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보드래(교양교육원)교수

권보드래 교수
어느덧 1학기 종강호다. 마지막이라 궁리가 앞섰다. 한국에서 나온 책을 하나도 소개하지 않았으니 장준하의 ‘돌베개’나 리영희의 ‘역정’에 대해 써 볼까 싶기도 하고, 힘든 세상 견디는 데 친구만한 버팀목이 있으랴 싶어 죽림칠현이나 에피쿠로스학파나 혹은 백탑파의 일화를 소개해 보고 싶기도 했다.

젊음은 빛나기 마련이라지만 빛 속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다. 자칫 실명(失明)할 것 같은 빛의 강도를 견딜 때, 앞선 세대의 젊음에 대한 기록이 힘이 될 것도 같았다. 그 시절이 결국 힘이 된다고, 그때 만난 인연이 평생을 버텨준다고 넌지시 말 건네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책장을 훑어내리다 시선이 삐끗하고 말았다. ‘자살의 연구’. 알프레드 알바레즈 지음, 최승자 옮김, 초판 1982년 간행.

내가 갖고 있는 책은 1995년에 나온 제 13쇄이다. 세 번째 산 책으로 기억한다. 처음 샀던 책은 고등학교 적 후배가, 두 번째 산 책은 대학 동기가 빌려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돌려달라고 재우쳐 본 적도 없다. 곳곳에 벌겋게 그어놓은 밑줄이 민망했지만, 그 사람들도 여기저기 밑줄을 덧칠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자살의 연구

지은이 : 제레미 리프킨
              이창희 역
펴낸곳 : 세종 연구원

그래도 세 번이나 같은 책을 사다니. 거슬리는 대목이 많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자살의 연구’는 매끈한 책은 아니다.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자살을 다룬 서장과 저자 자신의 자살 미수 경험을 쓴 종장은 다소 거칠고 수다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대체로 자기 삶은 자기에게만 특별한 법 아닌가. 누군가의 죽음을, 혹은 죽음의 시도를 경청케 만든다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경험상, 실제로 ‘시련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자살의 역사와 그 심리적 동기와 특별히 문학과의 연관을 다룬 각 장의 배치는 자못 학술적으로 보이지만, 이 책의 값은 그 배치를 뚫고 튀어나오는 선연한 사례에 있다. 그리스 철학자 제논은 손가락 삔 데가 거추장스럽다며 목매달아 죽는다. 그 제자는 병 치료 때문에 며칠 절식하다 내친 김에 음식을 끊고 죽음에까지 이른다.

어떤 이는 완벽한 정장 차림으로 절벽에 기대 수면제를 삼키고, 어떤 이는 장봐 온 품목을 가지런히 쌓아둔 채 그 비닐봉지 속에 머리를 집어넣으며, 누구는 창문을 열고 구경꾼을 불러모은 후 방아쇠를 당기고, 누군가는 “내가 실패한다면 부활의 축배를!”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한다. 17세 소녀에서 98세의 노철학자 제논에 이르기까지, ‘자살의 연구’는 숱한 자살의 사례를 전해주고 있다.

묘하게, 책 군데군데를 넘기며 이런 사례를 넘치도록 접하다 보면 머릿속이 냉정해지곤 했다. 웅웅거리던 잡음이 언어화되는 느낌이랄까. 자살에 대한 지은이의 독특한 취향 탓일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냉정성과 난폭성이 거의 예술적인 긴장을 이루고 있는 자살을 편애하고, 혹은 자살에서 그런 면모를 즐겨 묘사해 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자살자들은 삶의 마지막 장부까지 꼼꼼하고도 냉정하게 정리한 후 돌연 몸을 날리는 사람들이다.

그런 최후라면, 삶을 마지막까지 살아내야만 청구할 권리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다 보면 찾아들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나를 파괴하고 싶은’ 순간은 있다. 정신 차리고 보면 ‘산다는 이 일’은 새삼 맹목적이고 부조리하지 않은가. 끈질긴 자기애와 독한 자기혐오와 천근만근 자포자기 속에서, 그러나 맹목과 부조리에 대한 통증이야말로 그대가 젊다는 증거다. 오늘, 한껏 젊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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