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수 교수(교양교육원) 서평칼럼

이관수 교수(교양교육원)
거대한 눈금과 주사위

<총,균,쇠>는 아주 유명하다. 저자인 다이아몬드는 기자들을 위해 한 문장 요약을 내놓았는데, 그것은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되는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 때문이다.” 반가워한 사람이 많았다.

그는 문명의 발달이 유전적 차이 때문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오히려, 그의 뉴기니 친구들처럼 ‘원시’ 부족 사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문명사회의 성인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똑똑한 편이라고 하는데, 이는 폭력과 살해가 만연한 환경에서는 교활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손을 남기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역설적으로 문명인들이 ‘못난’ 셈이다.

다이아몬드가 말하는 환경은 기후와 식생이다. 신석기 말기 이래 다양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시도들을 통해 결과적으로 농경과 목축이 여러 곳에서 발생하였다. 한 발생지에서 시작된 농경과 목축은 기후가 유사한 주변 지역으로 전파되기 쉽고, 따라서 남북으로 뻗은 대륙들보다는 동서로 뻗은 대륙(유라시아)에서 더 다양한 작물과 가축이 더 널리 퍼졌다.

많은 식량은 많은 인구 나아가 고도화된 분업과 발달한 사회조직(상비군을 비롯한 “총”을 포함하는)을 낳는다. 또한 가축의 종류가 다양할수록 더 많은 전염병을 겪어 더 다채로운 병균과 면역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스페인인들이 아메리카를 침략했을 때 벌어졌던 일처럼 총보다 균이 토착사회에 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은 사례들이 여럿 발생하였다.

“쇠” 즉 기술의 발달도 비슷하다. 그는 기술이 잊히거나 퇴보하는 경우가 의외로 흔하고, 아울러 특정 기술 자체의 전파는 물론 어떤 기술이 있다는 정보가 유사 기술의 재발명을 낳은 경우도 흔하다고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형적 영향으로 정치적, 문화적인 다양성이 상대적으로 풍부하였던 유럽지역에서 최근 몇 백년간 기술이 더 발달했다고 풀이한다.

이렇게 요약하면 <총,균,쇠>은 윌리엄 맥닐이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강조한 인간-병균 복합체의 역할에 환경결정론을 섞은 것으로 보인다. 맥닐도 그런 취지로 불평한 적이 있다. 어찌되었던 조류독감과 돼지독감의 시대에 병균의 중요성은 쉽게 공감된다.

다이아몬드가 환경결정론자일 수 없는 것은 밑바탕에 깔릴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란 자잘한 시도를 벌이기 마련이고, 그런 시도들이 일어난 환경도 이리저리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시도의 성공과 실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그런 시도가 얼마나 많이 집중되느냐를 중시한다.

빈 깡통에 콩알 몇 개를 넣고 좌우로 흔들어 보자. 언제 콩알이 먼저 깡통에서 튀어나올까? 깡통을 더 세게 흔들수록, 또 우연히 깡통의 높이가 더 낮을수록 콩알이 빨리 튀어나온다. 한 콩알이 먼저 튀어나왔다고 그 콩알이 특별한 자질을 지닌 것도 아니고, 깡통의 높낮이(환경차이)가 콩알이 튀어 나오게 하는 원동력인 것도 아니다.

따라서 다이아몬드의 설명은 한 나라나 민족의 운명 따위의 자잘한 역사의 인과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최소한 몇 천 년에 걸쳐 대륙과 대륙을 비교하는 규모에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래서 그가 거론한 개별 사례들에 대한 비판과 찬양은 무력할 뿐이다. 이 때문에 한국어판에 덧붙여진 일본인의 한국기원론 논문은 사족의 발톱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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