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는 ‘삶정치학’ … ‘탈근대’이해의 기초

대학원총학생회가 주최한 ‘탈근대와 맑스주의’ 기획강좌가 지난 8월부터 진행되고 있다. 이번 강좌는 근대이후 시대적 담론이 되고 있는 사상을 접하고자 마련됐으며 1강 ‘맑스주의의 형성과 기본개념’을 비롯해 총 7강좌가 진행된다. 이에 이번 기획강좌를 수강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강좌의 핵심내용을 전달하는 글을 게재한다.              <  편집자 >

 

이 강좌는 ‘탈근대’를 이유로 ‘맑스’를 ‘죽은 개’로 취급하려는 여러 형태의 새로운 관점들에 대한 거부이며 ‘근대’를 이유로 ‘맑스’를 낡은 정통 속에 가두어 두려는 여러 형태의 전통적 관점들에 대한 비판이다.

우리가 사는 탈근대는 맑스의 생각들과 그것을 기초로 발전한 ‘맑스주의들’을 기초로 할 때 더 잘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 이 강좌의 기본 관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맑스주의를 일정한 울타리를 갖는 것으로 만들고 맑스의 담론에 의거하지 않는 사상들을 배제할 위험성이다.

그래서 나는 맑스주의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전통적 구분을 넘어 그것들 모두가 혼합되어 작동하는 인류의 삶 그 자체의 실재적이고 가상적인 생산과 변형을 사유하는 실천적 지식(삶정치학)’으로 정의함으로써 표면상으로는 맑스와 연관되지 않는 사상가들을 맑스주의의 역사 속에 포함시켰으며 이 강좌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많은 사상가들을 맑스주의와의 관련 속에서 다룰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두었다.


갈등의 토대는 사회적 삶 자체

도입강좌인 제1강은, 맑스가 표상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모순적 생각들, 사회적 현실에서 발견하는 갈등들의 토대로서 파악한 것이 다름 아닌 사회적 삶 자체였음을 밝힌다.

인간의 삶활동은 활동력의 표현이다. 그런데 활동력은 삶활동으로 나타나지 않고 자본주의 현실에서는 노동으로 나타난다. 왜 활동이 노동으로, 모순과 역설로 얼룩진 강제노동으로 나타나는가? 이것이 맑스의 근본적 질문이었다. 활동력의 노동력으로의 전화, 인간의 유적 활동의 노동으로의 협소화, 이것의 사회역사적 조건은 무엇인가? 왜 인간의 유적 삶은 소외된 삶으로 나타나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맑스는 자본주의에서 삶이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영역인 경제적 생산의 영역으로 내려가 착취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한편 이 착취를 극복할 새로운 주체성인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주의적 생산과 재생산의 과정에서 형성되고 발전됨을 동시에 파악한다.

이것이 이후 맑스주의라는 독특한 유물론적 흐름을 만들어 내는 기초이다.


정치에서 맑스주의 진단

제2강은 맑스주의의 현실적 실천적 전개과정에서 나타난 당과 평의회의 관계 문제를 다룬다.
부르주아 사회는 삶을 정치와 경제라는 두 가지 분할되는 영역으로 나누고 정치를 경제위에 옹립한다. 삶은 정치적 힘에 의해 통제되고 조직되는 경제의 형태를 취한다. 삶의 힘의 정치적 힘으로의 이러한 소외를 극복하고자 한 맑스의 관심은 이후 맑스주의적 사유와 활동을 정치의 영역에 배치하는 것으로 굴절되어 나타난다.

이 정치주의적 사고는 전위당을 혁명의 전략적 수단으로 사고한 레닌에서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경제의 영역에서 출현한 프롤레타리아의 독자적 조직인 평의회와 분리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위당의 지도 아래에 복속시키고 심지어는 파괴해 왔음을 크론슈타트 봉기의 사례와 독일 노동자-병사 래테(Rete)의 경험을 통해 살펴본다.

이렇게 2강은 제2인터내셔널 이후 주류 맑스주의가 정치와 경제를 분할하고 정치를 우위에 놓는 부르주아적 이분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것을 실천적으로 재생산함으로써 좌파적 실천이 결국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국가자본주의로의 개혁에 머물렀다고 진단한다.


새로운 조류의 탄생과 발전

3강은 맑스주의 전통의 비주류 속에서 주류 맑스주의적 사유와 실천의 이러한 개혁주의적 귀결에 대한 인식이 탄생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다룬다.
러시아에서 노동자-농민-병사 평의회가 공산당 정치의 전동벨트로 전화하고 독일의 노동자-병사 평의회가 독일사회민주당의 바이마르공화국에 의해 분쇄되는 과정은 ‘사회주의와 전통적 맑스주의’에도 맑스적 비판을 적용해야 할 필요성을 낳았고 이것은 평의회 코뮤니즘과 비판이론이라는 새로운 맑스주의 조류를 낳는다.

레닌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전개했던 폴란드의 로자 룩셈부르크를 포함하여 네덜란드의 판뇌쾨크와 헤르만 코터, 독일의 오토 륄레와 코르쉬, 헝가리의 게오르그 루카치, 이탈리아의 그람시 등이 이 새로운 맑스주의 조류의 일부로서 검토되며,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중심으로 활동한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와 발터 벤야민의 맑스주의가 이룬 성취와 그 한계가 검토된다.

이 강의에서 평의회는 좀더 프롤레타리아의 삶에 밀착해 있으면서도 기본적으로 자신을 경제적 생산의 관리 영역에 한정하려는 조직화 경향으로 분석되며, 비판이론의 3대 연구주제인 국가, 테크놀로지, 문화는 193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새로운 포섭양식의 대두에 대한 예민한 분석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입각해 있는 지식인적 조건으로 인해 비관적 비판주의의 경향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진단된다.

1950년대에 대두한 국제상황주의도 비판이론의 연속으로서 다루어지는데, 예컨대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는 자본주의의 탈근대적 지배양식에 대한 비판을 ‘새로운 상황의 창조’라는 구성론적 입장과 연결시키려는 적극적인 시도로서 프랑크푸르트 비판이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예술적 정치적 노력의 하나로 평가된다.

상황주의자들을 통해 ‘세계와 자기를 포함하는 삶 그 자체의 변형’이라는 삶정치의 테마가 예술가 세계를 중심으로 복귀하는 모습을 읽어 볼 수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대안 확보

4강은 평의회 맑스주의나 비판이론들과는 달리 프랑스 공산당이라는 정통적 조직 내부에서 이루어진 맑스주의 혁신 시도들 중의 하나로 루이 알뛰세르를 다룬다.

그는 공산당을 일종의 현대적 절대정신으로 간주하는 로저 개로디식의 주체주의적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을 겨냥하면서 ‘이론적 실천’으로서의 철학이라는 개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철학은 ‘문제틀’(일반성 2)을 사용하여 이데올로기 세계(일반성 1)를 실천적으로 가공하여 새로운 일반성(일반성 3)을 생산하는 실천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반영’개념에 묶여온 철학을 일반성의 ‘생산’으로 설정함으로써 창조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낸다.

그러나 이론적 실천은 실재적 삶과 분리될 위험을 갖고 있었는데 후기 알뛰세르는 이것을 ‘철학은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라는 새로운 정식으로의 전화를 통해 극복해 나가려 했다. 대중운동이 철학자에게 미치는 교육효과에 대한 승인에서 시작된 이 자기비판적 전화는 1980년대에 우발성, 정세, 호기 등의 개념을 도입한 우발적 유물론의 구축시도로 발전된다.
이로써 맑스주의 내부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대안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뚜렷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알뛰세는 자신의 작업의 초기부터 후기까지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에서 떠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더욱더 확대시키는데, 이 개념을 존 듀이의 습관, 루카치의 사물화, 비판이론의 문화 및 스펙타클, 푸코의 에피스테메(그리고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프로이트와 라깡의 무의식) 등의 개념과 비교하고 현대 사회 이해에서 그 개념들이 갖는 설명력을 검토하는 것도 이 강의의 중요한 문제의식의 하나이다.


삶정치학으로의 발전

이제 5, 6, 7강은 알뛰세르에 의해 발전된 생산으로서의 철학, 이데올로기 비판, 구조에 대한 우발성의 우선성 등의 개념을 출발점으로 전통적 맑스주의와는 크게 다른 방식으로 삶정치학을 발전시킨 세 사람의 정치철학자인 푸코, 들뢰즈, 네그리를 다룬다.
이들이 맑스주의와 맺는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서로 다르다.

푸코는 한때 공산당 소속이었지만 공산당을 탈당한 후 맑스주의와 거리를 두는 입장을 취했고, 들뢰즈는 자신의 작업 속에서 맑스의 사유를 광범위하게 포괄하면서도 그것을 독특하게 변형시키며, 네그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맑스주의자로 자임하면서도 후기구조주의, 해방신학, 조절이론, 존재론적 전통의 고전철학 등을 광범위하게 흡수하는 방향에서 작업하고 있다.

이후의 강의들에서는 전기 푸코의 에피스테메론과 계보학적 지식=권력 이론, 후기 푸코의 섭생론과 자기의 테크놀로지 개념, 들뢰즈의 기계론과 기관 없는 신체론, 탈주론, 소수적 글쓰기와 소수적 정치에 대한 이론, 그리고 네그리의 계급구성론(다중)과 주권합성론(제국) 및 아우또노미아론 등이 삶정치학으로서의 맑스주의와 맺는 관계가 긴밀한 상호연관 속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맑스주의는 맑스라는 이름 혹은 이미 역사의 한 부분인 그의 글보다는 그에 의해 추구된 삶의 실제적이고 가상적인 변형이라는 그의 실천적 문제의식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 훨씬 폭넓고 심원하게 사고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탈근대’라는 (지금까지의 삶의 실천들을 통해) 이미 이루어진 삶의 변형을 맑스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인 것이 의미를 갖는다면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조 정 환
도서출판 갈무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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