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반야월 역 처마 밑 / 밤

<자막 1949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역사의 처마 아래에서 뿜어져 나오는 귀복의 입김, 숨이 찬 듯 일정치 않다.
귀복의 고무신에 떨어지는 비, 귀복이 내려다보면 자기 발보다 훨씬 큰 고무신에 물이
가득하다.
발만 움직여 한 짝씩 조심스럽게 물 빼는 귀복
이때 멀리서 귀섭과 말자가 귀복을 부르는 소리 들린다.
긴장하며 벽에 몸을 더 밀착시키는 귀복

귀섭/말자off 복아, 복아

귀복, 담벼락에 더 바짝 붙어 선다.
귀복이 조심스럽게 고개 돌려보면, 귀복의 시선으로 보이는 두 사람

귀섭 어무이, 지는 이쪽으로 가보께예.
말자 ( 울음 섞인 ) 오야

귀섭, 역의 맞은편 가게 쪽으로 뛰어 간다.
다시 재빠르게 고개 돌리는 귀복
귀복이 숨어 있는 담벼락 쪽으로 뛰어 오는 말자, 두리번거리며 계속해 귀복 찾는다.

말자 복아... 복아... 이노무 새끼, 오늘 잡히기만 해 봐라.

귀복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말자
숨 고르는 귀복, 말자가 뛰어간 쪽 향해 씩 한 번 웃어 준다.
그리고 나서 벽을 타넘어 플랫폼 쪽으로 숨어 들어가는 귀복
다람쥐처럼 빠르다. 휭~


S#2. 플랫폼 / 밤

기차, 이미 천천히 출발하고 있다.
기적소리와 함께 희뿌연 연기 쏟아지면
연기를 가로지르며 기차 잡으려고 뛰고 있는 귀복
몇 번이나 손을 기차에 대지만 놓치고 만다.
큰 고무신 때문에 자꾸만 뒤 처지면, 아예 고무신을 벗어 손에 들고뛰는 귀복
고무신을 들고 흔들면서 역무원에게 소리지른다.

귀복 ( 숨이 차 헉헉대며 ) 보소, 보소. 내도 갑니더, 서울.

전속력으로 뛰는 귀복,
오른 손에 들고 있던 고무신 겨드랑이에 끼고 역무원에게 손 내민다.
뚱한 표정의 역무원 ‘억지로’ 손 내밀어 귀복 잡아준다.
드디어 열차에 오르는 귀복
숨이 차 얼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좋아 죽겠다는 표정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고향에 손 흔들어 준다. 열심히! 열심히!
콧구멍도 한 번 벌렁거리고.
역무원, 그런 귀복을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귀복이 그를 바라보고 웃자, 웃고싶지 않은데 웃는다는 듯, 엉성한 미소 한 번 지어준다.
귀복이 기차 안으로 사라지자 역무원, 귀복 잡아줬던 손보면 더럽다...
역무원, 손을 엉덩이에 슥 한 번 닦고
언짢은 표정으로 흰 깃발 흔든다.
아까 귀복이 손 흔들었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아주 힘없이...
역무원의 깃발 신호와 함께 천천히 사라지는 기차...


S#3 열차 안 / 밤

뭔가 장한 일을 해냈다는 듯 위풍당당한 귀복, 여기 저기 둘러보며 자기 자리 찾는다.
자리 찾았다. 사장님 포즈로 자리에 앉는다. 좋아 죽는다. 표도 한 번 펴 봤다가. 미소짓고...
목도 한 번 돌려보고, 기지개도 한 번 켜 주고,
사람들을 한 번 쭈욱 돌아보는데...
앞자리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 뚱한 표정으로 귀복 쳐다본다.
창문 쪽으로 고개 돌리는 귀복,
인제는 안 볼까 싶어 천천히 고개 돌리면, 할아버지 아직까지도 보고 있다.
귀복, 어색한 미소 한 번 지어주고, 발 쳐다보고 있다가 다시 보면 할아버지, 아직도 보고 있다.
귀복, 할아버지 눈 피해 보따리에서 찐 계란 꺼내 한 입에 쏙 넣는다. 눈동자만 굴려 할아버지 쳐다보는 귀복
할아버지, 아직까지 쳐다보고 있다.
귀복, ‘계란 달라는 건가?’ ... 망설이다가 계란 한 개 건넨다.
할아버지 계란 보지 않고 받으면서 뭔가 묻고 싶은 표정, 간절하다.

귀복 ( 계란 꼴깍 삼키며 ) 윤귀복이라예.

할아버지 계란 손에 쥐고 이맛살 찌푸린다.

할배 그기 아이고.
귀복 그라믄? ...
할배 나이가 및인데...
귀복 열 둘이라예...( 침 꼴깍 )
할배 ...... 아니, 얼라가 설 가는 기차를 혼자 와 탔나 말이다, 내 말은.......

귀복 어떡하지 싶은 얼굴
그 얼굴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

귀복 ...가...가족들이 다 죽어갖고예, 서울 갑니더.

귀복에 대한 동정심으로 곧 표정 바뀌는 할아버지,
거의 울 지경이다.

귀복 ...서울에 친척이 있어가.
할배 친척?

할아버지, 부연 설명을 더 원하시는 듯, 다시 간절한 눈빛
귀복 할 말이 더 없다.
뭐라고 얘기는 더 만들어야겠는데...
말못하고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 귀복
할아버지, 어린것이 거짓말까지 하며 할아버지를 달래려고 한다는 것에 더 가슴이 아픈 듯, 손수건까지 꺼내 코를 푸신다.
안 되겠다 싶은 귀복.
다시 별 생각 없다가, 뭔가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 꺼내 할아버지께 내민다.
오랫동안 간직한 듯 낡은 한 장의 흑백 사진

할배 ( 안경 내리며 ) 누... 꼬?
귀복 사촌입니더. 이기 이름은 갱희라꼬

할아버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인데, 기억은 잘 안 나는 듯,
사진과 귀복을 번갈아 본다.
많이 안 닮았다.

할배 ...사촌? ... 야는 어무이가 미인인갑네.
귀복 ...

갑자기 픽 웃는, 그러니까 거의 비웃는 게 맞다 싶은 웃음소리 들리면,
할아버지 옆자리의 사내, 신문으로 얼굴 가린 채 웃고 있다.
다들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걸 알면 머쓱해진 사내... 여전히 신문으로 얼굴 가린 채 할아버지 손의 사진 슬쩍 가져가 한 마디 한다.

사내 (귀섭) 이쁘네. ( 한 자 한 자 강조하며 ) 사...촌...!!!

귀복, 으쓱하다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 같아 서서히 고개 돌려 사내 주시하면
신문 천천히 내리는 사내
표정 바뀌는 귀복, 일어나 뛰려고 한다.
재빨리 목덜미 잡는 사내 (귀섭)
할아버지, 그 난처한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 손만 휘저으신다.

할배 아한테 와 이라는교?

그런 할아버지 보며 싱긋 웃기만 하는 귀섭

귀복 ( 몸 흔들며 ) 놔라. 못 놓나?
할배 고아라꼬 이라는교? 놓고 얘기하소, 고마.

귀복, 아무리 몸 흔들어도 귀섭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귀섭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귀복
귀섭, 말없이 귀복 끌고 나가다가 할아버지 보며 한 마디

귀섭 야 죽었다던 햄입니더.

매달려 가는 귀복과 귀섭의 뒷모습
귀복, 여전히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빨래가 걸려 있는 듯

귀복 아, 열차 출발했는데 어딜 가노? ... 잘못했다. 봐도... 봐주소, 한 번만요, 히야. 햄!!!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런 그들 쳐다보는 할아버지,
아까 귀복이 준 그 계란 말없이 까 잡수신다.


타이틀 < 햄 >

S#4. 귀복 집 안방 / 밤

말자가 귀복 때리는 소리, 온 집안에 가득하다.
집 안 깊숙이 들어가면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귀복,
너무 맞아 고통으로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입술만 깨물고 있는 귀복.
구석에서 책 읽고 있는 귀섭, 맞고 있는 귀복 보며 싱긋 웃다가 안 본 척 다시 책 읽는다.
엄한 표정의 말자 인정 사정없이 귀복의 종아리 내리치고 있다.
갑자기 눈뜬 귀복, 옆에서 책 읽고 있는 귀섭을 보며 입술 씰룩.
그러면 슬쩍 벽 쪽으로 돌아앉는 귀섭
귀복, 괘씸한 듯 특유의 콧구멍 벌렁거리기 하면

말자 니는 맞는데도 딴청 피나?

안 되겠다는 듯 회초리 더 높이 올리는 말자

귀복 ( 회초리 피해 앞으로 한 발짝 나가며 ) 아. 히야, 니가 말 쫌 해라.
말자 이 섀끼가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린다. 어이?

말자, 피한 귀복 끌어당겨 더 세게 때릴 듯 회초리 높이 올린다.
회초리 천천히 종아리에 다가오면 중대 결심했다는 듯, 장엄한 표정으로 회초리 두 손으로 부여잡는 귀복,
귀복의 태도에 놀라는 말자,
둘 사이의 힘 대결, 잠깐이지만 길게 느껴진다. ( stop motion )
가만히 앉아 있던 귀섭, 효자손으로 귀복의 머리 때린다.

귀섭 이노무 자식, 어무이한테 무슨 버르장머리고?
귀복 아!

갑자기 가해진 머리의 충격으로 손의 힘을 빼버린 귀복,
회초리, 균형을 잃고 귀복의 뺨을 강타한다.
정확하게 뺨의 반을 나눈 회초리선, 빨갛다.
뺨 부여잡는 귀복, 고통 때문에 반사적으로 자꾸만 눈물이 나온다.

귀복 사랑이 죄가?


S#5. 귀복 방 / 밤

귀복 엎드려 자고 있다.
아직까지 빨갛게 그어져 있는 귀복 뺨의 회초리 자국.
한 쪽 눈에는 눈물 자국까지 있다.
귀복 잠꼬대한다.

귀복 갱희야, 쪼매만 기다리라.

그런 귀복의 머리 툭 때리는 귀섭, 회초리 자국보고 깔깔깔 웃는다.

귀섭 지도 남자라꼬...

귀복 뺨의 회초리 자국 보며 후후 불어주는 귀섭
벌겋게 부어 있는 종아리 조심스럽게 만져보고 약 찾는다.
이때 약초 바구니 들고 들어오는 말자

말자 ( 귀복 보며 ) 잠들었나?
귀섭 예...
말자 ( 여전히 귀복 보며 궁시렁 ) 지랄 염병을 떤다. 좌우지간.

말자, 자리에 앉아 귀복의 종아리에 아무렇게나 약초 붙인다.
약 찾았던 귀섭, 조용히 약 서랍 안에 도로 넣고 말자가 가져온 약초를 귀복의 종아리에 함께 붙인다.
화난 표정이던 말자, 갑자기 웃는다. 웃음소리 점점 커진다.
그런 말자 이상한 듯 쳐다보는 귀섭
말자, 웃고 있다가 귀섭 보고 민망한 듯 이번에는 열심히 약초 붙인다.
그러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 꺼낸다.

말자 어린 기, 지가 무신...

귀섭, 말자 얼굴 빤히 쳐다본다.

말자 사랑을 안다꼬...

씨익 웃는 귀섭

말자 ...이쁘나?
귀섭 네?
말자 가 말이다.
귀섭 ( 알았다. ) 아... 네.
말자 및 등이고?
귀섭 ( 한참 생각하다가 ) 귀복이보다... 한... 십오 등 정도 윈가?

말자, 피어오르는 웃음 참을 수 없다. 그러나 입 꾹 다물며 웃음 참는다.

말자 ... 가스나 공부는 잘하는갑네.
귀복 ...
말자 우리 복이가 한 이십 등 정도는 안 하나? 맞제?
귀섭 ... 그기...
말자 ( 인상 찌푸리며 ) 그라믄...? 삼십 등?
귀섭 ( 한 참 떠올리다가 ) 사...십...
말자 ( 목소리 떨리며 ) 사십 등?
귀섭 사십... 팔 등요.
말자 그라믄 가는...
귀섭 ( 눈으로 계산한다. ) 삼십... 삼 등?

일그러지는 말자의 표정, 그러니까 33등 하는 여자애를 좋아한단다, 귀복이가...
말자, 애써 웃음 짓는다.

말자 뭐... 성적이 그래 중요하나? 이름이... 갱...
귀섭 경희요.
말자 그래 갱희, 난중에 우리 메누리 삼아도 될라? 아이고야, 서울 살면은 그기, 연락이 안 끊기겠나?

자못 심각해진 말자
귀섭, 그런 말자와는 상관없이 약초 붙이는 것에 여념이 없다.

말자 가가 우리 복이를 마이 좋아했는갑다.
귀섭 ...
말자 살살 좋아했나?
귀섭 ...
말자 ... 그라믄, 가가 여운갑네, 속마음도 딱 숨키고.
귀섭 경희 여우 아인데... 머스마한테 관심이 아예 없는 거 같든데...

말자 갑자기 일어난다.
귀복이랑 똑같이 콧구멍 벌렁거린다.

말자 ( 냉랭한 목소리로 ) 자라이.
귀섭 네.

말자, 나가려다 말고 자고 있는 귀복 째려보더니 종아리 세게 때린다.
귀복 아픈 듯 소리내나 여전히 잘 잔다.

말자 ( 궁시렁거린다 ) 잘 한다. 지 좋다도 안 하는 가스나 때문에... ( 나간다. )
귀섭 주무이소.

귀섭, 말자가 나간 쪽 바라보다가 뭔가 생각난 듯

귀섭 아... 오십 팔등인데, 복이...

귀섭, 귀복 종아리에 약초 마저 다 붙인다.


S#6. 귀복 방 / 밤

귀복, 일어나 뭔가 쓰고 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나가려는 듯 단단히 준비한 흔적이 역력하다.
귀마개를 쓰고, 장갑까지 끼고 보따리 맨 채 열심히 쓴다.
다 썼다.
의미심장한 표정의 귀복
자고 있는 형 바라보며 딴엔 가슴이 뭉클한 듯,
그러나 이내 고개 저으며 의지를 다지고
형의 머리맡에 쪽지를 두고
조심스럽게 문 열고 나간다.
귀섭, 귀복이 나가는 소리에 아직 잠이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기지개 켜며
귀복이가 머리맡에 남긴 쪽지 발견하고 읽는다.


S#7. 귀복 집 마루 / 밤

귀복, 고무신을 신고 곧바로 일어나려다가 다시 앉아 뭔가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하늘 쳐다보면,
경희 얼굴...

귀복 내... 다 버릴 수 있다. 어무이, 햄... 니만 있으면 된다.

귀복, 마지막으로 하직 인사라도 하듯 일어나 마당에서 집 향해 절한다.


S#8. 귀복 방 / 밤

귀섭 하품하고 있다.
한 손에 쪽지 쥐고, 문 바라보는 귀섭
싱긋 웃는다.
다시 하품하고 잠자리에 드는 귀섭
손에 꼭 쥐어져 있는 쪽지...
쪽지의 비뚤비뚤한 글씨 ‘ 내를 찾지 마라. ’ ...


S#9. 귀복 집 마당 / 낮

귀섭 마당 쓸고 있다. 하품하며 나오는 말자.

말자 일났나?
귀섭 예.
말자 ( 귀복 방에 대고 ) 복아, 복아. 야는 잠귀신이 붙었나
귀섭 어무이... 복이 일찍 나갔십니더.
말자 어?
귀섭 ( 주머니에서 쪽지 꺼낸다. ) 이거...
말자 이기 뭔데?

말자, 쪽지 펴 마치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입술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귀섭에게 도로 주며

말자 니는 어무이 글 몬 읽는 거 모리나? 이기... ( 궁시렁 ) 사람을 놀리나.


S#10. 귀복 집 마루 / 낮

상 차려져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밥 잘먹고 있는 귀섭...
말자, 쪽지 내용이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듯 아랫입술을 꼭 깨문다.
밥도 안 먹고 귀섭만 보고 있는 말자...
귀섭, 후루룩거리며 국 마신다.
말자, 침 한 번 꼴깍 삼킨다.
그래도 무반응인 귀섭

말자 고마 묵고...

귀섭, 숟가락 입에 넣고 말자 쳐다본다.

말자 ( 쪽지 펴며 ) 이거...
귀섭 ( 밥 씹으며 ) 아...
말자 뭐라는데? 복이가?
귀섭 ... 지 찾지 말라꼬
말자 뭐라?
귀섭 경희 찾으러 다시 간답니더.
말자 아이고야, 이놈 자슥이 결국 일을 냈다. 냈어... 거가 어디라꼬 혼자 가노? 신령님요...
우야노, 섭아, 일나라. 가자. 안 일나나?
귀섭 ( 국 뜨며 ) 어무이, 귀복이 못 갑니더.
말자 어?
귀섭 못 갑니더, 서울.
말자 무슨 말이고? 그기?
귀섭 차비가 없을낍니더.
말자 ... 그라믄, 야가 어디갔노?

귀섭,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계속 밥 먹는다.

말자 ... 섭아.
귀섭 이따 수업 끝나믄 제가 찾아 올께예.

계속해 밥 먹는 귀섭
그런 귀섭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말자


S#11. 귀섭 반 교실 / 낮

하교시간 다 돼 간다.
칠판에 과제물 적어주고 있는 귀섭
칠년, 복상, 선엽, 자기들끼리 쪽지 전해주고 받으며 꽤나 심각한 표정들이다.
소곤거리기도 했다가 귀섭 돌면 모른척
짧지만 바로 포착하는 귀섭

귀섭 빠뜨리지 말고 다 해 온나, 알았나?
아이들 예.
귀섭 반장
반장 차려, 경례.
아이들 고맙십니더.
귀섭 오야, 놀지 말고, 바로 집에 드가라, 알았제?
아이들 예.


#12. 장 / 낮

말자, 과일 팔고 있다.

말자 ( 가락 넣어) 사과가 맛나예. 배도 사가이소.

말자, 지나가는 아줌마 팔 잡는다.

말자 보소, 아지매, 이리 와보소.

팔 놓고 가버리는 아줌마.

말자 아이고야, 그냥 가면 후회할낀데... ( 궁시렁 ) 지랄, 궁디 흔드는 것 좀 봐라. 축 쳐 져가 그래 흔들어 싸면 누가 봐 줄지 아는갑지?

앞집 국밥 장수인 김씨, 손님들에게 국 퍼주다가 그런 말자 보며 웃는다.
김씨, 앞치마에 손 닦으며 말자에게로 걸어온다.

김씨 니, 손님들한테 욕 좀 고마해라.
말자 내가? 은제?
김씨 ( 혀 끌끌 차며 ) 저저... 그나저나, 복이는 들어왔나?
말자 그 섀끼 얘기 꺼내지도 마라. 오늘 또 나갔다 아이가?
김씨 즈그 어무이 똑 닮았네.
말자 ( 김씨 째려보며 ) 이기

지나가던 청년단원들 두 명 건들거리며 이 집, 저 집 발로 툭툭 치고 침 뱉고 지나간다.

단원1 장사들 잘 하쏘. 빨갱이 숨키주면 우찌 되는지 알제?
단원2 대갈통에서 피고름 질질 나오게 마야 안 되나?

뭐가 좋은지 낄낄대며 걸어가는 그들
말자, 그런 그들에 속이 뒤집히는 지 일어난다.

말자 ( 그들에게 들릴 듯 큰 목소리로 ) 나라가 우째 될라꼬 이 모양이고?
김씨 섭아, 고마 앉아라.

다급하게 말자 앉히는 김씨
청년단원들 듣지 못하고 걸어나간다.

말자 내가 뭐를? 자들 봐라, 쪽발이보다 더한다 아이가?
김씨 입 조심해라.
말자 아이고야, 쪼매만 저거들 눈에 나믄 빨갱이라 몰미...
김씨 입 다물라 카이. 니 요새 세상에 입 조심해야 되는 거 모리나? 감박골 진상이 아부 지랑 수남이 아부지 니처럼 고래 입 나불거리다가 끌리 갔단다. 니도 안 죽을라믄 그 썽깔 좀 버리라. 으이?

입 삐죽거리는 말자


S#13. 교문 앞 / 낮

선엽, 교문 옆벽에 등대고 숨어 있다.
칠년, 복상 나오면 재빠르게 그들 앞으로 보내는 선엽
선엽, 학교, 거리 일각 돌아보며 누가 따라오나 관찰한다.
아무도 없는 걸 알면 빠르게 이동하는 아이들
마치 007작전 같다.


S# 14. 다리 밑 / 낮

칠년, 복상, 선엽 순으로 뛰어 들어오면
다리 밑, 바위 위에 앉아 우수에 젖어있는 귀복
어제 가출한 의상 그대로다.
귀마개... 솜옷... 좀 웃긴다.
아이들, 숨차다.
서로 의미 심장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귀복에게 다가가 말 거는 선엽

선엽 대장
귀복 ( 못 들은 듯 ) ...
선엽 대장
귀복 ( 돌아보며 ) 어... 왔나?
선엽 그래. 대장 니 와 이리 힘이 없노?
귀복 ... 아이다. 누구 뒤밟은 사람은 없었제?
칠년 어, 우리가 누군데. ( 몸으로 북두칠성 그리며 ) 그 유명한 칠성파 아이가?
선엽 니, 밥은 쫌 먹었나?

귀복, 고개 젓는다.

복상 갱희, 그 가시나는 와 전학을 가갖고 우리를 이래 힘들게 만드노? 여시 같은기...

귀복, 복상을 째려보면 복상, ‘흡’ 하고 고개 숙인다.

칠년 근데, 내 궁금한 기 있다.
귀복 뭔데?
칠년 갱희도 대장 니 좋아하나?

인상쓰며 칠년 째려보는 귀복

선엽 ( 칠년 보며 ) 이 눈치없는 놈으 섀끼... 니가 그래 말하믄 대장 모가 되노? 갱희가 복이 안 좋아하는 거는 우리반 아들 다 안다 아이가? 맞제, 복아.

콧구멍 벌렁거리며 선엽 째려보는 귀복


S#15. 야학 교실 / 밤

귀섭, 칠판에 판서중이다.
“ 사람을 위한 길 ”... 쓰고는 분필 놓는 귀섭
교실 밖에서 귀섭 바라보며 미소짓는 은하
귀섭 돌아서다 그런 은하 발견한다.
헛기침하는 귀섭, 쑥스럽지만 좋은 듯

귀섭 자, 다같이 이십일 쪽 큰 소리로 읽는다. 쌤 잠깐 나갔다 오께. 시작

큰 소리로 책 읽는 야학 사람들


S#16. 야학당 앞 / 밤

난간에 앉아 있는 귀섭과 은하
은하, 가지고 온 꾸러미를 푼다.

귀섭 힘든데 뭘라꼬 이란 거를 매매 싸오노?
은하 힘들기는... 내는 뭐 집에서 노는데 와. 니가 더 힘들지.
귀섭 뭐가 힘드노?
은하 아침 내내 아들한테 시달리고, 밤에는 여 와서 이래......
귀섭 내는 선생이 천직인갑다. ( 은하의 볼 살짝 꼬집으며 ) 걱정마라, 응?
은하 ... 복이는 집에 들어왔나?
귀섭 오긴 왔는데, 또 나갔다. 오늘 아침에......
은하 엄마야, 머시마... 독하네.
귀섭 지가 아무리 독해도, 부처님 손바닥 안 아이가?

입 한 가득 떡 넣어 오물거리며 씨익 웃는 귀섭


S#17. 동굴 안 / 밤

아이들 모여 앉아 있다.

선엽 그래, 니 또 갈끼가?
귀복 사나가 함 칼을 뽑았시믄 끝짱을 봐야지.
선엽 오야, 그라믄 가라. 차비야 또 모으면 된다.
칠년 또? 내, 그때 어무이한테 말 때 뒤지는 지 알았다... 냄비 팔아무쓸 때.

선엽, 칠년 째려본다.

선엽 꼬추가 아깝다... 가스나도 아이고.
귀복 됐다.
선엽 느그들, 싸온 거 내놔 봐라.
칠년 ( 누룽지 꺼낸다. ) 자...
선엽 칠녀이 니는 만날 누룽지다. 이거 묵고 대장이 무신 힘을 내겠노? 니는 대장한테 충 성심이 이 정도빠이 안 되나?
복상 ( 으쓱하며 자랑스러운 듯 초코렛 꺼낸다. ) 내는 초코렛 가져 왔다.
귀복 됐다. 뭐 물 기분 아이다.

아이들, 귀복의 눈치 살핀다.
분위기 띄우려는 듯 선엽 나선다.

선엽 ... 칠녀이 니 뭐하노? 니 빨리 춤춰라.
칠년 와?
선엽 누룽지만 싸왔으니께네.
칠년 그라믄 니는?
선엽 내는 노래 잘하니까 노래한다.
복상 내는 뭐 하꼬?
선엽 복상이 니는 잘하는 거 없으이 그양 박수쳐라.

복상 보며 깔깔깔 웃는 칠년
그런 칠년 머리 때리며 ‘니나 잘해라’ 궁시렁대는 선엽
귀복, 피식 웃는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들은 듯 집중하는 귀복, 표정 점점 변한다.

귀복 튀라.

아이들 어안이 벙벙하다.

귀복 못 들었나? 튀라, 다들...

뿔뿔이 흩어지며 도망치는 아이들


S#18. 강둑 / 밤

정신 없이 뛰는 귀복
귀섭이 좇아온다.
성큼성큼 뛰어 귀복 뒤에서 끌어안는 귀섭

귀섭 잡았다.

크게 미소짓는 귀섭

귀복 놔라.

귀복, 달아나려고 발버둥치지만 귀섭 더 꼭 끌어안는다.


S#19. 강가 / 밤

돌을 던지고 있는 귀섭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귀복

귀섭 던져 봐라.
귀복 내가 아가?
귀섭 그라믄 아이가?

귀복, 그런 귀섭에 입술 꼭 깨물며 점점 다가온다.
귀섭이 들고 있는 돌 뺏어 던지면, 물수제비... 1, 2, 3... 7번.
물수제비 끝나는 동시에 갑자기 고함 지르는 귀복

귀복 아이거든
귀섭 ( 따라 고함치며 ) 그래 좋나?

입을 꾹 다물며 귀섭 바라보는 귀복,
진지하다.

귀복 좋다.
귀섭 어무이랑 히야보다?
귀복 ( 입술 깨물며 ) 니가 은하 누나야 좋아하는 것만큼 좋다.
귀섭 ( 미소지으며 ) 서울 갈끼가?

말없이 고개 끄덕이는 귀복

귀섭 차비는 있나?

침울한 표정의 귀복, 땅 쳐다본다.

귀섭 니, 역장님한테 찍히가 다시는 기차 숨어서 못 탄다 아이가?
귀복 ......
귀섭 ...알았다. 그라믄 차비 내가 주께.

고개들어 귀섭 보는 귀복,
‘ 정말이야? ’ 하는 표정
금방이라도 웃음이 삐져 나올 것 같다.

귀섭 대신, 방학하면 가는 기다.

귀복, 웃음 참으며 급히 고개 끄덕인다.

귀섭 그라고...공짜는 안 된다.

귀복, 무슨 일인가 싶은...

귀섭 니가, 일해서 벌어라. 히야 밑에서.
귀복 그기 주는 기가?
귀섭 싫나?

귀복, 콧구멍 벌렁거린다.

귀복 ...알았다.

귀섭, 귀복의 머리 쓰다듬으며 거의 끌다시피 데려간다.
어정쩡한 귀복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


S# 20. 귀섭 반 교실 / 낮

귀섭은 풍금 치고 있고, 귀복은 귀섭의 책상에 앉아 아이들 시험지 채점하고 있다.
팔에 쥐가 나는지, 주무른다.
아픈 표정이다.

귀복 선생이, 아들 시험지 채점도 안하고 뭐했노?
귀섭 ( 풍금 치며 ) 니 찾으러 갔다 아이가?
귀복 ( 중얼거리며 ) 지랄...

귀복, 계속 채점하다가 귀섭 눈치 한 번 보고 막 나가려는 듯 아무렇게나 시험지 매긴다.

귀섭 ( 계속해 풍금 치며 ) 똑바로 해라.

움찔하는 귀복, 저 귀신 어떻게 알았나 싶다.
제대로 점수 고쳐 매기고...
귀섭 째려본다.
미운 마음에 쳐다봤건만, 형의 모습은 참... 그림 같다.
보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미소짓는 귀복.
갑자기 이게 아니었지 싶은...

귀복 ( 비아냥거리며 ) 히야, 그 치믄 재밌나?
귀섭 와? 함 치볼라꼬?
귀복 내가 가스나가?
귀섭 ( 피식 웃으며 ) 그라믄 내는 가스나라서 치고 있나?
귀복 아무리 생각해도 니는 전생에 가스나가 확실했다.
귀섭 와?
귀복 니, 가스나들이 하는 거 중에 몬하는 거 모 있노? 풍금치지, 바느질 잘 하지, 밥도 어무이보다 훨씬 잘 한다 아이가?
귀섭 그라믄 머시마 하는 거는 몬하는 거 있나?

귀복, 재수 없다는 듯...
다시 콧구멍 벌렁거린다.
동그라미 아주 크게... 자기 마음 표현하듯 진하게, 아주 빠르게...
다 매겨 버린다.

귀복 윤귀섭 선생님, 다 했거등요. 이거 어떡할까요?
귀섭 책상 아래 둬라.
귀복 알겠십니더. 윤귀섭 쌤!

책상 아래 시험지 놓던 귀복
무심히 지나치다가 책상 밑, 바닥의 이상한 틈새 발견하고...
호기심에 슬쩍 열어본다.
열리는 바닥, 마치 네모난 상자처럼... 바닥 아래 비밀 공간에는 누런 종이 묶음이 들어 있다. 묶음 밑에 반짝이는 나침반 하나
귀섭의 눈치보며 싱긋 웃는 귀복

귀복 ( 중얼거리며 ) 갱희한테 주야지.

종이묶음 먼저 드는 귀복
귀복, 나침반 꺼내려다 종이묶음을 떨어뜨린다.
종이묶음 떨어지는 소리에 갑자기 표정 변하는 귀섭
펼쳐진 종이묶음
‘ 김복구, 장일식, 유승호... 등등등 ’ 종이에는 마을 유지들의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다.
귀섭, 입술 깨물며 다가와 떨어진 종이묶음을 바닥 비밀 공간에 넣고 뚜껑 닫아버린다.
일어나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귀섭

귀복 ... 그양, 함 볼라꼬...
귀섭 가자

귀섭, 귀복 쪽 돌아보지 않는다.

귀복 ... 아... 치사하다. 그깟 나침반 하나 가지고...

귀섭, 호흡을 다시 한 번 고른다.

귀섭 늦었다, 가자.

나가는 귀섭,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못하고 뒤 따라 나가는 귀복


S#21. 운동장 / 낮

앞에서 걸어가는 귀섭

귀복 ( 궁시렁거리며 ) 와 저카노? 으이구, 니는 딱 가스나다.

맞은편에서 급사 한 명이 종종 걸음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
날카로운 표정으로 급사 보는 귀섭, 이내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꾼다.

귀섭 일요일인데 학교 웬일이고?

흠칫 놀라는 급사.

급사 ...예... 찾아볼 게 있어가.
귀섭 ...그래, 빨리 드가 봐라.

급사, 귀섭 곁눈질로 보며 걷다가 뒤따라 나오고 있던 귀복과 부딪힌다.
들고 있던 장부들 떨어뜨리는 급사.
귀복, 장부 들어 건넨다.

귀복 이거
급사 ...그...그래. 고맙다.

총총걸음으로 들어가는 급사
귀섭, 급사의 그런 행동들 예리하게 쳐다본다.
귀복, 그러는 사이 귀섭 앞까지 걸어온다.

귀복 니는, 사나가 그런 걸 가지고 삐지나? ( 궁시렁 ) 좌우지간 가스나는 안 돼.
귀섭 뭐?
귀복 ( 움찔 ) 배고프다꼬. 가자.
귀섭 ... 그래. 가자.


S#22. 길 / 낮

자전거 타고 가고 있는 두 형제,
자갈밭 때문에 자전거 자꾸 덜덜거린다.

귀복 운전 쫌 잘해라. 궁디 아파 뒤지겠다.
귀섭 니 궁디 살이 쪄서 안 그렇나?
귀복 뭐?
귀섭 살 쫌 빼라. 그래가 경희가 니 좋다 하겠나?
귀복 이기?

귀복, 귀섭의 간지럼 태운다.
간지럼 타는 귀섭

귀섭 ... 오야. 알았다. 고마해라.
귀복 니, 자꾸 까불면 가만 안 둘끼다.
귀섭 ( 귀복 말투 따라하며 ) 가만 안 둘끼다.
귀복 이기, 참말로...

웃는 귀섭,
그렇게 자전거 멀어져 가고...


S#23. 귀복 집 앞/ 낮

자전거 세우는 귀섭
내리는 귀복

귀복 다시는 내, 니 자전거 타나 봐라.
귀섭 ( 자전거 담벼락에 세우며 ) 오야.

E 집안에서 전 부치는 소리

귀복 ( 냄새 맡으며 ) 누가 왔나? ... 누나야다.

뛰어들어가는 귀복,
귀섭, 이제까지와는 다른 표정,
얼굴이 분홍빛으로 좀 변한 것 같기도 하고...


S#24. 귀복 집 / 낮

전 부치고 있는 은하와 말자
하얀 옷차림의 은하, 귀복과 귀섭의 등장에 일어난다.
은하, 미소짓는다.
은하에게 달려가는 귀복
어정쩡하지만 행복한 미소짓는 귀섭, 엉성하게 귀복 따라 간다.


S#25. 귀복 집 마루 / 밤

식사중인 네 사람
귀복, 잘도 먹는다.
그런 귀복 예쁜 미소로 바라보는 은하.
귀섭, 먹는 와중에도 은하 흘끔흘끔 쳐다본다.

귀복 와 이리 오랜만에 왔노? 내 안 보고 싶드나?
말자 ( 귀복 머리 툭 때리며 ) 니를 와 보고 싶노? 매매 집이나 나가는 거를...
은하 그래, 내도 들었다.
귀복 ( 숟가락 놓으며 ) 사나 하는 일에 간섭 마라.
은하 뭐?
귀섭 냅둬라, 야 요즘에 사춘긴갑다.
은하 아... 햄 말 들으니까, 니 꼬추에 털도 난다 카든데 어른 다 됐는갑네.
귀복 뭐? ( 귀섭 째려보며 귀섭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 니, 진짜 할말 안 할말... 내가 민치겠다. 좌우지간 가스나들이 입이 싸가 안 돼.
은하 뭐? ( 귀섭 보며 ) 가스나?

은하 웃으면 멋쩍은 표정의 귀섭

귀섭 밥이나 무라.


S#26. 귀복 집 / 밤

집에 가려고 마당에 나와 있는 은하
그 옆에 서 있는 귀섭

말자 와, 자고 가라.
은하 아입니더. 가 봐야지예.
귀섭 은하 딜따 주고 오께예.
귀복 내도 가자.
말자 ( 귀복 머리 쥐어박으며 ) 이 눈치도 없는 새끼...
귀복 ( 머리 잡으며 ) 꼭 이랄 때만 눈치 있는 사람이 있드라.
말자 그라믄, 니 갱희랑 둘이 있는데 어무이가 끼믄 좋겠나?
귀복 ... 그라믄 잘 딜따 주고 온나. 내 드가께.

그런 귀복에 웃는 가족들
귀복, 들어가 버린다.


S#27. 길 / 밤

자전거 타고 가고 있는 귀섭과 은하
은하, 귀섭의 허리 더 꼭 안는다.

은하 복이... 우예 그래 똑 닮았노?
귀섭 누구?
은하 누구긴... 니지.
귀섭 내? 아이다, 가 내 안 닮았다.
은하 니 기억 안 나나? 그때, 우리집에 와가 내 함 보겠다고.
귀섭 ... 언제?
은하 저 봐라. 오리발 내미는 것까지 똑같다.

귀섭과 은하, 웃는다.
갑자기 자전거 세우는 귀섭

은하 와? 자전거 고장났나?
귀섭 어, 쫌 이상한 거 같다. 내리 봐라.
은하 그래

내리며 걱정스러운 듯 귀섭과 자전거 보는 은하
자전거 보는 듯 하다가 세우는 귀섭
갑자기 돌아 은하의 두손 잡는다.

은하 니 지금 뭐하노?
귀섭 뭐하기는... 손 안 잡나?
은하 누가 보면 우야라꼬.
귀섭 보면 어떤데?
은하 치...

은하의 이마에 뽀뽀하는 귀섭
은하, 볼이 빨개진다.
귀섭, 은하의 눈 보면

은하 부끄럽구로...
귀섭 뭐가 부끄럽노, 열두 살 때부터 한 긴데...
은하 ( 귀섭 팔 때리며 ) 야, 누가 듣겄다.
귀섭 들으면 와? 내 각시한테 내가 뽀뽀한다는데...
은하 치...
귀섭 ( 은하 손 끌며 ) 가자, 너무 늦겠다.

따라 나서던 은하, 귀섭의 손잡아 멈춰 세운다. 귀섭의 뺨 만지는 은하

은하 우리 섭이... 잘 생&#44612;다.

키스하는 은하
은하, 귀섭의 눈보면 미소짓는 귀섭
귀섭, 은하의 이마, 눈, 코에 차례로 입맞춤한다.
은하의 허리를 꼭 껴안는 귀섭
은하의 입에 부드럽게 입맞춤한다.
예쁜 그림의 두 사람...


S#28. 귀복 집 / 밤

귀섭 들어오면 아궁이에 불 지핀다고 콜록거리고 있는 귀복
말자는 마루에서 바느질하고 있다.
귀복 발견하고 싱긋 웃는 귀섭

말자 왔나?
귀섭 예.
말자 ( 귀복 보며 ) 자, 집 나갔다가 미친 거 아이라? 와 저카겠노? 철들면 죽는다 카든 데.
귀섭 철 든 거 아이라예. 걱정말고 주무이소, 어무이...

말자, 그럼 뭐냐는 표정
귀섭 말없이 수건 들고 씻으러 간다.


S#29. 귀복 방 / 밤

귀섭, 씻고 들어오면 때 꼬질꼬질한 상태로 책상 위에 엎드려 잠들어 있는 귀복
한 손에는 연필 쥐어져 있다.
그 밑에 누런 갱지 아래 쓰여져 있는 글씨 ( 삐뚤삐뚤 )
‘ 오늘의 한 일. 시험지 채점 ( oo원 ), 아궁이 불 지피기( oo원 ).’
귀섭, 귀복 보고 씩 웃으며 자리에 뉘어 준다.

귀복 ( 침 닦으며 잠꼬대 ) 갱희야.

귀섭, 그 모습에 잠깐 자신의 어린 시절 떠올린다.

플래시백> 은하집 앞/ 낮
어린 귀섭 ( 손 모아 크게 ) 은하야.

귀복 이불 덮어주는 귀섭


S#30. 학교 화장실 / 낮

화장실 창문에 걸터앉아 만화책 보고 있는 귀복
천천히 화장실 안이 보이면
칠년, 복상이 화장실 청소하고 있다.
선엽은 화장실 문에서 망보고...

칠년 ( 궁시렁 ) 대장, 즈거 쪼매 변했다꼬 좋아했디만, 지 버릇 개 주나?
귀복 ( 만화책에서 눈 떼지 않으며 ) 어허, 빨리 해라. 해 다 지겄다.
선엽 온다, 온다. 피해라.

와당탕 소리내며 이리저리 피하는 아이들


S#31. 학교 화장실 / 낮

화장실 문 앞, 지휘봉 흔들며 서 있는 귀섭

귀섭 다 끝났나?

어정쩡한 포즈로 그 앞에 죄인처럼 서있는 귀복

귀복 어...
귀섭 그래?

여전히 지휘봉 흔들며 화장실 여기저기 훑어보는 귀섭,
문도 열어보고, 깨끗한 거 점검하고...
그러다가 한 화장실 문 앞에서 멈추는 귀섭,
문 아래쪽 틈새 천천히 본다.
아이들 발 여섯 개.

귀섭 근데, 여는 뭐고? 쓰레긴가?
귀복 ... 어? 그기...

귀섭, 갑자기 문 열면 넘어질 듯 나오는 아이들

귀섭 집에 안 갔나? 오늘 숙제도 많을 낀데......

귀복과 아이들, 어색하게 이 드러내며 웃는다.


S#32. 복도 / 낮

아이들 모두 양동이 하나씩 들고 무릎꿇고 앉아 있다.
그 앞에 지휘봉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귀섭
복도 창문에 기대 바깥 풍경 보며 말 꺼낸다.

귀섭 이기 복이를 도와주는 기라고 생각하나?
아이들 ...
귀섭 니들이 좋아하나? 경희? ...
아이들 ... (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 아니요...
귀섭 그라믄 와 복이 일을 니들이 하노? 칠녀이 말해 봐라.
칠년 그기... ( 선엽이 눈치보며 ) 잘은 모르겠는데, 사나는... 의리가 있어야 된다꼬...
귀섭 그래... 맞다. 꼬추 달고 태어나면 그때부터 사나고, 사나는 의리가 있어야 되는 기 맞다. 그란데, 복이 야는 인쟈 그냥 사나가 아이다. 쌤 말 뭔 말인지 아나?
아이들 ... 아니요...
귀섭 ... 야는 인쟈 사랑을 하는 사나가 됐다 이 말이라.

아이들, 전혀 모르겠다는 순진한 표정으로 귀섭 바라본다.

귀섭 뭔 말인지 모르겠나?
아이들 예.
귀섭 사나가 한 여자를 좋아하고, 그라고 사랑하면 책임을 지야 된다. 한 여자랑 사나 지 의 사랑을 책임지야 된다 말이다. 쌤은 지금, 복이가 사랑을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그 테스트를 하고 있는기라. 니들 넷이 사랑 같이 할끼가?
아이들 아니요.
귀섭 아이제? ... 그라믄 다씨는 이라믄 안 된다, 알았나?
아이들 예.
귀섭 가 봐라.

인사하고 나가는 아이들, 혼자 남은 귀복

귀섭 ( 나가며 ) 가자

은근히 감동 받은 듯한 귀복

귀복 알았다. ( 따라 나간다. )
귀섭 어제 일한 거 까지 깐다.

저럴 줄 알았지 하는 표정의 귀복...


S#33. 야학 교실 / 밤

야학 선생인 듯 보이는 몇 사람들 모여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 중이다.
한 명은 문 앞에 서서 망보고 있다.

귀섭 아직은 때가 아이라꼬 판단됩니더.
위원장 때가 아이라꼬?
귀섭 예. 이번 계획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합니더. 전체가 아이라 이래 지엽적으로 일나면 괜히 긁어 부스럼만 될 낍니더.
위원장 나도 그 점이 조심스럽긴 하다.

이때 뛰어들어오는 기철

기철 위원장 동무, 걱정하실 필요 없을 거 같십니더.
위원장 ... 뭔 말이고?
기철 경북, 경남 지방뿌이 아이고, 전남, 전북까지 몽땅 한날 한시에 까뒤집는 거라 카대 예. 상부에서 그래 지시 내렸십니더.
위원장 확실한 기가?
기철 예

근심에 찬 눈초리의 귀섭


S#34. 산 / 낮

나무하고 있는 귀복,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그때 들리는 휘파람 소리,
귀복 고개 들어 보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나무하는 귀복,
휘파람 소리 또 들린다.
귀복 다시 고개 들면,
귀복 앞에 서 있는 세 명의 아이들... 칠년, 복상, 선엽

귀복 와 왔노?
선엽 의리의 사나이들 아이가?
귀복 됐다. 인쟈 나 혼자 한다.
선엽 니 도와줄라꼬 온 거 아이다. 우리도 집에 나무해 갈라꼬 온 기다.
칠년 우리집은 땔감이 쌓였는데...

칠년 째려보는 선엽, 칠년 움찔한다.

칠년 소나무가 땔감으로는 제일 좋다하던데, 어딨는공?
선엽 섀끼...
귀복 밥은 묵고 왔나? 이기 제법 힘든데...
칠년 아니, 배고파 뒤지겠다.
복상 나도...
귀복 그라믄 쫌 있어봐라. 내가 우리 집에서 고구마 쫌 가오께.
선엽 그랄 필요 없다.
귀복 아이다, 의리의 칠성파 아이가?

씩 웃으며 산 내려가는 귀복


S#35. 귀복 집 마루 / 낮

함께 나물 다듬고 있는 말자와 귀섭

말자 귀복이 야는 일요일인데 어디 갔노?
귀섭 제가 뭘 쫌 시키가...
말자 가가 요즘에 철이 쫌 드는 거 같다. 맞제?
귀섭 ( 웃으며 ) 예.


S#36. 부엌 / 낮

몰래 숨어들어 온 귀복
조심스럽게 솥뚜껑 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


S#37. 귀복 집 마루 / 낮

부엌의 부스럭거리는 소리 들은 말자, 갑자기 귀섭에게 눈 찡긋거린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듯한 귀섭
말자, 부엌까지 다 들릴 정도의 큰 소리로 말한다.

말자 ( 진지하게 ) 아이고야, 섭아. 인쟈 복이한테도 다 말해 주야겠다.
귀섭 예?
말자 ( 다시 눈 찡긋거리며 ) 우리 복이도 다 컸는데, 즈그 진짜 어무이 만나러 가야지.
귀섭 ( 픽 웃으며 ) 아, 예.


S#38. 부엌 / 낮

저고리에 고구마 한 가득 들고 있는 귀복, 그 자리에 멈춰 움직이지 못한다.

말자off 어린 기, 다리에서 주서 왔단 소리 듣고 괘안&#53012;나?
귀섭off 인제 다 컸는데예, 지 알아서 해야지예.

표정 점점 변하는 귀복,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S#39. 귀복 집 마루 / 낮

말자, 배꼽이 빠지겠다는 듯 키득키득 웃는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손으로 막는 말자
말자, 결국 참지 못하고 손뼉치며 크게 웃는다.

말자 근데, 야 와이리 조용하노? 이랄 놈이 아인데, 이쯤 되믄 즈그 어무이한테 델다 달라 카미 지랄 지랄 쌀낀데... 복아, 복아...

귀섭, 웃으며 부엌으로 간다.

귀섭 복아, 복아... 설마, 니 삐&#51668;나?


S#40. 부엌 / 낮

부엌으로 들어오는 귀섭
떨어져 있는 고구마 하나,
귀섭, 떨어진 고구마 들고 귀복이 나간 쪽 멀뚱하니 서서 바라본다.


S#41. 산 / 낮

맛있게 고구마 먹고 있는 아이들,
칠년 일어나 썬그라스 쓰고 춤춘다.

선엽 니 그 꺼뭇꺼뭇한 거는 뭐꼬?
칠년 하이고, 무식무식. 니 임마, 이것도 모리나?
선엽 뭔데?
칠년 이기 있잖아. 내도 이름은 잘 모르는데, 자 봐라이. ( 머리카락 한 번 쓸고 다시 써 보며 ) 이래 쓰면은 낮에 눈부신 거 다 가리준다 아이가?
선엽 임마야, 나무 때문에 빛도 안 들어오는데 뭔 놈의 그 희한한 걸 쓰고 앉았노? 장님 맹키로. 당장 안 벗나?
칠년 놔라. 간신히 빌리 왔다 말이다.
선엽 누가 그 도깨비 같은 거를 갖고 댕기노?
칠년 가 있잖아. 성그이. 가 아부지가 미군부대 다닌다 카대. 와, 가들 집에는 없는 기 없 다.

귀복은 멍하니 산만 바라보고 있다.
고구마 하나 들어 귀복에게 내미는 복상

복상 대장도 무라.

귀복, 그런 복상에 씨익 웃어준다.

칠년 이 담에 나도 미군부대 들어갈란다.
선엽 아이고야. 니 열둘이나 쳐 묵고 생각하는 거이 거 밖에 안 되나? 커가 양키들 압잽 이나 할라꼬? 새끼, 니 칠성파 빠지라, 고마.
칠년 지랄... 와? 잘 묵고 잘 살라카믄 미군한테 붙어야 된다꼬 울아부지는 카든데.
귀복 야들아...

아이들, 심각한 표정의 귀복에 일순간 조용해진다.

귀복 느그들, 내 없어도 잘 살 수 있제?
선엽 복아, 와? 뭔 일 있나?
칠년 대장 니, 뭔 걱정이 그래 많노? 니 서울 가도 갱희 가가 니 싫다꼬 다시 내리가라 칸다. 그라믄 다시 올낀데 뭐 그래 걱정을 해쌌노? 정의의 칠성파 아이가? 니 내리 올때까지 기다리께.

입술 깨물며 칠년 째려보는 선엽
씨익 웃는 귀복

귀복 그양 함 해본 말이다. 내, 먼저 가보께...

아이들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산에서 내려오는 귀복


S#42. 귀복 집 / 밤

바느질하고 있는 말자
귀섭, 책 읽다말고 걱정스런 얼굴로 말자 본다.

귀섭 ... 어무이, 복이 쫌 찾으러 가야 되겠십니더.
말자 이 섀끼, 또 안 들어오나? 서울은 난중에 간다 안 &#53012;나?
귀섭 ... 그기 아이고... 아까 낮에...
말자 어?
귀섭 지, 다리 밑에서 주서 왔다꼬...
말자 이 놈아, 참말로... 돌이가? 열둘이나 쳐묵고 그걸 진짜라꼬... 속 터지뿌겠다. 어쩐지, 어쩐지... 참을 자슥이 아인데 싶드라카이.
귀섭 갔다 오께예.
말자 어디 갔겠노? 이 밤중에?
귀섭 다리 밑에 안 갔겠십니꺼?
말자 가가 그마이 돌이겠나, 설마? 다리 밑에서 주서왔다꼬 거를 가믄 그기 사람 머리 가? 돼지 새끼 머리지...


S#43. 다리 밑 / 밤

귀복, 돌 던져 물수제비 만들고 있다.
갑자기 눈물 훔치는 귀복, 기어이 꺽꺽 소리내며 울기 시작한다.

귀복 어무이, 어디 있십니꺼? 내를 이래... 혼자 놔두고... 그래 가고 싶었십니꺼? ... 우리 가짜 어무이, 아이다 그 몬생긴 할매... 내를 얼마나 구박하고, 팼는지 어무이는 모르 지예?

귀복, 감정이 복받치는 듯,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는다.

귀복 내, 하루도 멍이 안 든 날이 없어예.

갑자기 들리는 귀섭 목소리

귀섭 니 만날 싸워가 든 멍 아이가?

흠칫 놀라는 귀복
귀섭, 웃으며 귀복 바라보고 서 있다.
흐느끼며 고개 돌리는 귀복

귀복 웬일이고? ... 아이다... 무신 일로 오셨십니꺼? 쌤...

귀섭, 그런 귀복이 기가 막힌 듯 웃는다.

귀섭 니 집에 안 가나?

귀복, 서러움에 펑펑 운다.

귀복 내가 집이 어딨노? 어무이... 으으으... 어무이, 내도 딜꼬 가이소.
귀섭 ( 피식 웃으며 ) 느그 어무이 집에 있다 아이가?

귀복, 여전히 흐느끼며 귀섭 째려본다.

귀복 ... 나도 다 안다.
귀섭 뭐를?
귀복 다 들었다 말이다. 딜따 도, 우리 어무이한테... 어무이한테 딜따 도... 다 이를끼다. 니랑 느그 어무이, 그 할매... 내만 구박하고... 다 일러뿔끼다.
귀섭 복아, 그거 어무이가 장난 친 기다.

귀복, 흐느끼며 씩씩댄다.

귀복 니, 내 돌대가린 중 아나? 내도 생각 다 해 봤다. 니랑 내랑 열 살 차이 아이가?
귀섭 그기 와?

갑자기 더 서러워진 듯 크게 우는 귀복

귀복 와 그 생각을 여태 모했겠노? 우예 형제가 열 살 차이가 나노? 주서왔으니께네 그 래 차이가 나지.
귀섭 복아... 니 바보가? 중간에 귀상이랑, 귀연이랑 있었다 안 &#53012;나? 마을에 병 돌아가 죽었다꼬... 그라고 나서 니 낳았다꼬 어무이가 &#53012;잖아.
귀복 ... &#53012;었나? ... 그라믄, 뻥친기가?
귀섭 그래, 뻥 친기다. 어무이 만날 니처럼 뻥친다 아이가? 모리나?

갑자기 입술 꽉 깨무는 귀복

귀복 김말자, 니 가만 안 둔다. 오늘!


S#44. 귀복 집 / 밤

밥 먹는 가족들,
귀복, 배가 고팠는지 유난히 밥을 잘 먹는다.
그러다 목에 걸리고, 물 벌컥벌컥 마시고...

말자 아조, 지랄을 싼다.
귀복 어무이, 지한테 이라시면 좋을끼 없을낀데...
말자 이 섀끼가, 어데 어무이를 협박해 쌌노?
귀복 다 무따. 내 드가 잔다...
말자 안 씻나?
귀복 머시마가 마이 씻으믄 거도 안 좋다.

엉덩이 흔들면서 자기 방 쪽으로 가는 귀복

말자 궁디 쫌 고마 흔들어라.

방귀 뿡 뀌는 귀복, 그리고 나서 들어가 버린다.

말자 저저, 철 좀 났다 카이께네, 똑같다.

그런 귀복, 웃으며 바라보는 귀섭


S#45. 장/ 낮

말자, 채소, 고구마, 고구마 줄기 같은 것들 팔고 있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청년단원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눈치보다가 말자에게 가까이 오는 건너편의 김씨

김씨 ( 소곤거리며 ) 니, 들었나?
말자 뭐를?

김씨 과도한 액션 취하며 말자 소리 낮추게 한다.
계속해 소곤거리는 김씨.
말자 덩달아 소곤거린다.

김씨 좀 있으면 빨갱이들이 여까지 들어온단다.
말자 무슨?
김씨 참말이다. 구미까지 다 내리와가, 지주들 다 쏴 죽이고 난리&#52844;다 카든데.
말자 아이고야, 무서버라. 그래도 저, 봐라. 빨갱이들 쌔리 잡는다꼬 청년단원들이 눈 시퍼 렇게 떠가 저리 다니는데...
김씨 들어보이깐은 저, 청년단원들도 막 다 싸잡아 죽있다카드라.
말자 옴마야, 고마해라. 오늘 저역에 잠 못자겠다.
김씨 그기 중요한 기 아이라카니깐은...

청년단원 한 명, 그들 앞 지나가면 갑자기 큰 소리로 떠드는 김씨

김씨 고구마값이 와이리 비싸노? 아이고야, 고구마도 못 쳐묵겠네.

말자에게 눈 찡긋거리며 국밥집으로 건너가는 김씨.


S#46. 교실 / 낮

반장, 책 읽고 있다.
심각한 표정으로 창문 밖 바라보고 있는 귀섭

위원장off 섭아, 혁명은 피다.희생 없이 혁명은 이룰 수 없다. 니 착한 심성은 내 안다. 그 래도... 대의를 생각해야 안 되겠나.

책 세워놓고 돈 세고 있는 귀복
귀섭의 눈치보며 귀복 옆에서 함께 돈 세고 있는 칠년, 복상, 선엽

선엽 ( 속삭이듯 ) 다 되겠나?
귀복 ( 속삭이며 ) 차비는 될 꺼 같다.
칠년 ( 큰 목소리로 ) 그라믄 인쟈 우리 고생 끝난기가?

나머지 세 사람 ‘ 쉬’ 하며 칠년을 쥐어박는다.
선엽, 재빨리 귀섭의 눈치 살핀다.
귀섭, 생각에 잠겨 아이들 보지 못한다.

귀복 그래도, 쪼매 모질라지 싶다.
칠년 와?
선엽 니는... 눈치 쫌 있어라. 안 그래도 갱희, 대장 안 좋아하는데 아무 것도 안 사가고 맨몸으로 가 봐라. 좋아하겄나?
칠년 아... 맞네.

콧구멍 벌렁거리는 귀복


S#47. 강가 / 밤

물 속에 들어가 고기 잡고 있는 귀복, 복상, 선엽
안 들어가고 서 있는 칠년

칠년 ... 빨갱이들 돌아다닌단다. 밤에 이래 나오면 죽을 수도 있다카든데...
귀복 빨갱이 즈그도 양심이 있지 얼라들까이 죽이겄나?
복상 대장, 대장. 잡&#55196;다. 잡&#55196;다...
칠년 진짜로?
선엽 니는 안 들어오고 뭐하노?
칠년 드...들...어갈끼다... 근데, 물고기 잡아가 팔믄 그기 돈이 되겠나?
귀복 저 가시나 내비둬라.
칠년 뭐? 가시나?
선엽 오, 이번에는 큰 기다.

이때 들리는 여자의 비명소리
칠년, 놀라 물 속으로 뛰어들어와 선엽 뒤에 숨는다.
그런 칠년을 놀래켜주는 선엽
칠년, ‘ 악 ’ 소리지르며 넘어져 다 젖는다.

칠년 엽이, 니!
귀복 쉬, 조용히 해 봐라. 어디서 나는 소리고?
칠년 대장, 무섭다... 집에 가자, 고마. 엄마야, 빨개이 아이라?
귀복 가보자.
복상 어데?
귀복 다리 쪽에서 들리는 소리 &#44561;다.

뛰어가는 귀복
서로를 쳐다보는 선엽과 복상
선엽, 복상, 물고기 잡아놓은 양동이 들고 귀복 따라 간다.
울상을 하고 서 있는 칠년, 발을 동동 구른다.
아이들과 떨어지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못내 뒤따라가는 칠년


S#48 . 다리밑 / 밤

청년단원 1,2,3,4 , 쓰러진 한 여자를 둘러싸고 있다.
아랫도리가 다 벗겨진 여자

여자 한... 한 번만 봐주이소. 한... 번만...
단원1 말 잘들으면 봐 줄끼다.
여자 내... 내는 암 것도 몰라예.
단원3 ( 웃으며 ) 아무 것도 모르는 거 다 안다.

여자 밀치고 그 위에 앉는 청년단원1

여자 어무이... 이라지 마이소.

바지 벗는 청년단원1, 나머지 청년단원들 재밌다는 듯 웃는다.

단원1 그라믄, 느그 오빠야한테 절대 그라지 마이소 하지 그랬노?
여자 예?

여자의 목 비트는 청년단원1
천천히 여자의 저고리까지 벗긴다.

단원1 김상욱이... 느그 큰 오빠말이다. 경산에서 느그 오빠야가 죽인 사람이 얼마나 되는 중 아나? 느그 가족 전부다 총살감이다.
여자 잘못했십니더. 함만, 함만 살려주이소.
단원1 그래, 그래야지. 우리가 이래 니 이쁘게 봐 주면 고맙십니더, 뜻대로 하이소 하란 말 이다. 알았나? 그라믄 살리주께.

여자를 덮치는 청년단원1
E 여자의 비명소리

귀복 순남이 누나야.

청년단원들 돌아보면 서 있는 귀복과 아이들
그 틈에 달아나 귀복 뒤에 숨는 여자

여자 보... 복아.

귀복, 팔로 여자 가려준다.

귀복 ( 청년단원들에게 ) 무신 일입니꺼?

청년단원들, 가소롭다는 듯 웃는다.

단원2 니, 뭐꼬?

귀복이 신호하면 재빠르게 여자의 옷을 챙겨와 주는 선엽

귀복 윤귀복이라예.
단원3 우리가 니 이름 물어봤나, 지금? 니 바보가?
귀복 누나야, 빨리 입어라. 춥겄다.

여자, 허겁지겁 옷 입는다.

단원2 이 섀끼가 어른들 하는 일에, 어디...
귀복 ( 째려보며 ) 이기 어른이 할 짓입니꺼? ( 여자 보며 ) 누나야, 빨리 집에 드가라. 늦었다.

슬금슬금 눈치보며 도망치는 여자
좇아가려는 청년2,3

단원1 놔둬라, 튀어봤자 비룩이다. 우선 이 콩만한 섀끼 교육 쫌 시키고 가자.

천천히 다가와 갑자기 귀복의 따귀 때리는 청년단원1
벌겋게 부어오르는 귀복의 뺨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귀복

단원1 니... 저 가스나가 누군 줄 아나? ... 빨개이 동생이다.
귀복 근데예?
단원1 근데?
귀복 ...순남이 누나야가 빨개이 짓 했십니꺼? 순남이 누나야가 빨갱입니꺼?
단원3 니, 어디서 헛소리하고 앉았노? 식구가 빨개이믄 그 집 사람들은 다 죽어야 된다. 응? 빨개이, 빨개이 마누라, 빨개이 동생, 빨개이 할매, 아부지, 어무이, 다 싸잡아가 총으로 쏴죽이야 된다 말이다. 모리나?
귀복 모르겠는데예.

귀복 말리는 선엽

선엽 복아, 고마해라.
단원1 이 섀끼, 오늘 맛 좀 비 주야겠다. 야들아...

아이들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청년단원들
이때 멀리서 칠년 부르는 소리
아이들 돌아보면 다리밑으로 뛰어 들어오는 칠년부

칠년부 연아, 아부지가 밤중에 나오지 말라 &#53012;제? 와 말을 안 듣노?

칠년부 보고 깜짝 놀라는 청년단원들

단원1 서... 서장님 나오셨십니꺼?
칠년부 그래, 고생이 많제? 근데 밤중에 아들하고 뭐하고 서 있노?
단원1 ... 그기...
복상 ( 칠년에게 속삭이듯 ) 느그 아부지 경찰서장님이가?
칠년 응, 몰랐나? 빙~시... 아부지, 저 아저씨들이...
귀복 밤중에 조심하라꼬, 집에 얼른 드가라꼬 카셨십니더.
칠년부 오, 그랬나? 그래... 고맙다. 드가봐라.

뻘쭘한 표정의 청년단원들, 하나 둘씩 자리 떠난다.
그들 사라지면 갑자기 칠년 마구 때리는 칠년부

칠년부 이놈아가 정신이 있나, 없나? 세상이 이래 무서븐데 어데 밤중에 싸돌아 댕기노?
칠년 아, 패지 쫌 마라. 내도 인쟈 다 컸다 아이가?

칠년부에게 끌려가는 칠년

귀복 ( 아이들 보며 ) 우리도 드가자.

양동이에서 팔딱거리는 물고기들


S#49. 귀복방 / 밤

근심어린 눈빛으로 담배 피우고 있는 귀섭
귀복은 연필로 뭔가를 꾹꾹 눌러 쓰고 있다.
‘ 갱희야, 인쟈 내일 모레면 갈 쑤 있따. 기다리라.’
뭐가 그리 좋은지 쓰다 웃다, 쓰다 웃다를 계속 반복하는 귀복
그런 귀복을 쓸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귀섭
귀복, 다 썼는지 종이 잘 접어 머리맡에 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행복한 미소지으며 눈감는 귀복
귀섭, 미간에 주름 잡으며 담배를 끈다.
불 끄는 귀섭


S#50. 칠년 집 / 낮

아이들 넷, 시끌벅적하게 집 안으로 들어선다.

칠년 아, 글쎄 귀빠진 날이라꼬 닭잡는다 카이께네.
복상 와, 칠녀이 덕에 닭묵겠다.

웃는 아이들, 그러나 칠년의 집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부리나케 짐 싸고 있는 칠년부.

칠년 아부지, 뭐하노? 지금?
칠년부 왔나?
아이들 안녕하십니꺼?
칠년부 그래, 다들 왔나?
귀복 어디 가십니꺼?
칠년부 오야, 갈 데가 있어가...

칠년부, 보따리 매고 칠년의 어깨 잡는다.

칠년부 연아, 아부지 어디 쫌 간다.
칠년 어디?
칠년부 묻지 말고, 말수이랑 어무이랑 당분간 니가 잘 돌봐야 된다, 알았나?
칠년 아, 아부지는 니가 할 일을 와 나한테 시키노?
칠년부 ( 웃으며 ) 알았다. 당분간만이다. 아부지 곧 올끼다. 기다리라, 알았나?
칠년 봐준다. 올 때 구두 사와야 된다, 알았제?
칠년부 오야...

주위 살피며 서둘러 나가는 칠년부
그런 칠년부 바라보는 아이들


S#51. 학교 앞 / 밤

은하, 꾸러미 들고 서 있다. 초조한 듯 발을 동동 구른다.
귀섭, 교문에서 나온다.

은하 ( 꾸러미 내밀며 ) 자, 아부지가 전해달라고 한 기다.
귀섭 고맙다.
은하 고맙기는... 남이가?
귀섭 ( 은하의 손 꼭 잡으며 ) 앞으로 일이 많을 끼라. 견딜 수 있겠나?

은하,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 끄덕인다.

은하 몸조심해라.

귀섭, 고개 끄덕이며 은하 바라본다.


S#52. 강가 / 낮

아이들 둘러앉아 있다.

선엽 복이 니 내일 가나?
귀복 ( 고개 끄덕이며 ) 응
칠년 근데, 갱희가 니 기다리겠나? 서울 머시마들은 얼굴도 하얗고 잘 생&#44612;다 카든데.

귀복, 콧구멍 벌렁거리며 칠년 째려본다.

복상 방학식 끝나고 곧바로 가나?
귀복 응
선엽 짐은 다 챙&#44612;나?
귀복 오늘 가서 챙기리야지.
선엽 대장 니 보고 싶어서 우야노?
귀복 머시마가 닭살 돋구로 보고 싶은 기 뭐고?
칠년 맞다. 선엽이 쟈는 항상 저 모양이다. 가스나도 아이고...
선엽 이 섀끼가 죽을라 카나.
귀복 됐다. 고마 싸와라. 기분이다. 오늘 내가 아이스케끼 하나씩 사주꾸마. 가자.
칠년 와, 대장 니 최고다, 최고.
선엽 꼭 저랄 때만 최고란다.


S#53. 거리/ 낮

아이스께끼 하나씩 들고 걷는 아이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쉴새없이 조잘댄다.
선엽에게 똥집하다 맞는 칠년
아이들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마을, 돌아다니는 사람 하나없이 조용하다.


S#54. 귀복 방 / 밤

짐 싸고 있는 귀복, 짐싸다 말고 생각에 잠긴다.
초췌한 모습의 귀섭, 방으로 들어온다.

귀섭 아직 안 잤나?
귀복 어, 내일 갈라믄 짐 싸 놔야지.
귀섭 복아, 니 서울 가는 거 미뤄야 되지 싶다.
귀복 어?
귀섭 보이까, 기차가 끊&#44612;드라.
귀복 와?
귀섭 ......잘 모리겠다.
귀복 오, 그라믄 서울까지 걸어가야 되나?
귀섭 ( 피식 웃으며 ) 뭐?
귀복 집에 닭 좀 잡아도.
귀섭 와?
귀복 서울까지 걸을라카믄 몸보신 쫌 해야지.
귀섭 ( 웃으며 ) 오야, 닭 잡아 주께.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보자.

귀복의 머리 쓰다듬는 귀섭


S#55. 귀복 집 마당 / 낮

말자, 마당 쓸고 있다.
헉헉거리며 뛰어들어오는 김씨

말자 다 늙어가 뛰기는 와 뛰노?
김씨 섭아, 이랄 때가 아이다.
말자 어?
김씨 다 모이라 카드라.
말자 어데?
김씨 학교 운동장으로 다 모이라꼬.
말자 와?
김씨 니 몬 들었나? 마을 지주들 어제 다 잡아갔단다.
말자 누가?
김씨 아이고, 땁땁시러버서. 됐다. 니랑 말할 시간 없으이께네 복이 딜꼬 퍼뜩 나온나.
말자 앞 뒤 짤라묵지 말고 천처이 다시 말해 봐라.
김씨 빨갱이들이 다 점령을 해 갖고 오늘 싹 다 쏴 죽인다꼬...... 얼라, 할배, 할매 다 딜꼬 나오란다.
말자 엄마야. 우리 복이 지금 &#50882;는데......


S#56. 반야월 역 / 낮

귀복, 보따리 짊어 매고 귀마개하고 역 앞으로 걸어간다.
경비 서고 있는 공산당들 무서운 표정들이다.
약간 기가 죽은 듯한 귀복 눈치 보며 역으로 들어서려 한다.
그런 귀복, 총으로 못 가게 막는 공산단원 두 명

공산1 뭐고?
귀복 ... 서울 갈라꼬예.
공산2 아부지한테 몬 들었나? 당분간 기차 끊&#44612;다.
귀복 진짜라예? ( 혼잣말하듯 ) 가시나 거짓말 하는 줄 알았더만 진짜였고 이 지랄.
공산1 뭐?
귀복 아입니더.
공산2 니, 지금 빨리 학교 운동장으로 가라.
귀복 와예?
공산2 와는? 몬 들었나, 아부지한테?
귀복 아부지 없는데......
공산1 어른은 있을 거 아이가? 말대답하는 거 봐라, 이거.
귀복 ......
공산2 마을 사람 다 모있다. 빨리 가봐라.

이해 안 되는 듯한 표정의 귀복
내키지는 않지만 발걸음 돌린다.


S#57. 학교 앞 / 낮

마을 사람들 모두 두려운 표정으로 학교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 중에 끼어 있는 선엽과 복상
귀복, 아이들을 발견하고 웃으며 뛰어 간다.

귀복 엽아, 상아.
선엽 어, 왔나.
귀복 뭔 일이고?
복상 ( 울상 지으며 ) 몬 들었나? 칠년이 아부지 붙잡혀 갔다.
귀복 뭐라고?
선엽 도망치다 잡&#55196;다 카드라.
귀복 와?
선엽 나도 잘은 모리겠다.

사람들에 끼어 휩쓸리듯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들


S#58. 학교 운동장 / 낮

사람들 모두 운동장에 열 맞춰 앉아 있다.
그 속에 끼어 있는 말자.
귀복, 말자 발견하고 뛰어 간다.

귀복 엄마.
말자 ( 귀복 발견하고 얼굴 만지며 ) 어, 왔나? 아이고야, 니한테 무신 일 났는 중 알고 씨껍했다 아이가?
귀복 무신 일이고? 이기?
말자 빨갱이들이 이&#44612;단다.
귀복 어?

단 위에 잘 훈련된 걸음걸이로 들어오는 공산당 행렬, 팔에는 모두 붉은 완장 차림이다.
가장 자리에 귀섭이 서 있다.
그런 귀섭 발견한 귀복, 못 믿겠다는 듯 두 눈을 비빈다.
위원장, 앞에 선다.

위원장 여러 동무 여러분, 그동안 수고 많았십니더.
귀복 어? 즈거, 은하누나야 아부지 맞제?
말자 ( 귀복 찌르며 속삭이듯 ) 입 다물어라.

갑자기 박수치는 공산단원들,
사람들 어색하게 따라 박수친다.

위원장 우리의 투쟁으로 오늘 여기 반야월은 진정한 해방을 맞게 되었십니더.

다시 박수치는 공산단원들
사람들 또 따라 박수친다.

위원장 이제는 다 같이 잘 묵고, 잘 사는 일만 남았십니더. 그 전에, 여기 반야월의 피를 빨아묵던 거머리들을 처단하는 시간을 갖겠십니더. 동무들...

붉은 완장을 한 사람들, 한 쪽 구석에 꿇어앉아 있던 검은 안대를 한 사람들 이끌어 정 중앙에 세운다.
그 중에 칠년부와 급사도 끼어 있다.
공산당 한 사람씩 안대를 한 사람들 앞에 서서 총을 겨눈다.
칠년부 앞에 선 귀섭
붉은 완장의 사람 중 한 명 구령 붙인다.

완장 사격 준비, 발사

E 총소리
칠년부만이 서 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쓰러졌다.
귀섭이 쏘지 않은 것이다.
당황하는 위원장

위원장 ... 윤귀섭 동무. 윤귀섭 동무... 섭아... ( 큰 소리로 ) 윤귀섭. 뭐하고 섰노?

귀섭, 총내리다 두 눈 부릅뜨고 칠년부에게 총 겨눈다.
E총소리
쓰러지는 칠년부

귀복 엄마... 엄마...
말자 ( 귀복 눈 가리며 ) 그래, 엄마 여 있다.
귀복 엄마, 내 심장이 터질라 한다.
말자 그래.
귀복 심장이 터지가 죽겠다.
말자 복아, 복아. 정신 차리라, 복아.
귀복 엄마... 엄마...

귀복, 토하는 듯 하다가 뛰쳐나간다.


S#59. 칠년의 집 앞 / 밤

귀복,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다.
칠년, 말순을 업고 걸어오고 있다.
말순 울다 지친 듯 잠들어 있다.

귀복 칠...

귀복, 차마 부르지 못하고 뒷걸음질 쳐 도망치듯 뛴다.
주먹 꽉 쥐는 귀복
결국 울음 터뜨린다.

귀복 연아... 우야노, 우야노, 연아... 미안타, 미안타...

정신없이 뛰는 귀복


S#60. 귀복 집 / 밤

터덜거리며 집에 들어서는 귀복, 두 눈만은 이글거린다.
말자, 마루에 앉아 있다가 귀복 발견하고 뛰듯이 나온다.

말자 이래 정신 없을 때, 싸돌아 댕기면 우야노. 죽고 싶나? 죽고 싶어 환장했나?

귀복, 말없이 입술 깨문다.

말자 니 고마 집에 딱 붙어 있어라 알겄나? ... 알겄나? 모리겄나?

무서운 눈으로 말자 째려보는 귀복

귀복 죽고 싶다. 죽고 싶어 뒤지겠다.

귀복에 당황하는 말자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는 귀복


S#61. 귀복 방 / 밤

불꺼진 방
귀복,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있다.
E 개 짖는 소리

말자off 들어왔나. 피곤할 낀데 자라. 내일 듣자.
귀섭off 예.

조심스럽게 문 열고 방에 들어오는 귀섭
귀섭이 불 켜면 쪼그리고 앉아 있는 귀복, 초점 없는 눈으로 방바닥 쳐다보고 있다.

귀섭 ......
귀복 좋나?
귀섭 ......
귀복 윤귀섭 쌤, 이기 쌤이 항상 말씀하셨던 사람을 위한 길이란 겁니꺼? 예?
귀섭 .......

귀복, 미친 듯이 귀섭에게 달려들어 귀섭을 때린다.

귀복 사람 쏴 죽이는 기 사람 위한 길이가?
귀섭 복아
귀복 더럽다. 내 이름 부르지 마라. 니 이름은 인제 개새끼다. 우리 햄 윤귀섭이 아이고, 월월 개새끼다.

나가버리는 귀복
그런 귀복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귀섭


S#62. 칠년의 집 앞 / 낮

귀복, 가까이 가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칠년 집에서 나오는 선엽, 복상
귀복, 아무 말 못하고 아이들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복상, 귀복 발견한다.

복상 어? 대장

귀복 보는 선엽, 이내 고개 돌린다.

귀복 칠녀이는 괘안나?
선엽 ...... 괘않겠나?
귀복 ......
복상 칠녀이 어무이도 끌리갔단다.
선엽 ( 복상 찌르며 ) 니 지금 누구한테 무신 말을 하고 앉았노? 가자.
귀복 선엽아...

입술 지그시 깨물며 귀복 보는 선엽

선엽 와.
귀복 엽아...
선엽 지금은 몬 보겠다. 몬 보겠다, 니 얼굴.

돌아서서 가버리는 선엽, 주춤하다 선엽 따라가는 복상
귀복, 그런 아이들 뒤에 서 있다.
이때, 사립문 열고 나오는 칠년
귀복, 돌아서 가려다가 칠년 보고 흠칫 놀란다.

칠년 대장
귀복 ...... 칠년아.
칠년 왔으면 들어오지 와 서 있노? 밖에... 춥구로.
귀복 ...... 그기.
칠년 들온나.


S#63. 칠년 집 / 낮

칠년, 닭 모이 주고 말순 닭들 좇으며 뛰어 다니고 있다.
마루에 앉아 칠년 보고 있는 귀복

칠년 밥은 뭇나?
귀복 ...... 아니, 생각이 없어가.
칠년 그라믄 묵고 가라.
귀복 아이다. 가 봐야지.

칠년, 닭 모이 다 준 듯, 귀복 옆에 앉는다.

칠년 어무이가 없으니까 할 일이 많다.
귀복 어무이, 괘않나?
칠년 곧 나온다 카드라. 디게 맞고 보내준다 카대.
귀복 ......
칠년 와? 사람이 쫌 맞을 수도 있지. ( 울먹 ) 울 어무이 살이 찌가 맞아도 별 표도 안 나지 싶다.
귀복 연아.
칠년 안다, 복아. 그래도, 카지 마라. 니는 영원한 내 대장 아이가?
귀복 연아.
칠년 니 내였다 캐도 이래 했지 싶다. 의리의 칠성파 아이가?
귀복 ...... 연아.......
칠년 빙시, 우나? 고마 칠성파 대장 내한테 넘기 주야 겠다.

칠년, 귀복에게 보이지 않게 돌아서 닭들에게 다가가 눈물 훔친다.

칠년 이 섀끼들 모이 주니까네 와 흙만 퍼 먹고 지랄들이고? ( 돌아보지 않으며 ) 복아, 가 봐라. 내 닭들 군기 쫌 잡아야 겠다.


S#64. 야학교실 / 낮

담배 피우고 있는 위원장
귀섭, 많이 흥분된 상태다.

귀섭 상부에서 지시한 게 맞십니꺼?
위원장 니, 무신 말이 듣고 싶노?
귀섭 이해 안 됩니더. 유상분배라니요?
위원장 당의 명령이다.
귀섭 당? 당이 꼭대기에 있십니꺼? 사람이 먼저가 아이고? 지는 동의 모합니더. 밥 못 무 가, 버즘 피고, 아들 때부터 눈 밑에 그림자 씨꺼먼 사람들 위해 한 일입니더.
위원장 니, 지금 한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 중 알고 하나?
귀섭 꼬부랑댕이 할매 할배까지 잡아가 죽일라고 시작한 일이 아이란 말입니더.

위원장, 갑자기 일어나 귀섭의 따귀 때린다.
귀섭, 맞은 뺨 만지며 위원장 똑바로 쳐다본다.

귀섭 무슨 일이 있어도 무상 분배 아이믄 지는 동의 모합니더.


S#65. 은하 집 앞 / 밤

술 취한 귀섭, 비틀거리며 은하 집 담벼락에 붙어 서 있다.
집에서 나오는 은하

은하 ... 섭아.
귀섭 이기 누꼬, 우리 마누라 아이가?
은하 ( 코 막으며 ) 냄새... 술 마&#49904;나.
귀섭 어. 쪼매 마&#49904;다. 기분이 좋아가.
은하 ...
귀섭 어무이랑 복이랑 이쁜 우리 은하랑 다같이 잘 사는 세상 와가 좋아가 쫌 마&#49904;다.
은하 섭아...

비틀거리며 쓰러질 듯 은하 안는 귀섭

귀섭 니랑 알콩달콩 살만한 존 세상 와가 쪼매 마&#49904;는데, 와.

쓰러지는 귀섭, 귀섭을 부축해 앉으며 귀섭의 머리 쓰다듬어주는 은하
은하, 눈시울이 붉어진다.

은하 섭아...

S#66. 강 / 낮

귀복, 쪼그리고 앉아 강 보고 있다.
귀복의 곁에 앉는 귀섭,
들고 온 빵 봉투 내민다.

귀섭 ... 무봐라.
귀복 ...
귀섭 니 좋아하는 단팥빵이다.
귀복 ...

귀복의 손에 빵 봉투 쥐어주는 귀섭
귀복, 도로 내밀며

귀복 요새는 크림빵밖에 안 묵는다.
귀섭 있다, 크림빵도...
귀복 ...
귀섭 마이... 힘들제?
귀복 ...

빵 먹는 귀복

귀섭 ... 그래도 쫌 봐도. 복아.
귀복 ... 니 빵에 뭐 섞었어? 배 아파 뒤지겠다.
귀섭 ...
귀복 안 그래도 변비땜에 뒤지겠는데
귀섭 봐 줄끼제?
귀복 ... ( 울먹 ) 안 봐줄끼다.

귀섭의 가슴을 때리는 귀복,
귀섭 그런 귀복 안아준다.
흐느끼는 귀복


S#67. 귀복의 집 / 낮

말자, 마당에 고추 말리고 있다.
이때 들어오는 기철

기철 어무이, 안녕하십니꺼?
말자 아... 뉘신지?
기철 섭이 친구 임기철이라꼬 합니더.
말자 아... 그래? 들온나. 거 서 있지 말고.

마루에 앉는 기철, 앞치마에 손 닦으며 기철 옆에 앉는 말자

말자 그래, 하는 일은 다 잘 되고? 집에 물 기 없다.
기철 아입니더, 곧 가 봐야지예.
말자 그란데 무슨 일이고?
기철 섭이... 귀섭 동무가 아직 도착을 안 했십니더.
말자 대구 갔다온다 안 &#53012;나?
기철 ... 예. 근데 미칠 전부터 연락이 안 돼가, 어무이한테는 소식이 쪼매 왔는가 싶어가 이래 왔십니더.
말자 옴마야, 우리 섭이한테 뭔 일 난 거 아이라?
기철 ... 아일끼라예. 전투상황은 아이니께네 뭐, 곧 돌아 오겠지예.
말자 아이고야, 아가 연락도 안 닿으믄 우야노?
기철 괜히 와가 어무이 마음만 싱숭생숭하게 만들었십니더.
말자 아이다, 내도 알아야지.
기철 ...... 어무이, 섭이 연락 오면 오는데로 지한테 소식 좀 전해 주이소. 위원장 동무가 걱정 마이 하고 있십니더.
말자 오야, 내 섭이 오는대로 바로 연락 주꾸마.


S#68. 은하 집 / 낮

가지런히 모아져 있는 두개의 발, 하얀 발목 양말에 분홍 신발을 신었다.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
은하, 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다.
펌프 끝에서 계속 떨어지는 물방울들
은하, 힘없이 대들보에 기댄다.
주루룩 눈물을 흘리는 은하


S#69. 귀복 방 / 밤

엎드려 만화책 읽고 있는 귀복
이때 소리 없이 열리는 문
들어오는 귀섭, 한 쪽 팔을 다친 듯 꼭 잡고 있다.
귀복, 만화책에 빠져 그런 귀섭 발견하지 못한다.

귀섭 복아.
귀복 아이고야. 아 떨어지겠다.
귀섭 ( 피식 웃으며 ) 니가 떨어질 아가 어딨노?
귀복 ... 니는 들어오는 것도 가스나처럼 들어오나?

갑자기 팔이 더 아픈 듯 신음소리 내는 귀섭

귀복 니, 와 이러노? 피 난다.
귀섭 ... 쪼매 다쳤다.
귀복 ( 일어나며 ) 어무이, 어무이.

그런 귀복, 다급하게 앉히는 귀섭

귀섭 쉬!
귀복 ...
귀섭 복아...
귀복 어?
귀섭 히야 쫌 숨어 있어야 된다...
귀복 와?
귀섭 그랄 일이 있다... 아무도 알면 안된다.
귀복 이게 무신 귀신 씨나락 까묵는 일도 아이고. 우선 팔부터 고치야 될 거 아이가? 가 만 두믄 썩는다.
귀섭 복아, 들키믄 팔만 썩는 기 아이고, 죽는다.
귀복 ......

다치지 않은 손으로 주머니 뒤지는 귀섭, 나침반 꺼낸다.
나침반 귀복의 손에 꼭 쥐어주는 귀섭
뭐냐는 표정의 귀복

귀섭 아부지가 주신 기다.
귀복 니꺼를 와?
귀섭 니 서울 갈라믄 필요하다 아이가? 돌띠라가 길도 몬 찾고 안 그카겠나, 맞제?

입술 내미는 귀복
주먹 쥐어 귀섭을 때린다는 것이 잘못해 다친 팔 때린다.
‘흡’하며 신음소리 내는 귀섭
당황하는 귀복

귀복 괘... 괘안나?

땀 흘리며 씨익 웃어주는 귀섭


S#70. 거리 / 낮

생각에 잠겨 걷고 있는 귀복

귀섭off 니, 우엉 바위 밑 아나?
귀복off 그 산 꼭대기 말이가?
귀섭off 거 돌면 속이 빈 나무 하나가 나온다.

은하 복아, 복아.
귀복 어? 누나야.


S#71. 빵집 / 낮

빵을 먹고 있는 귀복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귀복 보고 있는 은하

은하 복아...
귀복 누나야 안 본 사이에 더 이뻐졌네.
은하 ( 소곤거리듯 ) 복아, 히야랑 연락이 안 된다.
귀복 ( 따라 소곤거리듯 ) 안다.
은하 니한테는 무슨 전갈이라도 왔나? 벌써 일주일 째다.
귀복 ...
은하 복아, 말 쫌 해 봐라.

귀복, 주위를 살피면 아무도 없다.
조심스럽게 은하에게 소곤거리는 귀복
은하의 표정, 점점 변한다.


S#72. 산 / 밤

가파른듯한 산
누군가의 시선으로 산을 오르고 있다.
고요함을 깨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자세히 들어보면 서너명의 발자국 소리다.


S#73. 나무 아래 / 밤

계속해 걷던 걸음이 멈춘다.
멈춘 시선은 한 나무로 향한다.
흔들리는 시선
나무 이곳 저곳을 염탐하듯 보는 누군가의 시선
한 발자국 다가간 누군가
그의 시선에 보이는 나무 틈새
두 명의 남자의 손이 그 틈새를 헤집는다.


S#74. 나무 구멍 / 밤

불 비추면 잠자고 있던 귀섭, 불빛에 인상 찡그린다.
두 팔로 빛 가리는 귀섭
빛이 익숙해 질 무렵 눈을 깜빡이며 앞에 선 누군가 바라본다.
아직 잠이 덜 깬 듯한 귀섭,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하고 미소짓는다.
다시 더 빛에 익숙해진 듯한 귀섭, 몸을 일으키려고 하면 누군가의 뒤로 또 누군가를 본 듯하다.
눈을 크게 떠 더 자세히 보려는 귀섭, 누군가를 알아차리고는 점점 표정이 변한다.
굳어버린 귀섭의 표정


S#75. 귀복 집 / 밤

귀복 들어오면 다급하게 짐 싸고 있는 말자.
귀복, 그런 말자 의아한 듯 쳐다본다.

귀복 엄마.

말자, 귀복 발견하고 아무 말 없이 챙긴 짐 옆에 끼고 손잡아 끈다.

귀복 와 이라노?
말자 온나, 도망가야 된다.
귀복 뭔 소리고?
말자 말 할 시간 없다. 가자.

귀복 손잡고 뛰는 말자


S#76. 산 / 밤

밧줄에 손이 묶인 채 앞서서 걸어가고 있는 귀섭
귀섭을 향하고 있는 총부리
그를 따라가고 있는 여섯 개의 군화발
그 뒤를 한참이나 떨어져 따라가고 있는 작은 발
하얀 발목 양말에 분홍 신발을 신었다.


S#77. 산 / 밤

산 속의 공터
웅성거리고 서 있는 마을 사람들
모두 두려움에 차 있는 얼굴들이다.
귀섭이 끌려오면 더욱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
어떤 이들은 자기들끼리 소곤대고, 어떤 이는 귀섭을 외면한다.
귀섭 뒤를 따라오던 은하를 보고 더 놀라 소곤대는 사람들
어떤 이들은 입술을 씰룩거리며 은하의 흉을 보는 듯 하다.


S#78. 산 / 밤

많이 뛰어온 듯 땀 범벅이 된 두 사람

귀복 말 쫌 해 봐라. 뭔 일이고?

이 때 산 아래에서 들리는 ‘반동 노무 새끼’ 소리
귀복 놀라 산아래 바라보면 나무 사이로 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자세히 보면 마을 사람들과 공산당 섞여 있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귀복의 머리 잡고 웅크리듯 바위 뒤에 숨는 말자.

귀복 지금 술래잡기 하나?

더 크게 울려 퍼지는 소리
말자, 들키지 않으려고 귀복을 안아 몸 더 웅크린다.
귀복, 말자의 팔 사이로 다시 산아래 보면 군데군데 끼어있는 귀섭의 동료들
마을 사람들, 그들의 위협에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한 얼굴들이다.

기철 배신이란 있을 수 없다.

웅성거리는 마을 사람들

기철 뭐하고 섰노? 이놈하고 같이 죽고 싶나?

귀복, 더 자세히 보면 사람들 가운데 무릎꿇고 거의 쓰러지다시피 놓여 있는 귀섭, 피투성이다. 숨소리 거칠어지는 귀복

귀복 엄마, 엄마.

귀복의 입을 틀어막는 말자

기철 죽기 싫으면 빨리 들어라.

귀복, 말자의 팔에서 빠져나가려 하면, 말자 그런 귀복 더 꽉 안는다.
얼굴 붉게 변한 귀복 째려 볼 듯 산아래 보면 사람들 가운데 끼어 있는 은하, 왼팔에 붉은 완장 차고 있다. ‘ 흡 ’ 소리와 함께 움츠러드는 귀복, 숨이 막힌다.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한다.

기철 자, 크게 외치시오. ‘ 반동타도 ’

어설프게 따라하는 마을 사람들

기철 모범을 보이야 겠다. 이 반동노무 새끼를 잡는데 크게 공헌한 은하동무 앞으로 나오 시오.

귀복, 눈이 더 커진다. 땀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여전히 귀복의 입을 막고 있는 말자의 손

기철 동무, 이 민족의 쓰레기에게 먼저 돌을 드시오. 반동타도

은하, 앞으로 나온다.
천천히 쓰러진 몸을 일으키려는 귀섭
은하, 표정에 미세한 떨림이 있다.

기철 자, 어서 모범을 보이시오. 반동타도.

눈이 빨개지는 은하
눈가로 퍼지는 눈물

위원장off 조직이 흔들리면 끝인기다.
귀섭off 니 닮은 딸 낳야지.
위원장off 여기서 멈추면 다 죽는기다.
귀섭off 이름? 뭐라 짓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 두 사람꺼 합해가 지야겠 다. 응? 윤은복... 와? 뭐가 촌시럽노? 윤 은 복 ! 우리 딸 이름이다.
위원장off 니를 그래 약하게 키웠나? 민족이 먼저다.

기철 은하 동무! 외치시오. 반동타도.

은하 ... 반...동...타...도.

은하, 입술 깨물며 돌을 던진다.
고개를 드는 귀섭, 번뜩이는 눈으로 은하 쳐다본다.

기철 반동타도
사람들 반동타도

하나 둘, 던져지던 돌 점차 그 개수 많아진다.
마을 사람들 전체 주위의 눈치 보며 돌 던지기 시작한다.
돌에 맞아 뒹구는 귀섭
은하, 움직임 없이 그 자리 그대로 서 있다.
두 손 꽉 쥐는 은하.
은하의 볼 위로 흐르는 눈물
말자, 귀복의 눈 가린다.
벌개진 눈의 귀복, 그런 말자의 손 치우며 달려나가려고 한다.
그런 귀복 더 단단히 끌어안는 말자.

귀복 놔라... 햄... 햄... 놔라.

귀복의 시야로 땀과 눈물 때문에 흐려진 그들의 광경



S#79. 기차 안 / 낮

중학생이 된 듯한 귀복, 교복차림에 모자도 쓰고 있다.
옆에 나란히 앉아 자고 있는 말자.
말자, 정신이 온전치 못한 듯 가끔 경기를 일으킨다.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계속 침을 흘리는 말자
귀복, 가끔씩 손수건 꺼내 말자의 침 닦아준다.
조용히 창문 밖 풍경 바라보는 귀복
쥐고 있던 손 펴 보면, 반짝이는 나침반
귀복, 나침반을 쓰다듬는다.
이때 앞자리에 앉는 할아버지, 자세히 보면 처음 장면에서 봤던 그 때 그 할아버지다.
자리에 앉자마자 계란 까 잡수시는 할아버지.
귀복, 할아버지가 와 앉은 것도 모른 채 창문만 보고 있다.
계란 먹던 할아버지, 귀복을 유심히 쳐다본다. 고개 갸우뚱,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미소짓는 할아버지.
귀복 옆자리 보면 말자가 자고 있고, 또 옆자리 보면 비어 있다.

할배 ... 햄은? 어디 갔노?

그제서야 앞자리에 앉은 할아버지 보는 귀복
낯이 익은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이내 고개 돌리는 귀복

할배 이번엔 가나?
귀복 ...
할배 갱희 만나러?
귀복 예?

주섬주섬 보따리에서 뭔가 꺼내시는 할아버지.
귀복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 흑백의 사진 꺼내신다.

할배 니 사촌이 아이고, 내 손녀, 갱희... 김갱희말이다.

당황한 표정의 귀복
할아버지, 계란 하나 귀복에게 내민다.
어정쩡하게 계란 받아드는 귀복
행복한 미소짓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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