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원하는 곳에서 편히 살고싶네”

영화 ‘송환’의 마지막 장면 ‘북으로 함께 가지’ 못한 사람들이 아쉬움을 애써 남긴다. 아직 이곳에 남겨져 쓸쓸히 2차 송환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낙성대에 위치한 ‘만남의 집’에 살고 있는 이른바 ‘강제전향’ 장기수 정순택(84), 문상봉(80), 김영식(71) 할아버지가 그들이다. 

컴퓨터 공부를 하고 있었다며 호탕하게 웃는 정순택 할아버지는 ‘컴맹’ 탈피를 위해 독학을 할 정도로 나이에 비해 매우 정정하시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충북 진천이다. 그럼에도 고향을 등지고 지난 49년 아내와 함께 월북한 이유는 해방이후 친일파가 득세하고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운영되는 남쪽이 자신이 바라는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쪽에서도 편안할 수 있는 여건이었지만 앞날을 생각해보니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남쪽은 결국에 미국 세상이 되겠더라고.”

월북 후 조선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하던 정 할아버지는 지난 50년과 58년 두 차례 대남정치공작원으로 남파, 58년 서울에서 체포돼 31년 5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체포당시 정부는 정 할아버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악명 높다는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그는 자신이 당하는 고문보다 주위 동료들의 비명소리와 처참한 고문 흔적들 때문에 ‘정신신경증’까지 얻었고 이를 견디지 못해 결국 전향서를 썼다.
하지만 국가는 명목상 ‘전향한 사실’ 때문에 지난 2000년 9월 2일 이뤄진 송환에서 정 할아버지를 제외 시켰다.

할아버지가 지난 99년 언론을 통해 전향취소 선언을 했음에도 말이다.
“나처럼 전향 뒤 전향취소 선언을 한 다른 동지는 북으로 갔다네. 누구는 가능하고 누구는 왜 불가능 하나.” 정 할아버지는 지난해 12월 국제엠네스티로 이같은 차별처우에 대해 자신도 북으로 송환되길 바라는 항의서를 보냈다.

“혈육 보고 싶은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있겠나. 자식들 보기 위해서라도 꼭 살아서 가야지.” 그동안 북녘의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속 한 켠에 묻어둔 정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지금 당뇨병과 퇴행성관절염 등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꾸준히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민족의 통일을 보기 위해서다. 만약 우리 민족의 통일이 이뤄진다면 할아버지의 지병도 말끔히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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