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세기독서문화와 문화변동 연구

지난 9일 이화여자대학교 2004년 한국문화연구원 학술대회 ‘17·18세기 동아시아의 독서문화와 문화변동’이 열렸다. 이는 한국학술진흥재단 기초학문 인문사회분야 지원과제인 ‘17·18세기 조선의 독서문화와 문화변동 연구-외국서적 수용을 중심으로’의 1차년도 연구발표의 성격을 띠고 있어 주목을 받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진 학술대회는 △‘일지록’에 내포된 중국실학의 정치적 의도와 조선으로의 유입과정 △명청대 출판문화와 판화서적 △17·18세기 조선의 서양교육관련 서학서의 독서와 서양교육의 이해 △18세기말 서울에서의 명청서적 유통의 실태 △서양전래의 서적정보와 시각문화의 변모 △종합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주로 조선의 독서문화에 관해 얘기된 이번 토론회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제1발표는 ‘일지록’에 내포된 중국실학의 정치적 의도와 조선으로의 유입과정에 관한 내용이었다. 발표자인 윤대식 충남대 아시아지역 연구소 연구원은 고염무는 명의 멸망 원인의 하나가 성리학이 본래의 실용적이고 경세적인 측면을 상실하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원리로 변질된 점이라고 생각했다며 “멸망한 명나라의 사신이었던 고염무의 일지록이기 때문에 실패한 통치기제의 원인분석과 이를 보안할 수 있는 대안의 모색을 말하는 정치개혁론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3발표 ‘17·18세기 조선 사대부의 독서 양상과 한역서학서를 통한 서양교육 이해’에서는 17세기에 받아들인 서학과 19세기 북학파 실학 지성들이 받아들인 서학은 내용상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시작됐다.

이와 관련해 발표자 차미희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원은 “17·18세기에 조선에 전파된 서학은 포교 목적의 학문이었기 때문에 서양교육이 지식위주의 지엽적인 문제만을 가르친다 비판받았지만 19세기 이후의 서학-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부터 여자들과 장애자의 교육 확대-은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으며 사대부들 사이에서 이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필요한 부분은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였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17·18세기 조선은 외국 문화에 대해 주체적이면서도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던 열린 나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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