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사회와 대학 ④ 미래의 우리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불과 5-6년 후에 한국의 모든 대학이 ‘공급과잉’의 문제를 안게 될 것이라는 것이 교육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그렇다면 그 대비책은 현재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급에서 소비로 경제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교육 수요자들을 중심으로 구상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는 더 이상 대학이 다수의 지원자 중 정원을 선발하는 호사를 누릴 수 없는 엄연한 현실에서 촉발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존립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원자들을 찾아나서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혼돈과 위기의 미래사회

위기는 인구구성의 변화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정치, 사회, 문화 모든 영역의 위기를 연쇄적으로 촉발시키고 있다. 이는 과학 발전이 인간의 인식범위를 넘어서 존재 그 자체로까지 침투하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이미 야기한 배경에 더해진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시대적 상황이 새로운 인식론적 패러다임을 필요로 하는, 바로 그런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구체제의 효능이 제 수명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질서가 아직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혼돈과 위기가 이 시대의 화두가 아닐 수 없다. 동국대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새로운 시스템의 정착은 여전히 갈등중이다. 계획과 실천 사이에서 새로운 제도의 일부가 정착된 반면, 대부분의 구습은 아직도 관행의 형태로 구조화되어있다.

동국대학교의 미래를 설계하는 첫걸음은, 그렇다면 모든 구성원이 현재의 상황을 거시적 위기로 판단하는 인식의 공유를 통해 당장 다가올 변화에 대처하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이 담보되는 보다 정교한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교육 수요자가 원하는 대학

동국대학교의 미래전략은 더 이상 대학 내부의 일부 조정으로만 완성될 수 없다.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던 상황에서 지원자가 대학을 선택하는 환경으로 전환되는 것이 가까운 장래의 현실이라면, 이는 모든 비전과 전략이 잠정적인 교육 수요자들로 하여금 동국대를 매력적인 배움의 장소로 여기도록 만드는 일에 집중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대학과 교수의 주도로 교육이 운영됐다면, 미래에는 학생의 필요와 요구에 직접적으로 부합하는 교육제도의 혁명적인 변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학교가 군림하는 시대가 끝난 것이다.  

동국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한마디로 학생이 중심이 되는 대학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거버넌스 구조에서부터 학사운영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구조변화가 필요한 일이지만, 동시에 기존에 동국대가 가지고 있는 소프트파워를 더욱 계승, 발전시키는 작업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옛것과 새것을 조화시키는 일은 오늘날 학문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융합과 통섭의 개념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동국대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교육 수요자들에게 제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미래전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동국대는 불교, 인문학, 경찰행정학, 그리고 영상과 공연의 영역에서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각각의 분야는 오랫동안 동국대를 상징하는 전공으로 인식됐고, 그 명성에 걸맞는 성과도 거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전공들이 동국대 전체를 대표하기에는 너무나 한정된 분야에 치우쳐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와 융합하고 통섭하는 방식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로 남아있다. 예컨대 불교와 인문학이 예술에 영감을 주고, 사회과학에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 주는 통합학문으로 제시되지 않고서는 경쟁은커녕 전공으로 남아있기조차 어려운 위기를 맞을 수 있는 것이다. 

학문구조는 융합으로

동국대학교가 경쟁력이 있는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한정된 전공을 중심으로 미래전략을 세울 것이 아니라, 좀 더 획기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우선 대학과 대학원 교육을 차별화 하는 이중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위권에서 상위권으로 도약하려는 동국대의 노력과 부합하는 계획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대학이 교양과 기초교육에만 전념하고, 대학원을 전공분야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본격적인 전문교육기관으로 육성하는 것으로, 다가올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학의 사명이 본디 전인교육을 실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융합과 통섭의 요구가 거세진 환경에서 현재와 같은 세분화된 전공교육을 대학단위에서 계속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각 대학 단위에서 굳이 학과로 전공을 구분할 것이 아니라, 학부 내부의 울타리를 허물어 학생 스스로가 교육의 내용과 방향을 결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최소한의 전공교육이 지속될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인문, 사회, 자연, 예술 분야의 모든 전공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도록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학부제의 폐단을 이미 경험한 상황에서 대학의 전공교육을 대폭 축소하고, 대신 교양교육의 장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큰 틀에서 교육이 이뤄진다면 이제 교수는 학생들이 주목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개발해야 할 것이고, 그런 만큼 교육의 내용과 방식에서 다양한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강의에 관심과 재능이 있는 교수와 연구에 집중하기를 원하는 교수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며, 각자가 가진 장점을 계발하는 방식으로 교수진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따른 교수의 평가와 승진의 기준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부 교육이 전공보다는 교양교육을 강화하는 대신 대학원 교육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공교육을 심화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동국대 대학원은 이제 세계 최고의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전략적인 분야를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교육기관으로 재편성 되어야 한다.

이는 대학원이 동국대 전체의 명성과 재정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연구 성과를 산출해 낼 수 있는 분야로 재구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력이 있는 기존의 인문, 예술분야 뿐만 아니라, 이공계에서 미래가치가 담보된 분야를 전략적으로 특화, 육성시킬 필요가 있다.

엄격한 학사운영 도입 필요

그렇다면 이를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액션 플랜은 무엇인가? 해답은 미시와 거시전략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거시적 전략이 구조변화에 대한 계획을 추진하고, 이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며, 그 계획을 가장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새로운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인데 반해, 미시적 전략은 학사와 관련된 모든 혁신안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거시적 전략이 구조를 변화시키는 어려운 작업인데 비해서, 미시적 전략은 구성원의 열정과 의지로 충분히 실현 가능한 영역이다.

따라서 우선 당장 실천 가능한 것부터 시작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는 엄격한 학사관리를 실행하는 것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일에서 출발한다. 동국대는 이제 공부하는 대학으로 재탄생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학생들에게 더 많은 과제를 부과하고, 더 많은 책을 읽도록 만들 것이며, 더 많은 교양을 쌓도록 교육의 방향이 변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심화된 교양교육을 제공하는 것에 덧붙여 동국대는 전공에 관계없이 누구라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평균 이상의 실용지식, 예컨대 영어, 컴퓨터, 회계 등과 같은 기본소양을 갖춰야 졸업이 가능한 대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재정자립 확충되야

어렵게만 생각되는 거시적인 재정의 문제도 운용하기에 따라서는 자급자족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동국대처럼 외부 자금의 유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내부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이는, 예컨대 경쟁력 있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강의를 전담하는 교수진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만약 성과에 따라 충분한 보상을 보장한다면 현재 대학(원) 등록금 수입을 상회하는 결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창의적인 학습 프로그램의 개발은 적극적인 교수의 참여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자발적인 참여의 동기를 부여하는 최상의 방법은 노력과 성과에 비례한 보상일 것이다.

재정자립의 또 다른 방안으로 국가 신성장산업발전계획에 기여할 수 있는 전략적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급의 세계적인 석학을 초빙해 대학원 프로그램을 활성화 시키는 방법이 있다. 이는 교수초빙에 투자한 액수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주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교육의 질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과 재정자립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다. 이와 유사한 접근방식은 동국대에서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여타의 전공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충실한 교육과 재정자립을 동시에 성취하는 문제가 반드시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것이다.

대학, 구성원 노력 전제돼야

대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조(거시)와 구성원(미시)의 변화가 동시에 전제됐을 때 가능한 일이다. 어느 하나의 변수만으로 성공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두 변수가 매우 복잡하게 함수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얽혀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은, 가능한 변수를 먼저 작동시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동국대학교가 안고 있는 이른바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도 결국 대학 구성원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유동적인 개념인 것이다. 

 

조종흡 영화영상학과 교수 미래비전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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