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스무 살
                              박제천

그때,
빙하 속에서 만난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
눈보라치는 드럼통 술집에서 노래야 나오너라
안나오면 처들어간다
젓가락을 두들겨대다가 눈물이 북받치던
전라도 가시내의 목 쉬 노래 속에 눈나무가 되어
입을 다문 강원도 심산의 나무들
그 나무들마저 불 태우는
스무 살 심화를
내 가슴에 복사한다
그때, 그 노래 속에서 만난 스무 살의 하늘
손에는 전피장갑을 끼고 엉덩이에는 수통을 찬
스무 살의 나무들
거기 소처럼 길게 누워 하품을 하는 최전선의 산을 첨부하여
나는 오늘 너에게 보낸다.


군대 체험은 마치 불에 덴 자국처럼 누구에게나 시간이 갈수록 선연해진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땅의 남자로서 거듭 나는 이니시에이션의 과정이라고도 하지만 막상 당사자로서는 갖가지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군 체험이다.

지난 60년대 전방 산고지에서 군 생활을 겪은 이 시인은 지금도 스무 살적의 젊은 자신에게 이메일로 그 생활체험을 전송하고 있다. 그것도 화첩 속의 생생한 수채화처럼 보내준다. 이른바 재학생 문인이 십여명씩에 이르던 그 동악의 교정을 이 시인은 그렇게 잊지 못하고 있다.

벌써 가을이다. 우리 모두 내면으로 가는 사색의 긴 여행을 떠나도 좋은 계절이다.                                                      


홍 신 선
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