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독일대학

필자는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북부독일에 있는 Kiel대학에서 1년간 연구차 체류 중에 있다. 이 대학은 발트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여건을 이용하여 북유럽 및 동유럽국가의 법률, 사회제도, 언어와 문학 등을 모두 포괄하는 학제간 교류와 연구를 특성화하여 운영하고 있다. 대학당국과 교수들은 연구와 강의 이외에도 연구소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다양한 대화채널을 열어놓고 있다. 즉 대학은 사회의 각종 단체들을 대학의 연구기관과 유기적으로 연계시켜 학술적 의문점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도록 주선하고 있으며, 대학에 소속된 연구소에서는 연계강의, 강연회, 토론회 및 각종 전시회를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필자가 머물고 있는 동유럽법연구소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본다. 지난 학기 이 연구소에서는 독일의 동유럽학회와 주정부 및 장학단체의 후원을 받아 매주 월요일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우리 같으면 학기중에 1회 정도 있을까 말까 한 강연회가, 이 연구소에서는 이미 학기가 시작되기 수개월 전에 다음 학기의 강연회 프로그램을 미리 확정하여 공고해 놓고 있었다. 주제도 중앙아시아국가의 법제도와 경제에 대한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필자는 강연회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 참석자가 10여명밖에 되지 않는데 놀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교 이외에는 학생이 한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비가 내리던 5월 어느 날의 강연회에는 참석자가 연구소장과 조교 그리고 필자와 일반인 2명이 전부였다. 그러나 주최측과 강연자 어느 누구도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그 이후에도 조교들은 학생들의 참석을 종용하거나 강권하지 않았다. 4개월간 계속된 강연회에  참석자가 20명이 넘는 경우는 단 두차례 밖에 없었고, 일반학생들이 참석하는 경우도 동유럽국가 유학생 몇 명이 참석한 것 말고는 거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초라한 것 같은 이 강연회에 초청된 연사들은 중앙아시아 국가를 평생 연구한 학자이거나 독일에 주재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의 대사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소수의 참석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독일 역시 중앙아시아 국가에 대한 전문가는 유럽이나 북미 국가에 비해 많지 않다. 물론 일반인의 이들 국가에 대한 관심은 더욱 적다. 자연 청중도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사나 주최 측이 이를 모르고 행사를 준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정부는 이 강연회를 적극 지원할 뿐만 아니라, 주지사까지 직접 강연회에 참석하여 자신이 궁금했던 사항을 질문하기도 하였다.

이번 강연회의 또 다른 특징은 강연회 장소를 대학강당만이 아니라, 키일시의 행정관서나 학술단체 등으로 이동하면서 개최하였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에 대한 대학의 밀접한 접목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대학건물이 도시 전체에 흩어져 있는 독일의 여느 대학과 달리 키일대학은 한군데 모여 캠퍼스 촌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일반참석자들이 대학까지 왕래하는 불편을 덜고 아카데믹한 부분을 희석시키면서 학문의 실용화를 도모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독일인은 불필요한 것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어떤 강연회든 정말 관심있는 사람만이 참석한다. 연사는 이런 자리를 통해 자신의 학문적 지식을 최대한 전달하면서 평가받으려 하고, 일반참석자들도 단순한 들러리가 아닌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갖추고 연사와 함께 토론하고 호흡하면서 연사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강연회를 통해 독일에서는 전문가나 교수들의 권위가 어떤 직책에 의해 인정되기보다 학문적 업적과 사회적 책무 및 도덕적 양식에 의해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같이 대학의 지역사회를 위한 작은 활동들이 곧 오늘의 독일사회를 이끌어가는 견인차가 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이 상 영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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