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리과원

상리과원
                              미당 서정주

꽃밭은 그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나 낙동강상류와도같은 융융(隆隆)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골로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웃음판과도같은 굉장히 질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둥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네온 배나무의 어떤것들은 머리나 가슴팩이뿐만이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굼치에까지도 이뿐 꽃숭어리들을 달었다. 맵새, 참새, 때까치, 꾀꼬리, 꾀꼬리새끼들이 조석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수십만마리의 꿀벌들이 왼종일 북치고 소구치고 마지굿 올리는 소리를허고, 그래도 모자라는놈은 더러 그속에묻혀 자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일이다.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할려면 어떻게했으면 좋겠는가. 무쳐서 누어있는 못물과같이 저 아래 저것들을 비취고 누어서, 때로 가냘푸게도 떨어져네리는 저 어린것들의 꽃닢사귀들을 우리 몸우에 받어라도 볼것인가. 아니면 머언 산들과 나란히 마조 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유두분면(油頭粉面)과, 한낮의 춤과, 황혼의 어둠속에 이것들이 자자들어 돌아오는 아스라한 침잠이나 지킬것인가.
하여간 이 한나도 서러울것이 없는것들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하나도 없는곳에서, 우리는 서뿔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서름같은 걸 가르치지말일이다. 저것들을 축복하는 때까치의 어느것, 비비새의 어느것, 벌 나비의 어느것, 또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것에 대체우리가 행용 나즉히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이어 있단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완전귀소가 끝난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때가 되거던,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곳의 별을 가르쳐 뵈일일이요, 제일 오래인 종소리를 들릴일이다.

 

  과수원지기 촌로(村老)의 어눌한 목소리로 숭엄한 자연의 교향악을 빚어낸 이 작품은 자연을 닮은 시골의 푸근한 정감과 자연이 베푼 축복을 잘 드러내 보인 명편 산문시의 하나이다. 어디에도 슬픔이 깃들어 있지 않은 초봄, 과수원의 흐드러진 꽃과 새와 벌과 나비들. 먼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황혼녘에서부터 어둠내릴 때까지 정관(靜觀)하며, 화자는 자연이 베푼 축복으로 슬픔과 상처를 치유하게 만든다.
                                                     
유 임 하
한국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