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서 ‘행동’으로

비록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나 21세기 현재에도 지구 곳곳에서 아직도 진행 중인 산업혁명-‘혁명’이 아니라 2차 산업으로 서서히 국가산업구조가 개편되고 그에 따라 사회와 생활, 개인의 사고가 서서히 변화되어가는 현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지만-이 전지구적 현상으로 전개되면서 전지구적인 차원의 ‘기술딜레머’가 발생하게 되었다.

기술은 이미 일상생활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도구와 기구, 기계의 수준을 넘어 인간의 인식과 존재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켜 주리라(마르크스)는 야무진 희망을 주었던 기술이 바야흐로 노동과 경제차원의 문제부터 인조(人造, man-made)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전 인류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의 인조환경, 즉 현대도시와 건축은 거의 전적으로 산업혁명의 소산이라고 볼 때, 21세기 환경의 세기를 맞이하여 모더니즘에 기초한 기존 도시건축의 철학과 가치를 생태적 가치로 재고할 시점이 되었다. 

우리 동국대학교는 우리나라 약 200개 대학 중에서 가장 서울 도심에 위치한 대학으로서 어찌보면 21세기 한국 대학캠퍼스의 현주소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학교의 주거환경 상황이 곧 동대 구성원의 존재상황(하이데거)이라고 한다면, 동대 구성원은 현 캠퍼스의 상황을 어떻게 스스로 평가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사이비 근대성, 전형적 근대성, 역사성과 지역성, 포스트모던, 친환경 생태적 지구, 화석연료고갈과 환경위기 시대를 맞아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주창한 ESSD, 즉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원칙에 비추어 우리 캠퍼스를 다시 생각하여볼 때가 되었다.

전세계 에너지의 50%정도를 건물이 소비(냉난방 45%, 시공 5%) 하고 있으나 이를 친환경적으로 보수할 경우 이 중 50-85% 에너지 절약 가능하다고 한다(내 연구실의 벽체 열관류율은 현행 법규정치의 무려 4-5배).  미국 일부 대학에서는 모든 전기수요를 자체 생산하여 자급자족하고 있으며, 독일 등에서는 소비하고 남는 전기를 전력회사에게 되팔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었고 이를 실행 중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도시와 건축을 영국, 브라질, 일본 등 세계 각국은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각종 대중매체에서 접하고 있다.

철학은 물질에 따른다. 물질이 없고 경험이 없는데 철학과 사상만 있다면 이는 외부에서 유입되어 위로부터 강요된 사상과 철학일 것이다. 우리를 애워싸고 있는 물리적 환경에 대한 변화 없이 형이상학적 문제에만 관심이 머물러있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유교적 전통이라 생각한다.

‘도시 내 소규모 생물서식공간(비오톱)사업’(한국녹색문화재단)과 ‘옥상녹화사업’, ‘푸른 서울 가꾸기’, ‘걷고 싶은 거리 만들기’(서울시) 등의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남산의 동식물에게 서식지를 제공하고, 서울의 열섬효과를 줄이고, 아름다운 경관을 창출하고, 대학소비에너지를 줄이고, 바라보는 자연에서 한데 어우러지는 자연을 제공하는 일이 ‘나 스스로 변하자’는 동국대 100주년사업을 발전적으로 실현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학생복지 차원의 옥상녹화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남산과 서울의  제 모습을 찾는 일에 동참하는 일 또한 우리 학교의 사회적, 국가적 책임이 아닐까 한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의사소통하는 일은 미래 대학의 역할이라고 한다. 부동산의 경제적 가치에 매달려 고정자산 확보에 전념하여온 전국 사립대학의 관행을 이제 생태도시건축 및 조경을 통하여 우리 주변과 자연을 돌보는 건강한 공동체 형성으로 그 관심을 바꿀 때가 되었다. 
 
4월 중순에 그 결과가 발표될 동국대 옥상녹화 및 생물서식공간 지원사업은 남산의 녹지체계를 조금이나마 회복시켜 자연과 인간이 서로 돌보는 대학의 물리적 환경을 창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하여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근대도시와 시골에서 자라난 우리 학생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가꿔주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기존의 남산순환로와 연계시켜 서울시민에게 도심 내 소규모생물서식지 공간을 제공하고, 여름철 서울도심의 열섬현상을 누그러뜨리는 효과와 본교의 에너지절약도 기대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학생 여러분, 2004년 식목일을 맞이하여 거창한 사상논쟁보다도 남산에서 자라나고 있는 별 볼일 없는 나무, 풀, 벌레 이름을 하나라도 새로 외웁시다. 지금은 생태철학을 넘어서 생태운동과 생태적 삶이 필요한 때이니까요. 이름은 관심의 시작이고, 관심은 행동의 시작입니다.     
                  
전 영 일
공과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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