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적 생명관 접목 … 생태계 위기 대안 제시

인류가 문명을 형성한 이후, 대부분의 역사는 농업사회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농업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의 허용 범위 안에서 생태 순환 시스템을 통해 생명을 양육하고 있는 반면, 현재의 산업은 자연과 철저히 대결하면서 자연의 허용 범위를 넘어 생명을 가공 처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는 자연의 모든 것이 파괴와 오염,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 산업 문명의 문제점을 제대로 고찰하기 위해서는 동·서의 각 문명권이 제시하고 있는 기존의 생명관을 대조해 보고 이에 따른 생명 위기의 시대에 대한 대안과 불교 생태학에서의 생명관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생명은 무생명의 물질과 결합하여 자연의 전반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생명을 보는 관점은 자연을 이해하는 시각 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이러한 자연관은 각 문명권마다 매우 다른 양상으로 전개돼 왔다.
주지하다시피 산업사회에서 자연이란 인간에 의한 지배와 이용과 개발의 대상이 되어왔다면, 소위 농업사회에서의 자연은 대립이 아닌 조화의 대상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같은 농업사회라 하더라도 서양과 동양은 그 문명적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시 말해 산업화 이전의 서양과 동양은 비 산업사회라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서양이 해양문명과 상업문명의 성격을 띠는 것이라면 동양은 대륙 문명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명적 성격을 달리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사회의 생명관과 대비되는 의미에서 농업사회의 생명관을 고찰하려면 우선 그 농업 사회를 대륙·문명적 동양의 비 산업 농업사회와 해양·유목문명적인 서양의 비 산업 농업사회로 나누어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먼저 동양의 농업사회에서는 생명을 ‘대지’의 표준적 이미지로 하여 ‘자연화’된 존재로 인식하고 그 본질을 순환성에 두고 있는데 반해, 서양의 농업 사회에서는 생명을 ‘영혼’의 표준적 이미지로 하여 ‘의인화’시켜 그 본질을 ‘합목적성’에 두고 있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 일종의 완충 역할을 했던 생기론(le vitalisme)생명관은 ‘감각성’으로서의 생명력을 모든 생명의 원리로 삼았다.
이에 반해 산업사회에서는 기계를 표준적 모델로 생명관이 성립되기 시작했으며 그 본질 역시 조작 가능성, 이용 가능성, 상품화 가능성 등에 두고 있다.
그러던 것이 생태계의 위기의 시대인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생태학의 본질은 상호의존성을 대표로 순환성과 항상성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하고 있다.

이에 더해 불교 역시도 네트워크적인 ‘그물’을 생명의 표준적 이미지로 하며 상호의존성에 의거한 순환성과 항상성을 생명의 본질로 여기고 있는 점에서 생태학과 연결 고리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특히 불교적 의미의 생명인 ‘연생(緣生)’과 ‘비생(悲生)’으로서의 중생은 생명의 본질인 상호의존성을 상호존중성으로 확대시킴으로써 생태계 위기 해소에 유용한 생명 사고의 방식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순환성’을 그 본질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농업적 생명관과 생태학적 생명관은 일치한다.
농업은 철저하게 자연 의존적인 산업이다. 이는 농업의 원리를 살펴보면 생명체의 산출 유지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자재인 이산화탄소를 무제한으로 값을 치르지 않고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광합성이라는 유기물 제조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 역시 태양 광선으로부터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농업은 자연 의존적이기에 자연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자연의 순환적 질서에 순응하고 있다. 또한 땅에 씨앗을 묻고 싹을 틔우며 생명체를 길러 내는 생명 양육으로서의 농업은 땅에서 얻은 것을 다시 그 땅으로 다시 되돌려 준다.
즉, 땅에서 자란 생산자인 식물이 산출한 유기물을 소비자인 동물이 섭취하고, 그렇게 살다가 땅에 묻힌 식물과 동물을 분하는 미생물이 무기물로 해체하여 재차 식물의 땅 및 뿌리 속으로 흡수되도록 하는 전 과정이 지속적으로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생태계의 생물학적 구조는 ‘순환성’을 그 특성으로 하고 있으며 각 단계가 서로 ‘상호의존성’을 지니고 있음을 판단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땅, 대지는 생태계 순환의 중심지가 됨으로써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가 되고 있다는 논리가 생태학적 생명관인 것이다.      
이처럼 순환적이라는 점에서 농업의 생명관과 생태학적 생명관은 이토록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농업이 자연의 절대적 지배력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자연의 순환성에 순응해 왔다면 오늘날의 산업 사회는 살아있는 자연을 파괴하고 죽이는 과정을 통해 엄청난 자원을 낭비하고 있으며 생태계의 오염 역시도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태학은 생태계의 이치를 연구함으로써 이렇게 파괴되고 있는 자연을 회복시켜 나가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순환성 등 자연 생태계의 이치는 단순한 순응의 대상이라 판단할 수 없으며 지혜와 조화의 차원에서 탐색되어야 할 내용인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순환성이 상호 의존성이라는 ‘시스템적 네트워크’로 심화될 필요가 있으며 이 지점에서 농업과 생태학이 승화의 접점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상호의존성이 ‘상호 존중성’이라는 실천의 차원으로 확장돼 나가기 위해서는 상호의존의 존재라는 의미의 ‘연생’과 상호존중의 존재라는 의미의 ‘비생’이라는 불교적 생명관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포괄적 의미에서의 생명관만이 불교와 생태학이 창발적으로 융화되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일조하는 동시에 농업 문제, 즉 생태계의 위기의 해결에 진지한 대안을 제시하는 터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리=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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