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칸나

해변의 칸나
                              장 호


너와 나 사이에
너도 아닌 나도 아닌 것이
있으면 좋겠다.
이승과 저승,
꿈과 현실의 고갯마루 같은…


  이 구절을 가만히, 나지막하게, 읊조려 보십시오. 표현상으로 보면 간명한 대비법이 두드러지지만, 그 뜻과 느낌과 여운은 참으로 깊고 오묘합니다.
자꾸 읊조린 끝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전율을 느낀다면, 그대는 필시 다른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삶의 소중함과 똑같이 죽음의 소중함을 아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분이십니다.

  시인은 아름다운 우리말 ‘고갯마루’를 너와 나 사이에, 삶과 죽음 사이에, 그리고 꿈과 현실 사이에 가져다 놓았는데요, 그게 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렇게 노래 부를 때의 가슴 짠하고 콧날 찡한 기억의 역사적 계보를 불러내는 것만 같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너도 아닌 나도 아닌 것’도 독특한 조화의 미덕을 짐작하게 해주는데, 어찌 보면 사랑하는 연인들을 위한 축복의 주례사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생사의 길을 달리한 이들의 간절하면서도 의연한 초혼(招魂)소리 같기도 합니다. 짧은 구절 안에 참 많은 이야기가 감추어져 있다는 말씀이지요.
  시인 장호(1929~1999)는 동국대학의 전신인 혜화전문 출신으로서 모교 교수를 역임했고, 특히 산을 사랑하여 그와 관련된 좋은 저작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윤 재 웅
사범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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