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식 27세 무직
민수 27세 공무원
일배 27세 버스기사
여자 23세 휴대폰 주인

무대는 텅 빈 거실이다. 그 중앙을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출입문, 무대 중앙 뒤쪽에 작은 창이 하나, 그리고 무대 우측 벽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있다. 이것들 외에 특별한 가구나 집기는 없다.
무대가 밝아지면 춘식과 민수가 무대 중앙에 앉아 있다. 춘식은 휴대폰 통화를 하고 있고, 민수는 춘식의 통화내용을 살짝 엿듣고 있다.

춘식 : (휴대폰에 귀를 기울이며) 예, 예 보살님. 아, 그래요? 잘 알겠습니다. 예. 그럼 또 전화 드리겠습니다. 네, 들어가십시오. (일배에게) 뭘 봐?
민수 : (엿듣다가 무안해서) 내가 뭘.
춘식 : 엿들었잖아. 쥐새끼마냥.
민수 : 뭐? 쥐새끼?
춘식 : 그래. 쥐새끼. 궁금하면 너도 걸어봐.
민수 : 관심 없어. 미쳤다고 30초에 990원씩이나 하는 사주팔자를 보냐?
춘식 : 그 돈이면 싼 거야. 이 처녀보살님 직접 만나서 얘기해 봐라. 기본 10만 원이다.
민수 : 그러게 그걸 왜 봐?
춘식 : 너는 왜 엿들어?
민수 : 그냥 뭔 쓸데없는 소리를 하나 들어 본거야.
춘식 : 쓸데없는 소리? 사업 할 사람이 이 정도는 해야지. 그래서 말인데.
민수 : 됐어.
춘식 : 뭔 얘기를 듣지도 않고 됐대?
민수 : 어제부터 충분히 들었어.
춘식 : 근데도 투자할 마음이 없어?
민수 : 없어.
춘식 : 참 내. 내가 복 달아날까봐 이런 얘기까진 안하려고 했는데. 금방 이 보살님이 뭐라고 했는 줄 알아? 앞으로 뭘 하든지 대박이래, 대박.
민수 : (비꼬며) 그래 좋겠네. 돈 많이 벌어라.
춘식 : 어쭈, 너 많이 컸다. 어디 간만에 몸 좀 풀어봐?

민수. 춘식의 말에 콧방귀를 뀌고, 그 순간 좌측 출입문에서 일배가 들어온다.

일배 : (흠칫 놀라며) 누구야! (얼굴을 확인하고는) 아, 자식들! 또 여기서 이러고 있네.

춘식 일어서서 반긴다. 민수도 함께 일어난다.

민수 : 왔냐?
춘식 : 야, 내가 너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줄 알아?
일배 : 나 기다린 거야, 담배를 기다린 거야?
춘식 : 담배라니. (주머니에서 담배 꺼내며) 그까짓 거 나도 있다고.
일배 : 또 동생한테 삥 뜯었냐? 니 동생도 참 불쌍타. 나이 찬 오빠 뒷바라지까지 하고.
춘식 : 삥 뜯은 거 아니라 빌린거지.
일배 : 그럼 왜? 그거 말고 나 볼 일이 또 있어?
춘식 : 있으니깐 왔지.
민수 : (앞으로 나서며) 얘 또 무슨 사업한다고……
춘식 : (민수 입을 막으며) 아니야. 그냥 간만에 친구 어떻게 지내나 보러 온 거지.
일배 : 지난주에도 봤잖아.
춘식 : 지난주에는…… 너 늦게 오는 바람에 얘기도 못하고 그냥 갔잖아.
일배 : 그래서.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건데?
춘식 : 그게 사실……. (빠른 목소리로) 내가 알아봤는데, 2천만 원만 있으면 웬만한 고기집 하나 차릴 수 있다더라. 우리는 일반 고기집하고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거야. 세련되고 품위 있게. 일식집 분위기처럼 말야. 아니면 이태리식? 그것도 좋겠다. 메뉴에 코스를 넣는 거야. A코스, B코스, C코스. A코스는 생갈비랑 불고기가 같이 나오고, B코스는……
일배 : 이번엔 고기집이냐? 지난번엔 뭐, 여성전용 게임방?
춘식 : 그게 말이야……. 내가 시장조사를 좀 해봤는데, 요즘 게임방은 포화상태더라고.
일배 : 어이고. 그걸 이제 아셨어? 여덟 살짜리 조카도 그런 걱정하더라.
춘식 : (정색하며) 아, 물론 알고 있었지. 그래서 틈새공략을 하려 했던 거 아냐. 근데 게임방 손님들 중에 80% 이상이 남자더라고. 그리고 남은 20%중에 반 이상도 남자랑 같이 온 거고. 나의 예리한 통찰력과 치밀한 분석 끝에, 그 계획은 접었다고 할 수 있지.
일배 : 말은 잘하지. 그래서 고기집을 하시겠다?
춘식 : 내가 이번엔 확실히 시장조사를 했으니깐 틀림없어.
일배 : 돈도 없는 게.
춘식 : 그래서 말인데. 일단 니가 천만 원 대고.
일배 : 내가? 왜?
춘식 : 돈 버는 일이니깐. 민수는 벌써 한다고 했어.
민수 : (춘식에게) 내가 언제? (일배에게) 아니야.
춘식 : 아까 그랬잖아. 나 사주보는 거 듣고. (민수에게 손짓으로 조용하라는 표시를 한다)
일배 : 꿈 깨, 임마. 요즘 때가 어느 땐데 장사를 해. 하던 장사도 다 접는 판국인데.
춘식 : 아니야. 다른 장사는 다 망해도 음식장사는 절대 안 망해.
민수 : 우리 집 앞에 있는 닭집도 망했어.
춘식 : 그건 싸스 때문이지.
민수 : 우리 집 뒤에 햄버거집도 망했어.
춘식 : 그건 트랜스지방산 때문이고. 그래서 우리 유비쿼터스 숯불갈비가 더욱 승산이 있는 거야. 칼로리 적고, 몸에 좋은…….
일배 : 유비꿨어? 그게 뭐야?
춘식 : 뉴스 좀 보고 살아라. 유비쿼터스! (거들먹거리며) 시간, 장소 관계없이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일배 : 그래서. 그거랑 고기집이랑 무슨 상관인데?
춘식 : (머뭇거리며) 뭐,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은 안 해봤지만. 일단 폼 나지 않냐? 가게 이름은 뭔가 있는 듯한 게 좋다니깐.
민수 : 개봉동에 리눅스 떡볶이집 문 닫았더라.
춘식 : 근데 이 자식은 아까부터. 너는 구청에서 일 안하고 남의 가게 망한 데만 조사하고 다니냐?
민수 : 그게 내 일이야.
춘식 : 알았다. 알았어. 근데 리눅스는 어감이 별로 안 좋잖아. 왠지 떡볶이가 눅눅할 것 같고……. 근데 유비쿼터스는 얼마나 세련되고 멋있냐?
민수 : 쾨쾨해.
춘식 : (한숨쉬며) 그래그래. 이름은 천천히 정하기로 하고. (일배에게) 어때, 할거지?
일배 : 너 이번엔 몇 일짜린데?
춘식 : 이번엔 진짜라니깐. 나 한 번만 믿어줘. 너 친구 못 믿어? (일배에게 매달린다.)
일배 : 꼭 부탁할 때만 친구야. (뿌리치며) 안 그래도 짜증나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니까 말 시키지 말고 집에나 가.
민수 : 그러게. 너 올 때부터 표정이 별로던데, 무슨 일 있었어?
일배 : 말 마라. 하루에도 열댓 번씩 다니는 길에서 사고가 났어. 어제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만.
춘식 : 또 빨리 갈라고 새치기 하다가 박았구만. 안 봐도 비디오다.
일배 : 집에 가라 했지. 아직 안 갔냐?

춘식. 일배를 놀리는 시늉을 한다.

민수 : 조심했어야지.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일배 : 어, 별로 세게 부딪치지는 않아서. 범퍼 조금 나갔다.
춘식 : 트럭이 깔고 지나가도 멀쩡할 놈이 다칠 리가 없지.
일배 : 근데 이게 정말.

일배. 춘식을 잡으려 하고, 춘식은 도망친다. 그 순간 일배의 주머니에서 휴대폰 하나가 떨어진다. 민수가 휴대폰을 줍는다.

민수 : 이거 뭐야? 니껀 아닌데.
일배 : (쫓는 걸 멈추고 휴대폰을 돌려받으며) 아, 이거. 버스에서 주웠어. 그래! 내가 이거 줍고 사고 났다니깐. 재수 없어서.
민수 : 돌려줘버리지.
일배 : 그럴라고 해도 잠겨 있어서 연락처도 모르고, 주인한테는 전화도 한 통 안 오고.
춘식 : (휴대폰에 군침을 흘리며) 그래? 일단 줘봐. 내가 방법을 생각해볼 테니깐.
일배 : 허벅다리 깨무는 소리하지 말고, 넌 빠져. (민수에게) 어떻게 해야 되냐?
민수 : 우체국에 갖다 주면 주인 찾아준대. 문화상품권도 주고.
일배 : 문화상품권? 좋은데. 간만에 둘이 문화생활 한 번 즐겨볼까나.
춘식 : 둘이? 왜 둘이야?
민수 : 너도 가게? (비아냥거리며) 사업하실 분이 영화 보러 다닐 시간이 있겠어?
춘식 : (화를 내며) 이게 어디서. 고등학교 때는 우리 대화에 끼지도 못한 새끼가.
일배 : 여기서 고등학교 얘기가 왜 나와?
춘식 : 사실 그렇잖아. 학교 다닐 때 맨날 얻어터지기만 하던 놈이 지금은. 니가 너무 잘 해줘서……
일배 : 됐어. 옛날 일들 갖고.
민수 : 그러게. 쟨 아직도 자기가 고등학생인 줄 아나봐.
춘식 : 근데 이게 진짜!
일배 : 그만해! 정신 사나우니까 빨리 집에나 가.
춘식 : (단호하게) 그래. 간다 가. 대신, (다시 비굴하게) 휴대폰 한 번만 보자. 어떻게 생겼나만 볼게.
일배 : 민수야. 얘 뼈다귀 하나 물려줘라. 이빨이 간질간질 한갑다.
춘식 : 내가 갖겠다는 것도 아니고 한 번 보기만 하자는데 왜 이렇게 쌀쌀맞게 굴어.
일배 : 발정 난 암고양이가 따로 없네. 일이나 이렇게 악착같이 해봐라. 내일 아침에 우체국에 맡길 테니깐 딴 생각하지 말고 구경만 해. (춘식에게 휴대폰을 건넨다)
춘식 : 알았어. 내 것 보다 좋은 건지만 볼게. (눈치보다) 내가 원래 모바일 쪽에 관심이 많잖아. 그냥 순수한 호기심이라고. 호기심.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매우 기뻐한다)
일배 : 쟤는 인생을 왜 저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냐. 근데 이거 갖다 주면 상품권 그냥 주는 거지? 내 신상명세니 그런 거 안 적어도 상관없지?
민수 : 그럴걸. 그냥 휴대폰만 확인할거야, 아마.
일배 : 신상명세 같은 거 적고 그러면 찝찝하더라고. 근데 우리 무슨 영화 볼까?
춘식 : 풀었다!
일배 : 풀었다? 그런 영화도 나왔어? 첨 들어보는데.
춘식 : 풀었다고. 비밀번호.
일배 : 정말? 어떻게?
춘식 : 이 형님이 못 하는 게 어딨냐.
일배 : 이 사기꾼 자식. 너 그딴 건 또 어디서 배웠어?
춘식 : 아니야. 휴대폰 주인, 근면성이 완전 저렴하시더라고. 비밀번호가 4444가 뭐냐?
일배, 민수 : 4444?
춘식 : 그래. 혹시나 해서 1111부터 눌러봤는데, 4444에서 딱 풀리더라고. 어디 사진이나 한 번 봐 볼까나?
일배 : 사진? 그런 게 거기 있어?
춘식 : 야, 고속철이 씽씽 달려서 한반도 구석구석을 반나절이면 갈 수 있고, 낼모레면 동시 생활권 시대가 되는데, 넌 언제까지 경부고속도로 개통만 축하하면서 살래?
일배 : 그게 무슨 소리야.
춘식 : 이게 또 사람 답답하게 만드네. 너는 물론 휴대폰을 전화 걸고 받는 데만 사용하겠지만, 요즘 휴대폰은 (빠른 목소리로. 필요한 경우 직접 행동을 하기도 한다.) 액세서리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고, 사진, 동영상도 찍을 수 있고, 게임기로도 사용할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고, 화상채팅 할 때도 사용할 수 있고, 문자도 보낼 수 있고, TV, 영화도 볼 수 있고, 꺼진 액정을 거울로 쓸 수도 있고, 수첩, 계산기, 전자 사전에다가 음성 녹음까지 할 수 있지. 거기다가 안테나로 귀를 후빌 수도 있고, 아침에 모닝콜도 알아서 여러 번 해 주고, 친구나 애인, 가족들 위치 추적도 할 수 있고, 길 안내도 받을 수도 있고, 또 가끔 오래 통화하고 나서는 달궈진 전화기로 머리를 말 수 있고, 휴대폰 폴더 사이에 조그마한 메모지를 보관할 수도 있고, 진동으로 안마를 받을 수도 있고, 잘 읽지는 않지만 가끔은 책도 읽을 수 있고, 너 좋아하는 만화책도 읽을 수 있고, 음주측정에, 모바일 총명탕에, 소화불량 도우미 휴대폰에, 은행업무까지 다 해준다, 이 말이지, 내 말은. (숨을 헐떡거리며) 이제 좀 이해가 되냐?
일배 : 이 놈의 주둥아리는. 넌 어째 입만 살았냐? 그 말발로 돈이나 좀 벌어와 보지?
춘식 : 그거는……. 내가 아직 운대가 안 맞아서 그렇지. 근데 나 올해는 정말 대박난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머뭇거리며)내가 이 휴대폰 쓰면 안 될까? 휴대폰에도 풍수가 있는데, 내가 아무래도 휴대폰만 바꾸면 운이 확 바뀔 것 같거든.
일배 : 자꾸 칠판 긁다 삑사리 나는 소리 할래? 기계쪼가리에 풍수는 무슨. 잔말 말고 사진이나 봐봐. 남잔가 여잔가.
춘식 : (비아냥거리며) 그건 왜? 그게 궁금해?
일배 : (손을 올리며) 이게 콱!
춘식 : (움찔하며) 알았어. (휴대폰을 보고) 오! 여잔데. 그것도 젊은…….
일배 : 정말?

일배. 춘식의 볼에 얼굴을 맞대며 휴대폰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곁에 있던 민수도 눈치를 보다 슬그머니 다가와 휴대폰을 바라본다. 민수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놀란 일배와 춘식은 민수를 쳐다보지만 이내 휴대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일배 : 오. 예쁜데. 꼭 연예인 같애. 친구들도 다 미스코리아고. (침을 닦으며) 왜 내 주위에는 이런 여자가 없나.
춘식 : 이거 다 화장발, 조명발, 각도발이야. 너도 화장 예쁘게 하고, 조명 좋은데서 각 맞춰 찍으면 딱 이렇게 나온다고.
일배 : 설마.
민수 : 화장 안한 사진도 있던데.
춘식 : 그럼 조명발이지.
민수 : 조명 없는 사진도 많고.
춘식 : 그럼……
민수 : 화장 안하고, 조명 없이 정면에서 찍은 사진도 있어.
춘식 : 넌 뭐 이 여자 대변인이라도 되냐?
민수 : …….
일배 : 우리 주인 직접 찾아줄까?
춘식 : 뭐? 야, 이런 걸 뭣하러 차비 들여가면서 직접 갖다 줘.
일배 : 혹시 아냐? 잘될지.
춘식 : 답답하기는. 내가 이 여자라고 치고, 니가 한 번 휴대폰 돌려줘봐. (일배에게 휴대폰을 건넨다)
일배 : (휴대폰을 받아 들고 춘식에게) 저…… 제가 버스에서 휴대폰을 주웠거든요.
춘식 : (휴대폰을 신경질적으로 낚아채며) 제거 맞네요. 근데 이거 주운 거 맞아요?
일배 : 네. 버스에 두고 내리셨길래 제가.
춘식 : 아저씨. 이거 아저씨가 훔친 거 아니에요? 훔쳐 놓고 겁나서 돌려주는 거 아니냐고요.
일배 : 그럴리가요. 전 도둑질 같은 거 한 번도 해 본적 없다고요.
춘식 : 뭐 딱 보니까 얼굴이 도둑놈 상인데요, 뭐.
일배 : (화를 내며) 뭐라고요?
춘식 : 어머. 인상 변하는 것 봐. 이거 완전 상습범이구만.
일배 : 아니, 이 아가씨가 주운 물건 돌려주니깐 고맙다는 말은 못할망정.
춘식 : 됐어요. 암튼 돌려줬으니까 용서해 드리죠. 안녕히 가세요. (휙 돌아섰다가 다시 춘식을 보고) 이럴 게 분명하다고.
민수 : 아니야. 이리 줘. (휴대폰을 받아서 일배에게 주며) 다시 해봐.
일배 : (휴대폰을 받아 들고 민수에게) 저…… 제가 버스에서 휴대폰을 주웠거든요.
민수 : (따뜻한 목소리로) 어머, 이 귀한 걸. 정말 고마워요.
일배 : 고맙긴요, 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다음부터는 안 잊어버리게 조심하세요.
민수 : 네, 꼭 그럴게요. 성의 표시로 저녁이라도 사고 싶은데 시간 어떠세요?
일배 : 뭐, 시간이야 늘 넉넉합니다.
민수 : 다행이네요. 그럼 제가 오늘 풀코스로 모실게요. 제 친구 한 명 불러도 될까요?
일배 : 물론이죠. 그럼 제 친구도…….
민수 : 좋아요. 그럼 우리 2 대 2로 뜨거운 밤을 보내요. (요염하게) 우우. 이럴거라고.
일배 : (반색하며) 그렇지? 이렇게 예쁜 아가씨는 매너도 끝내줄 거야. 그럼 내가 내일……
민수 : 내가 갈게.
춘식 : 너네 미쳤어? 아주 바람이 단단히 들었구만.
일배 : (춘식의 말은 무시하고) 니가? 왜?
민수 : 나는 직업도 확실하고 인상도 좋잖아.
춘식 : (둘 사이에 껴서) 그만들 좀 해라. 이거 갖다 줘봐야 분명……
일배 : (춘식을 뒤로 밀쳐내며) 그럼 니 얘기는 지금 내 직업이랑 인상이 안 좋다는 거냐?
민수 : (정색하며) 아니지. 그럴리가. 내 말은……
춘식 : (다시 끼어들며) 맞아. 얘가 너 무시한거야. 쳇. 동사무소 서기가 무슨 벼슬이라고.
일배 : (다시 민수를 밀쳐내며) 그럼 무슨 뜻인데?
민수 : (생각하다가) 응! 이런 여자한테는 내 직업이랑 인상이 어울린다 이거지. 사진에 있는 다른 친구는 너랑 딱 어울리고. 너 귀여운 스타일 좋아하잖아. 귀여운 여자는 너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법이야. 사실 이 여자는 좀 도도해 보이지 않아?
춘식 : 거짓말이야! 이 자식 고등학교 때부터 안 맞을라고 거짓말 밥 먹듯이 했잖아. (민수에게) 아깐 착해 보인다며!
일배 : (춘식의 말은 무시하고) 너 진짜야?
민수 : 그럼.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얘기지.
춘식 : (민수에게) 이 치사한 자식. (일배에게) 너 이 자식 말 믿는 거 아니지?
일배 : (민수에게) 그럼 니가 한 번 만나봐. 대신 그 귀여운 여자는 내꺼다.
민수 : 당연하지.
춘식 : (큰 소리로) 일배야!
일배 : (더 큰 소리로) 나 귀 안 먹었어!
춘식 : (약간 겁을 먹고) 아, 알았어. 근데 너 정말 얘한테 휴대폰 줄 거 아니겠지?
일배 : 줄거야.
춘식 : 이건 휴대폰을 떠나서 아주 중요한 문제야. 민수야, 나야.
일배 :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춘식 : 빨리 말해! 민수야, 나야.
일배 : (춘식에게 꿀밤을 먹이며) 이 자식이. 휴대폰 갖고 싶으니깐 별 소리를 다 하네. 넌 빨리 집에나 가, 임마.
춘식 : (한숨쉬며) 그래. 알았다. 십년 넘게 널 도운 게 결국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 구나. 나 간다.
일배 : 돕기는 지가 무슨.

민수. 조롱하며 춘식에게 손을 흔든다. 그 순간 춘식이 일배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낚아채서 달아난다.

춘식 : 잘 먹고 잘 살아라! (춘식 퇴장.)
일배 : (따라나가며) 야! 너 이리 안와!

일배. 문 밖까지 따라 나가다가 다시 되돌아온다.
일배 : 야, 저 자식한테 빨리 전화해봐.
민수 : 알았어.

민수가 춘식에게 전화를 거는 사이 일배는 발을 동동 구르며 분해한다.

일배 : 간만에 연애 한 번 해보겠다는데 초를 쳐. (주먹을 불끈 쥐며) 너 이 자식 내가 가만두나 봐라. (민수에게) 전화 안 받아?
민수 : 받을 리가 있겠어.
일배 : 쟤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알지.
민수 : 어디 게임방이나 가겠지, 뭐. 걱정 마. 내일이면 돌아올테니까. 쟤 우리 말고 친구도 없잖아.
일배 : 그치? 근데 그 사이에 휴대폰 주인이 전화하면 어떡해.
민수 : 생각해보니깐 그렇네. 정말 우리가 휴대폰 훔친 줄 한 줄 알거 아니야.
일배 : (문 쪽을 쳐다보며) 아유! 저 자식 진짜!

일배와 민수가 한숨쉬며 걱정하는 사이 출입문으로 민수가 제 발로 걸어 들어온다. 상기된 표정이다.

일배 : (춘식의 멱살을 쥐며) 너 이 자식! 5분도 못 돼서 기어 돌아올 놈이 내 껄 훔쳐?
춘식 : (휴대폰을 건네며) 돌려줄게.

민수가 얼른 휴대폰을 받는다.

일배 : 당연히 돌려줘야지! 너 오늘 제대로 맷집 좀 확인해 보자. 이 자식이 겁대가리 없이! (춘식에게 주먹질을 하려 한다.)
민수 : 근데 왜 바로 돌려주는 거야?
일배 : 내일 맞으면 더 맞을 것 같으니깐 그렇지. 별 이유가 있겠어?
춘식 : 그 여자 무당이야.
민수 : 뭐? 무당?
춘식 : 그래. 무당. 우리가 본 사진 뒤에 꺼 보니까 부적이랑 이 여자 굿하는 사진이랑 잔뜩 들어있더라고.
일배 : 그래서 뭐?
춘식 : 그래서 뭐? 니네들 무당 물건 주우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일배 :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멱살 쥔 손을 놓고 생각하다) 가만. 근데 무당도 미팅 하나?
민수 : (약간 동요하는 얼굴로) 어떻게 되는데?
일배 : (민수에게) 맞을까봐 겁나서 수작부리는 거니까 신경 쓰지마. (춘식에게) 오늘은 바로 갖고 와서 한 번 봐 준다. 넌 고등학교 때였으면 아주! 꼴 보기 싫으니깐 꺼져!
춘식 : 안 그래도 휴대폰만 주고 바로 갈라고 했어.
민수 : (춘식에게) 주우면 어떻게 되는데?
춘식 : 궁금해?
민수 :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닌데.
춘식 : 그럼 됐어.(돌아선다)
민수 : (돌아서는 민수를 붙들고) 얘기나 하고 가!
춘식 : 그래. 니네도 얘기는 들어야겠지. 옛날에 들은 건데, 무당 물건에는 귀신이 딸려 다닌데. 무당에 붙어서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귀신이면 얼마나 흉악한 지 대충 감이 오지? 나 간다.
일배 : 저게 맨날 사주 보러 자주 다니더니만, 이젠 별 소릴 다 하네.
민수 : (다시 돌아서는 춘식에게)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춘식 : 나도 몰라. 암튼 될 수 있는 한 멀리 하는 게 좋을 거다.

순간 민수가 조용히 휴대폰을 바닥에 내려둔다.

일배 : (민수의 행동을 보고) 뭐야. 너 겁나냐?
민수 : (정색하며) 아니. 그럴리가.
일배 : 너 겁먹었구나? (휴대폰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이까짓 게 뭐가 무서워.

순간 벽에 걸려 있던 액자가 떨어진다. 놀라는 세 사람. 겁을 집어먹은 상태에서 정전까지 되고 만다.

민수 : (겁에 질려서) 뭐야. 귀신인가봐!
춘식 : 내가 뭐랬어! 그걸 왜 발로 차!

어디선가 여인의 곡소리도 들린다.

민수 : (울먹이며) 진짜 귀신이잖아! (두려움에 떤다)
일배 : 조용히 좀 해! (떨리는 음성으로) 이게 뭐가 무섭다고.

순간 조명이 켜지면서 세 사람은 소리의 정체가 휴대폰 벨소리였음을 안다.

일배 : (안도하며) 전화잖아. (전화를 받는다. 무섭지 않은 척 하지만 약간 떨리는 목소리이다.) 여보세요?
여(목소리) : 네 이놈! 네가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평안할 줄 아느냐!
일배 : (겁먹은 목소리로) 손을 댄 게 아니고요. 돌려 드리려고……
여(목소리) :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느냐! 지금 네가 있는 곳이 어디냐! 내 당장 그리로 가겠다!
일배 : 아니요. 제가 직접 전해드릴게요. 집은 좀.
민수 : (휴대폰을 빼앗아 다급한 목소리로) 양천구 신정3동 733 다시 31 번지입니다. 제발 노여워 마시고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끊어졌잖아. (절망한다)
일배 : 뭐야. 집 주소를 왜 알려줘.
민수 : 화났잖아. 또 귀신 나오면 어떡해.
춘식 : (비아냥거리며) 너 이런 거 안 믿는다며.
민수 : 안 믿는데, 괜히 기분 나쁜 일 만들 필요 없잖아. (시계보고) 시간이 벌써. 나 먼저 가볼게.
춘식 : 가긴 어딜 가. 니가 원래 이 여자 만나기로 했었잖아. 만나보셔야지?
민수 : 내가 언제! 일배가 만난다고 했지.
춘식 : 이 자식. 말 바꾸는 것 봐. (일배에게) 봐봐. 내가 얘 믿지 말랬지?
민수 : 내일 급한 일 있어서 그래. 간다. (밖으로 나가려 한다.)
일배 : (나가려는 민수를 제지하고) 못 가. 너 정말 치사한 놈이구나. 지가 만난다고 할 때는 언제고.
민수 : 무당이라잖아. 난 무당한테 관심 없다고.
일배 : 그래도 못가. 그 여자 올 때까지 여기 있어.
춘식 : (민수에게) 그래, 이 나쁜 자식아. (일배에게) 이 새끼 혼내줘.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일 생기면 무조건 내뺄 생각이나 하고. 그리고 무당 오면 사정 잘 얘기하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 알았지? 내일 저녁 때 올게. (밖으로 나가려 한다.)
일배 : (춘식을 제지하며) 너도 못가.
춘식 : 나는 왜?
일배 : 휴대폰 갖고 싶다며! (춘식에게 휴대폰 건네며) 니가 마지막으로 들고 도망갔으니까 니가 갖고 있어.
춘식 : 난 싫어. 민수 저 자식이 갖고 있어야지. 어차피 자기가 만나려고 했으니깐.
일배 : (민수에게) 그런가? 그럼 니가 갖고 있어.
민수 : 내가 왜? 춘식이 놈이 마지막 주인이었잖아.
일배 : (다시 춘식에게) 그렇지. 그럼 니가.
춘식 : 인상도 좋고, 직업도 튼튼하다고 지가 일배 대신 나가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동사무소에서 밥이나 축내는 게. 우리들 구두 닦아줄 때를 생각해봐, 임마.
일배 : (다시 민수 쪽으로 휴대폰을 건넨다)
민수 : 고등학교 때 그렇게 잘 나가서 아직도 백수로 지내세요? 그리고 솔직히 너 싸움 잘해? 일배 꽁무니에 붙어서 힘없는 애들이나 괴롭힌 주제에.
일배 : (다시 춘식 쪽으로 휴대폰을 건넨다)
춘식 : 너보단 잘해. 그리고 졸업 전날까지 우리한테 돈 갖다 바쳤던 놈이 우리랑 같이 놀면 쪽팔리지도 않냐?
일배 : (다시 민수 쪽으로 휴대폰을 건넨다)
민수 : 일배한테 준거지, 너한테 준거냐? 그리고 서른이 다 되도록 백수로 지내는 건 안 쪽팔리고?
일배 : 그만! 이 자식들이 보자보자 하니깐. 둘 다 안 갖고 있겠다면 누가 갖고 있으라고!
춘식 : 나야 모르지.
민수 : (주저하며) 근데 솔직히 휴대폰 들고 온 사람은 너잖아.
일배 : 뭐?
민수 : 사실 그렇잖아. 니가 그거 안 들고 왔으면 이런 일 없었을 거 아냐.
춘식 : 그러게. 처음 일 저지른 사람이 책임을 져야지.
일배 : 근데 이 자식들이 정말. (주먹을 들고 춘식의 뒤통수만을 한 대 친다.)
춘식 : (일배에게 머리를 들이대며) 그래! 패라 패! 어차피 계속 무시당할 거, 오늘 돈이나 좀 벌어보자.
일배 : 니가 요즘 멍 자국 좀 빠졌다 이거지? 그래 오늘 한 번 죽자.

일배. 춘식을 바닥에 눕히고 주먹질을 한다.

민수 : 또 쌈박질 하는 거야? 니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지?
일배 : (화가 나서 일어나며) 뭐? 이 샌님 같은 게!

일배가 방심하던 찰나 누워있던 춘식이 일어나 일배를 덮친다.

춘식 : (누워있는 일배에게 주먹질을 하며) 야! 이 나쁜 놈아! 맨날 사람 무시하고, 때리고. 넌 얼마나 잘나서 사람을 패! 무식하게 힘만 쎈 놈이!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깨달은 민수는 몰래 집을 빠져나가려 한다. 그것을 눈치 챈 춘식은 다시 민수를 덮친다.

춘식 : 넌 어딜 가! 니가 제일 나쁜 놈이야! 불쌍해서 좀 봐줬더니 이젠 머리 꼭대기에 올라설라고!

쓰러져 있던 일배도 일어나 그 둘과 엉겨 붙어 싸우고, 무대는 아수라장이 된다. 그 순간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일배 : 뭐야!
춘식 : 무당!
민수 : 무당님이지!

셋 모두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다시 울리는 초인종 소리. 일배가 나가서 문을 연다. 들어오는 섹시한 차림의 미모의 여인. 무당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여자 : (집으로 들어서며) 문을 왜 이렇게 늦게 열어요? (세 사람을 보고) 싸웠어요?
춘식 : 아니요. 근데 누구……
여자 : 아, 저요? 아까 전화 드렸잖아요. 휴대폰 주우신 분 맞죠?
춘식 : (놀라며) 맞긴 맞는데…….
여자 : (크게 웃고) 무당 아니냐고요? 휴대폰에 그런 사진 찍어두면 잃어버려도 금방 되돌려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찍어놨는데. 속았구나? (윙크한다.)
민수 : 그럼 아까 전화는……
여자 : 그렇게 해야 완전히 속죠. 왜요? 겁먹었어요?
춘식 : 아니요. 겁 안 먹었어요. 저는 무당 같은 거 안 믿어요.
여자 : (바닥에 있는 휴대폰을 보고) 어머! (휴대폰을 정성스럽게 들며) 내 휴대폰. 잘 있었어? (세 사람에게) 할부금 한 번도 안 냈는데 잃어버려서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일이 바빠서 전화할 시간도 없고 해서…….

세 사람. 여자가 하는 행동을 멍하니 바라본다.

여자 : 암튼 고마워요. 잘 보관해줘서.
민수 : (목소리를 깔며) 고맙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여자 : 그래도……. 제가 저녁이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휴대폰 주워……
민수 : 아, 제가 원래 직접 찾아뵙고 전해드리려 했던 사람입니다. 저랑 가시죠. 저녁은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여자 : 아, 그래요? 그럼 나가시죠.
춘식 : (민수를 째려보며) 아니요. 얘는 아가씨가 무당인거 알고 질질 짜면서 도망가려고 했고요. 제가 마지막에 휴대폰 갖고 있던 사람입니다.
여자 : 아 그래요? 그럼……
일배 : (춘식을 밀쳐내며) 아니에요. 얘는 지가 이 휴대폰 갖다 쓴다고 했어요. 제가 버스에서 휴대폰 주운 사람입니다.
여자 : 아니, 그럼……
민수 : 접니다.
춘식 : 저에요.
일배 : 저라니까요.
여자 : 아, 뭐 이렇게 복잡해요. 저 문 앞에 있을 테니까 결정보고 나오세요. (퇴장)
일배 : (주먹을 들고) 다들 얻어터지기 싫으면 여기 꼼짝 말고 있어.
민수 : (일배의 주먹을 끌어내리며) 또 힘으로 할라고? 오늘은 일단 내가 만나고, 내일 친구 소개시켜줄게.
춘식 : 또 쟤 말 믿는 거 아니겠지? 차라리 내가 나갈게. 저런 샌님 보다는 내가 낫지. 내가 잘 되면 바로 친구 소개시켜줄게.
민수 : 넌 저 여자 밥 사줄 돈이나 있어?
춘식 : 저 여자가 사준다잖아!
민수 : 거지같이 얻어먹게?
춘식 : (민수의 멱살을 쥐고) 근데 이 자식이 자꾸!
민수 : (춘식의 멱살을 마주 쥐고) 그래 해보자! 내가 솔직히 옛날부터 너한테는 이길 자신이 있었어. 덤벼 봐!
일배 : (둘 사이를 가르며) 아니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지들끼리 김치국 마시고 있네.
민수, 춘식 : (일배를 밀쳐내며) 넌 빠져!
일배 : 이것들이 정말!

셋이 어우러져 또 한바탕 난리를 벌인다. 암전.

여(목소리) : 아직 멀었어요?
일배, 민수, 춘식(목소리) : 아니요. 지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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