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보여줘”

얼마 전 필자는 모 포털사이트에 기록된 박분자의 인물검색정보를 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박분자’라고 치자, 실존하는 다른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대표곡, ‘휴지의 시’, ‘잡히지마’ 등의 히트송, ‘인터넷패러디 전문’, ‘고속도로트로트메들리 발매(2000)’라는 정보가 뜨는 것이다.

사실 박분자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사이버공간에서는 그는 실존하는 어느 가수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버젓이 가상인터뷰가 이루어지기도 하며 사이버가수인 박분자는 다음사이트에만도 팬 카페만 30개 이상을 가지고 있다. 박분자의 플래시가 올려지는 풀빵닷컴의 경우에 당일서버가 마비될 정도의 인기도를 보여준다.

왜일까. 왜 우리는 그가 가공의 사이버공간이 만들어낸 인물임에도 그에게 열광할까. 이들이 열광하는 다양한 장르의 실존 가수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박분자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박분자가 가지는 익명성보다 오히려 일상성에 있을 것이라고 보아진다. 일상성에 기반한 개사나 리믹스 등이 이미 우리의 문화저변에 존재해왔으며, 이들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확산의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사실 박분자를 만들어내기까지 우리는 2003년의 사이버공간을 지배했던 키워드인 ‘엽기송'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근송'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엽기송의 바람은 ‘우유송', ‘소주송', ‘밥풀떼기송'에서 최근에는 ‘딸려송'에 이르기까지 네티즌들의 사소한 일상을 표현하거나 혹은 캠페인송으로, 그리고 사회비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내용을 담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같은 엽기송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우리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는 가사들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며, 덧붙여 바로 우리 이웃의 목소리가 담겨있다는데 있다. 박분자의 노래가 인기를 끌었던 것도 ‘카드빚'이나 ‘저금통'과 같은 서민들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표현해준다는 데 있다.

2003년부터 사이버공간에서 생겨나는 변화의 흐름의 중심에는 항상 ‘문화주체'로서의 ‘개인'이 존재했다. 즉, 엽기송이었던, 얼짱문화이든 간에 그리고 그 주제가 개인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스스로 이야기하길 원한다. 결국, 문화의 눈높이를 개인 스스로에 맞추기 시작한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박분자라는 사이버가수의 등장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대중문화의 핵심인 ‘대중가요'를 ‘일상가요'로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누구나 노래를 부를 수 있고, 누구나 가사를 적을 수 있고, 그리고 누구나 작곡가가 될 수 있다는 ‘일상문화'를 만들어내었으며, 이제는 사이버공간에서 -과거엔 전문가가 아닌 개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문화가 하위문화로 간주되었지만- 누구나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김 양 은
사이버문화연구소 소장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