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풍랑 이겨낸 순수의 시인

세상에는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한 편견들이 많다. ‘고지식하다’,‘재미가 없다’,‘무섭다’,‘열정이 식었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편견일 뿐이다. 나이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사람. 바로 시인 문정희(국문70졸) 동문이다.
어릴 때부터 그는 여러 차례 백일장에 입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인의 길을 걷게 됐다. 특히 제2회 본교 전국 고교생 문학콩쿠르에서 시 부문 장원으로 선정돼 미당 서정주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것은 시인이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렇듯 그는 시인의 꿈을 간직한 채 본교에 입학했지만 대학시절에는 첫사랑의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끝없이 앓았고 버림받은 사람처럼 외로워했다. 서정주 선생을 비롯해 양주동 박사, 조영현 평론가 등 훌륭한 교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군사정권시절의 캠퍼스는 그에게 암흑과도 같았다.

“대학시절을 생각하면 터널을 기어왔다는 생각이 떠올라요.” 고등학교 때까지 꿈꿔왔던 자유와 이상의 상징이었던 대학.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의가 짓밟히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조차 제약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동문은 용기 하나로 불가능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는 열병의 시절을 보내며 ‘청춘’을 서서히 알아갔다.

대학 4학년 재학 당시 ‘월간문학’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그는 올해로 시인인생 35해를 맞는다.
“시간의 풍파가 나만을 빗겨간 것은 아니지만 한번도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어요.” 그는 벼루에 물이 마르지 않아야 좋은 글씨가 나오듯이 훌륭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창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자신의 신념을 지금까지 지켜왔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창작의 고통은 반평생 시인으로서 살아온 문동문에게 아직까지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는 시인의 성패는 엉덩이를 얼마나 오랫동안 의자에 붙이고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다양한 삶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혼자 책상에 앉아서 오로지 문학이 주는 즐거움으로만 보상을 받아야 하는 자리가 바로 시인이고 작가이기 때문이다.

“명예나 돈을 바란다면 다른 일을 찾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자기 분야의 최고만을 인정하는 냉혹한 세상에서 자칫하면 낙오자가 될 수 있기에, 그는 후배들에게 창작의 즐거움을 포기하거나 유보하라고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는 평생동안 자유와 생명에 관해 노래했다. 공격적이기보다는 다름을 감싸 안을 줄 아는 사랑을 바라는 것이다. 또한 페미니즘은 그의 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다.

“세상이 엉터리처럼 보일지라도 그 속에는 정확한 톱니가 있다는 것을 믿어요.” 벌써 세상을 경험한지 오래됐지만 그는 순수한 믿음으로 여전히 세상을 사랑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사춘기 소녀 같은 감정에 진저리처 지기도 하지만 또 이런 감성을 천형처럼 고이 간직하고 싶다는 문정희 시인. 우리는 아직도 소녀 같은 지금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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