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제전에서 현재까지

동대생들에게 ‘대동제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을 물으면 열에 아홉은 유명 가수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어떤 답을 할까. 동악의 축제를 거슬러 올라가 그 해답을 알아보자.

▲1960~70년대 초반=‘동국제전’이라고 불리는 현 목멱대동제의 전신이 처음 시작된 해는 1959년이었다. 동국제전은 보통 5월 초순에서 중순에 행해졌는데 이는 석가탄신일을 경축한다는 의미가 강했다.
대부분의 행사는 심포지엄이나 강연회 등으로 이루어졌고 동아리나 학과의 특색에 맞는 전시회가 진행되기도 했다. 김용표(불교78졸) 불교학과 교수님은 당시의 축제를 “학술행사와 예술행사가 주류를 이루었고 전교생이 참여하는 음악제나 카니발 등도 열려 매우 낭만적이었다”고 회상한다.
이외에 이색적인 행사로는 총여학생회가 주최한 ‘메이 킹’을 꼽을 수 있다. 메이 킹에 뽑힌 인기 있는 남학생은 학내신문 1면에 이름이 실릴 정도로 매우 유명했다.

▲1970년 후반~80년대=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야제 행사는 재학생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전야제 행사 중 하나인 ‘동국인의 향연’을 통해 동문, 교직원, 재학생 모두 한 자리에 어우러져 장기자랑을 펼치는 장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85년 ‘동국제전’의 명칭이 ‘목멱대동제’로 탈바꿈하고 축제의 주체가 총학생회로 옮겨가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축제준비위원회를 통해 ‘민중해방·민족해방의 깃발아래’등 매 축제마다 기조를 내세우고 이에 맞는 행사를 진행해 현재와 같은 축제의 형식을 갖추게 된다. 김은주(역교91졸)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신문분과장은 “당시는 학과나 단과대에서 하는 대부분의 행사가 정권에 대한 규탄 등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1990년대=학생들의 참여가 현저히 줄어들어 총학생회 단위의 행사보다는 참여 주체를 늘리기 위해 공연분과 동아리나 단과대 단위의 행사가 많이 열렸다. 이종관(기계공98졸) 씨는 “학과에서 자동차와 행글라이더를 자체 제작해 출품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또한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딱딱한 학술제적 성격에서 탈피해 차전놀이, 길놀이, 진오귀굿, 모의재판 등 재미를 더한 행사가 진행된다. 이와 함께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불온 서적물로 취급되어 금서 조치된 책들을 판매하는 금서바자회, 상영 금지 등 제재 조치를 받은 ‘닫힌 교문을 열며’등을 상영한 새로운 영화제 등은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해 마련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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