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공개적으로 일제시대 정신대가 조선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상업적 공창이었다는 이영훈 교수의 발언으로 우리사회엔 커다란 파문이 일고 있다.
해방이후 60년 동안 우리사회에서 위안부라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 모두 그것에 대해선 한번도 심각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위안부는 나라 잃은 민족의 여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힘없이 짓밟힌 여인들의 아픔이자, 딸 혹은 누이를 지켜내지 못했던 못난 아버지와 오라버니로서의 고통이 담긴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이 교수의 “자발적 위안부” 발언의 파문은 위안부 문제가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의 고통임을 반증하는 것으로 ‘학자로서 연구의 입장’ 이라는 점잖은 진단을 내리기에는 잘못이 너무 크다.

단지 ‘민족의 치부’를 까발려서가 아니다. 그의 잘못은 경제학자로서 민족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위안부 문제를 미군 기지촌이나 대도시의 ‘매매춘’의 문화와 동일선상에서 검토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을 저질렀다.

이 세가지는 서로 다른 발생 계통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고착화 과정을 가지고 있다. 나라 없는 백성이 당해야 했던 36년 간의 고통은 그 안에 없다.
‘민족의 아픔’혹은 ‘민족의 치부’를 건드린 이 교수에게 쏟아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민족적 분노’일 것이다. 학자로서의 입장도 그리고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없는 생방송 토론에 참여했다는 것을 감안한다 해도 이 교수는 분명 잘못한 것이다.

노영현(불교대 인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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