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에 대항한 레지스탕스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 (1886-1944)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1886∼1944)는 20세기 역사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아날학파의 제1세대 학자이자, 나찌 독일의 점령 아래에 놓였던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실천적인 지식인이었다.

아날학파는 블로크가 뤼시앙 페브르와 함께 창간한 ‘사회경제사연보’(Annales d'histoire conomique et sociale)에서 유래하는데, 정치보다는 사회, 개인보다는 집단, 연대(年代)보다는 구조를 역사 인식의 기본틀로 하여 전통적 역사학에 지리학·사회학·경제학·인류학 등을 중첩시키는 새로운 인식 체계를 구축한다.

이같은 아날학파의 일원으로 블로크의 업적은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1931), ‘봉건사회’(1939~ 1940)라는 걸작을 통하여 잘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블로크는 ‘역사를 위한 변명’(1949년 출간), ‘이상한 패배, 1940년의 증언’(1946년 출간)을 통하여 역사의 본질과 관련한 인식 문제를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위의 두 저서는 ‘도대체 역사란 무엇에 쓰는 것인지’와 ‘역사가 우리를 배반했다고 생각해야 될까’라는 다소 회의적인 질문에 대한 역사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블로크의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블로크는 역사가 본질적으로 변화의 학문이자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역사는 그 오랜 시간의 흐름에서 반복이 일어나기도 하며,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불투명한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블로크는 “역사는 내일은 어떤 방향에서 어제와 다를 것인가를 예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년의 블로크는 독일의 침략과 지배라는 프랑스가 직면한 현실 속에서 위의 두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실천적으로 노력했으며,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로 독일군에게 처형당한 그의 죽음은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저항한 지식인의 뜨거운 상징이 되었다.

아직까지 식민지와 근대의 기억과 역사의 투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현실에서 성장하고 이제 역사연구자의 길로 들어선 초학의 필자에게 블로크의 인간과 그 전체로서 역사를 바라보고자 했던 인식과 실천성은 제국(帝國) 프랑스 민족주의로의 회귀라는 일각의 평가도 존재하지만 단재 신채호의 그것과 함께 내면의 울림으로 자리하고 있다. 며칠 전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대통령탄핵안을 가결시키고 난 후, 국회라는 기이한 집단의 장은 “대한민국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전진해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을 접하고 난 후 ‘역사가 우리를 배반했다고 생각해야 할까’라는 블로크 만년의 의문을 실로 오랜만에 현실 속에서 떠올리고야 말았다. 이것은 필자만의 우울한 상상일까?

  이 경 섭

사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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