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유사

■ 삼국유사

우리의 역사이자 문학작품 상상과 창의력 계발에 도움

 

삼국유사는 필독목록에 단골로 오르는 터여서 독서체험이 제법이다 싶은 학생들은 좀 더 색다른 책을 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필독서의 첫 자리에 놓길 고집한다. 들여다 볼 수록 알 수 없고 읽을수록 새로움이 여기저기서 머리를 쳐드는 책으로서 다의성, 다성성을 이처럼 풍족히 구비한 책은 찾기 어렵다는 게 추천의 가장 큰 이유이다.

김부식이 선례를 보였듯 유교적 합리주의에 기초한 역사쓰기는 실증적 자료가 아니면 아무리 거대한 ‘과거’라 해도 폐기처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고조선과 단군, 그리고 가야국의 역사 등이 그저 증거자료가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혹은 풍설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제외된 것은 단적인 사례이다. 한데 이를 수수방관할 수 없다며 제 홀로 뛰어들어 수몰 직전의 ‘역사’를 건져낸 이가 일연이다. 단군, 고조선, 기자 등의 기록이 많은 부분 상상으로 가공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증자료가 없고 유사 전에 그런 기록이 없다고 하여 기록된 것만을 사료로 취급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량한 소견이 아닐 수 없다.

일연은 문헌과 구전, 답사 이 모든 것을 동원하여 역사 찾기에 골몰했는데 특히 문헌중심의 역사 쓰기를 고집하지 않고  구비역사도 문헌 못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보아 민중간의 전승담마저 적극 사서에 편입시켰다. 이같은 특성은 서두의 목차 두 번째에 기이편을 설정한 것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괴력난신적인 이야기라면 일부러 외면한 삼국사기의 기술 태도를 냉소하듯 그는 신이사관을 앞세워 이적과 영이함 중심으로 이야기를 수습함으로써 유교적 합리주의나 현실적 안목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물론 유교적 사서의식을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중국역사들이 상고시대를 신화로 화려하게 덧칠해 놓은 것을 보고 우리에게도 그 같은 신화 역사가 있음을 강변함으로써 생각을 달리하는 이들에 역공을 가했다. 결국 신이사관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삼국유사는 신화, 전설, 민담 등 설화와 관념적 역사의 경계가 흐려지고 마침내 역사이면서 동시에 문학이라는 복합적 글쓰기의 범례로 탄생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사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일연의 역량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유사에 유난히 서사성이  강하다는 말은 한편으로 그 소재 이야기가 전승담의 온전한 채록은 아닐 것이라는 유추를 낳게 하는데 원형 설화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야기를 매만져 한층 감칠맛 나는 담론으로 변주한 일연의 문재를 놓치지 말 일이다. 전체적으로 유사소재 각 편들은 기저에 불교사상을 짙게 깔고 있으나 생경한 경전적 주입에 머물지 않고 사부대중 누구나가 알아들을 수 있게끔 고민한 끝에 나온 이야기라고 해도 좋다. 일연은 민중에게는 가이없는 측은함을 보이는 대신 권세자의 오만함에 대해서는 비판과 함께 냉소를 보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불교적 종지와 철리의 제시와 함께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천진하고 익살스러운 미소를 머금게 하는 특징은 노경의 일연이 도달한 달관과 초탈의 경지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삼국유사는 상상과 환상의 세계를 유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이는 젊은 세대에게 거듭 필독을 권하는 큰 이유이다. 일연은 일상적 시공간을 갑갑해하는 듯 시간과 공간의 광범한 일탈을 빈번히 감행하여 생을 말하되 현생보다는 전생과 후생에 더 관심을 보이는 편이며 걸핏하면 천상, 용궁, 지하 세계 등을 서사적 공간으로 택하고 이에 불보살, 신중, 나찰, 나한, 승려, 범부 등 신격과 인간을 버무려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경전 속의 불교적 시공간을 역사적 사실과 섞어 이처럼 풍성한 상상적 담론으로 엮어낸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다. 상상과 창의력의 계발이란 기치를 높게 내걸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왜 삼국유사를 필독할 정전으로 꼽아야 하는지 까닭은 더욱 자명해진다.

시대와 문화를 증언하는 역사를 넘어 선적 기운마저 감도는 삼국유사, 불교 역사 문학의 인식적 지평을 한데 넓혀주는 데 이만한 책도 없다는 생각을 갖고 그 해독의 즐거움에 편승해보는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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