 드러나는 현상만을 놓고 평가하지 않는다.

1장에서 북한의 세계관과 형성과정을 언급하고 있는데, 북한만의 독특한 유교식 사회주의 문화 그리고 유격대식 사업방식의 특성을 깊은 이해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북한에 대해 “그냥 그들은 미쳤다” 라고 단순히 치부해 버린다면 한반도에 무력충돌을 유발할 수 있으며 동아시에 큰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 인식의 바탕 위에서 그는 북한의 협상행태에서 나타나는 일관된 법칙성을 발견하여 제시하고 있다. 스나이더는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란 “(협상장소에서 허세를 부리거나 고함을 지르는 것은) 자국의 무력함을 은폐하려는 수단이며, 실제로 열등한 처지를 감성적으로 알려주는 전술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협상에서의 유형은 ‘강-약-중강-약’이 반복됨으로써 상대로부터 최종단계에서 더 많은 양보를 확보하려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지적은 연구자뿐만 아니라 언론계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즉 모든 회담 첫날 발표되는 북한의 성명을 가지고 회담 전체를 전망하는 보고서 또는 기사는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오늘날 미국 부시행정부의 대북협상 태도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즉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역 벼랑끝 전술로 맞받아치고 있는 것은 북한의 협상행태를 충분히 분석하고 전술적으로 사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지난 2월 25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2차 6자회담은 스나이더가 제시한 지금까지의 북한의 협상행태의 법칙성과는 다르다는 점에 필자는 주목하고 있다. 즉 ‘강-약-중강-약’의 형태가 아니라 ‘약-약-소강-약’의 형태를 보였다. 처음부터 북한은 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강하게 나타내지 않았으며, 마지막날 기자회견에서 약간의 불만을 표한 것이 전부이다. 이는 북한의 처지가 전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며 미국보다도 빠른 변화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즉 강공을 취할 경우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으며, 고립과 경제위기만이 있을 뿐이다.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김정일 정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국제사회와 선린 우호관계를 회복하는 것 뿐이라 할 수 있다. 

진 희 관
북한학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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