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상징과 은유로 현대의 잣대를 벗어나다”

김기덕 감독의 열 번째 영화 ‘사마리아’는 제목이 풍기는 어감처럼 종교적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 있는 영화이다. 주변부 인생들의 질기고도 질긴 욕망의 집착을 현미경처럼 날카롭게 관찰했던 전작들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한발 뒤로 물러나 망원경처럼 관망하듯이 바라보고 있다.

전작과 달리 ‘끔찍한 통쾌함’은 사라졌지만(김기덕 매니아들에게는 매우 불행한 소식이다), 대신 멀리서 지켜보는 부드러운 관망은 새로운 맛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느 김기덕 영화처럼 이 영화의 내용도 간단하다. 영화는 총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원조 교제하는 재영과 그의 친구 여진의 이야기 ‘바수밀다’, 죽은 재영을 대신해 여진이 원조교제하는 현장을 목격한 후 벌어지는 아버지의 잔인한 복수극 ‘사마리아’, 여진과 아버지의 화해와 용서의 과정 ‘소나타’가 그것이다.

영화는 세 부분은 나누어져 있지만 굳이 그렇게 나눌 필요는 없다. 내용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전작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파란 대문’ ‘실제상황’ ‘나쁜 남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자장 안에서 영화는 진동하고 있다.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 역시 비슷하게 전개된다. 원조교제를 통해 설법한다는 점에서 창녀가 구원자라는 남성 중심적 사고를 드러낸다는 비판이 먼저 꽂힌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원조교제하는 딸을 아버지가 죽이지 않고 용서한다는 점에서, 남성인 아버지는 예수를, 딸인 여자는 간음한 여인을 상기시킨다는 점을 들어 김기덕 감독의 여성 혐오가 간악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물론 이런 비판을 모두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재영이 원조교제를 하는 이유가 불분명한 것은 사실이다.

가정 배경이 없고, 섹스 후 목욕탕에서 여진과 몸을 씻으면서 동성애적 사랑을 하는 것으로 보아 극도의 고독감의 일탈로 원조교제를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바수밀다의 포교와는 거리가 있다.
초반에 자살한 재영의 이야기가 다분히 판타지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 판타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는 쉽지 않다. 또 하나 예수와 죄인의 은유를 남성과 여성의 단순 대입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전에 이것은 신과 인간의 용서와 화해의 과정이 아니던가.

이제까지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욕망의 청년’의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아버지’의 영화이다. 영화 분위기가 가라앉고 차분해진 것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 영화는 성인(成人) 김기덕 감독이 들려주는 한 편의 설화이다. 현대의 잣대로 이것을 평가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부터 김기덕 감독은 현실에서 발을 떼고 설화의 세계로 나가는 것 같다. 그것이 김기덕의 성장인지 퇴행인지 모르겠지만 차기작을 준비하는 그의 부지런함은 조만간 이를 증명할 것이다. 더불어 김기덕의 여성관 역시 좀더 분명해질 것이다.

강 성 률
영화평론가, 본교 ‘영화의 이해’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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