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예술가의 초상

■ 젊은 예술가의 초상
값진 삶의 길 제시 홀로 서는 힘 기르길

 

나는 멀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보다는 우리와 가까운 20세기 초기에서 값진 삶의 길을 알려주는 ‘고전’을 찾고자 한다.

제임스 조이스는 조국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지로 있던 시기에 괴로웠던 성장 과정을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승화시켜 예술화했다. 이 고전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 너무도 비슷한 정황에서 올곧은 삶을 홀로 일궈내려고 애쓰는 한 젊음을 가슴 뜨겁게 만나게 해준다.

서두 부분은 주인공 스티븐 데달로스가 유아기부터 예수회 기숙학교에 다니던 시기를 다룬다. 덩치 큰 학생이 작은 체구의 스티븐이 가진 담배 갑을 자기의 마로니에 열매와 바꾸자고 조르다 거절당하자 그를 변소 통에다 밀어 넣는다. 그 때문에 병이 나서 학교 양호실에 누워 있은 일, 부당하게 벌을 준 선생에게 항의하러 교장실을 찾아가는 일 등에서 그의 내향적인 성격, 예민한 감수성, 권위에의 반항정신이 잘 드러난다.

중학교에 다닐 때 가세가 점점 기울어 열 번 이상 이사를 다니면서 그는 삶의 아픔을 철없는 형제들 사이에서 첨예하게 느낀다. 스티븐은 ‘몬테크리스토 백작’같은 로맨틱한 문학작품에 열중하고 이상적인 여주인공을 사모하나, 남은 재산을 경매에 부치려고 고향으로 가는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아버지에 대한 쓰라린 환멸을 체험한다.

예수회 학교 교장이 공부 잘 하는 그에게 사제가 되길 은근히 종용하자 이 문제로 심한 갈등을 느끼던 중 자신의 성 데달로스가 곧 그리스 전설의 장인의 것이며 그의 이름 스티븐은 신앙을 고수하다 순교 당한 성자 스데반의 것임을 깨달으면서 친구들이 그의 이름을 가지고 놀릴 때 스티븐은 자신의 ‘장인적’ 운명을 자각하며 우월감을 느낀다. 스티븐은 예수회 대학에 다닐 때 미학에 대해 교수와 급우들과 논쟁을 벌이며 자신만의 예술관과 인생관을 형성해 나간다. 급우들이 그에게 세계 평화를 빙자한 선언서에 날인을 강요할 때도 그는 그들의 ‘허위성’에 반항하며 거부한다.


그의 이러한 자아 정체성의 형성은 친구들에게서 따돌림을 받고 홀로 선다는 고독감을 주지만 그는 수백 년에 걸쳐 아일랜드의 독립을 막은 것은 아일랜드 사람들 자신임을 역설한다. 그는 가족과 조국과 교회를 등지고 스스로 ‘유배’의 길을 떠난다. 그는 마지막 일기에서 “오라. 오 삶이여! 나는 백만 번이라도 경험의 실재와 대결하겠노라. 그리고 내 종족의 아직 창조되지 않은 양심을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벼리겠노라”고 비장하게 다짐한다. 그의 자발적 유배를 말리려는 친구에게 그는 “너는 나에게 국가, 언어, 종교를 강조하는데, 난 그러한 그물을 비껴 날아가겠다”고 냉담하게 대꾸한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여러 평자들이 지적하듯이 조이스의 예술은 가톨릭에 뿌리박고 있으며 그는 마음 속 깊이 아일랜드를 사랑하여 평생 조국에 대해서만 글을 썼던 것이다. 스티븐, 즉 조이스가 가족과 교회와 조국을 등진 것은 이들의 질식할 것 같은 그물에서 벗어나 아일랜드를 직시하는 ‘혜안’을 얻기 위함이었다. 모든 작품에서 아일랜드만을 주제로 삼은 조이스는 “내가 더블린의 핵심을 포착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대도시의 핵심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에 더블린에 관해서만 쓴다”고 특수성 속에 보편성이 내재함을 역설했다.


오늘날 홀로 서기를 무서워하고 현실과 쉽게 타협하고 패거리를 지어 큰 목소리를 내는 시대적 상황을 보면서 젊은이들이 이러한 고전 읽기를 통해 ‘스스로 홀로 설 힘’을 기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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