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역사학의 아버지 사마천 (B.C. 146∼?)

역사를 전공한다는 명분으로 역사가인양, 혹은 먹물인척 하는 필자에게 늘 떠나지 않는 상념이 있다. 역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것인가? 나아가 역사가는 어떤 정신으로 역사를 쓰고 바라보아야 하는가?

서양인들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존중하나, 동양에서는 전한(前漢) 시대의 사마천(B.C. 146∼?)을 그 이상의 인물로 평가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사기(史記)’중 ‘열전’은 사기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부분이다. 여기에서 그는 인간사를 관통하는 모든 유형의 인간들을 조명함으로써 인간의 본질과 역사의 본질을 통찰하고 있다.

‘열전’에서 사마천은 다양한 종류의 인간들을 통해 역사를 보고 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역사서에서 만나는 영웅들이나 승리자들의 기록만을 다루지 않는다. 그의 서술 대상에는 성공하거나 특히 실패한 학자·정치가·군인, 심지어는 자객·해학가들까지도 포함된다. 이들은 각각 일기일예(一技一藝)로 일세를 풍미한 인간들이었다. 그의 서술은 문장의 미사여구가 주는 현란함보다는 오히려 가슴속에 있는 진실을 울리고 심장에 비수를 들이대는 것 같은 차가운 지성을 느끼게 한다.

‘백이숙제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갈파한다. “성인이며 선인이며 정의파인 백이, 숙제는 왜 산중에서 굶어죽었고 … 반대로 도척이라는 악당의 두목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잡듯이 빼앗고 사람의 간을 회쳐서 먹고 포악방자하여 수천 사람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으나 제명을 누리고 살았다. 이것은 그가 도대체 어떤 덕행을 쌓았기 때문인가?”

여기에서 그는 인간사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던지고 있다. “천도(天道)는 공평무사하고 언제나 착한 사람 편을 드는 것인가?” 그의 처절한 통찰처럼 역사란 반드시 정의가 승리하고 불의가 멸망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들 역사현상과 도리의 모순적 관계를 논한다. 사마천도 한 역사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패러독스는 늘 계속되는 것으로 사마천은 결론지었다. 여기에서 그는 역사와 역사가로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토로한다. 그는 역사 속에 명멸하는 의인과 성인들, 그리고 특히 보상받지 못했던 불우한 인물들을 역사에 남김으로써 그들의 고혼을 위로하고, 또 이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순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군자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자신의 이름이 칭송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기는 법, 따라서 사마천은 역사 속에 감추어진 인물들이 용이 구름을 만나듯, 바람이 호랑이를 따라 일어나듯이 역사가에 의해 현재 속에 살아나기를 바랬고, 또 여기에 자신의 역할을 빗대었던 것이다.

사마천에게 인생의 목적이란 육신이 썩어 없어진 후에도 영구히 명예를 남기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훌륭한 덕성과 의지를 가지고도 고혼이 된 사람들을 자신의 문장과 힘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고자 바랬다. 사마천 이후 동양에서의 역사서술이 성행하면서 후세인들은 현세에서의 입신양명 못지않게 사후의 역사적 평가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신구조, 즉 역사적 인간상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마천의 사상은 위대한 인간존중 사상의 표현이었다.

필자는 오늘도 고뇌에 찬 사마천의 외로운 절규를 떠올린다.
“역사에서 천도(天道)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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