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이사진 친정부 인사들로 줄줄이 교체 … 언론장악 시도 가시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언론계는 큰 혼란에 빠져 있다. 정부의 언론산업화 정책,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미디어 관련법안들이 갈등을 발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방송을 신산업성장동력으로 규정하면서 언론을 산업론적 관점에서 재편하려 하고 있다.

KBS 정연주 사장 해임을 반대하는 언론노조 시위모습
정권 출범 초기 측근들의 표현을 빌면 우선 세계적 추세에 맞춰 진입 규제 완화, 신문·방송 겸업 허용, 공정경쟁 보장 등 시장 원리에 입각해 규제를 최소화하고 자유화 정책 패러다임을 적용해 경쟁지향적인 방송시장 체제로 전환시킴으로써 콘텐츠 산업과 기기산업 등 유관 산업 분야에서도 획기적인 시장 변화를 유도하고, 다음으로 KBS, MBC, EBS 등 공영방송의 기능, 위상, 소유구조 등을 전면 재검토하여 국가가 육성해야 할 기간방송과 민영화해야 할 방송으로 구분하는 작업을 통해 방송구역을 획정하겠다는 것이다.

전자는 최근 언론 악법이라 불리는 미디어 관련법안들을 통해 추진하고 있고, 후자는 아직 제출하지는 않았지만 가칭 공영방송법을 제정해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특보출신, 언론계 장악

언론도 기업인 이상 양적으로 성장하고 발전시킨다는 결론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산업이기 이전에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주요한 장치이다. 즉 여론을 수렴하고, 전달하는 언론으로서 기능이 있는 것이다.

한국 방송산업의 현실을 고려할 때 산업론적 정책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있지만, 설사 산업성장에 기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여론독과점 심화, 재벌(경제권력)의 여론매체 장악 등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면 국민적 동의를 받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현 정부는 초기부터 불법, 편법을 통한 언론계 인적 장악이라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것이 ‘언론정책’의 시작이었다.

먼저 후보시절 상임고문이자 측근 중의 측근인 최시중 씨를 독립성이 생명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앉히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리고 그 최시중 씨가 KBS 이사장 사퇴를 유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공권력까지 동원해 이사들을 압박하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중 KBS 이사인 신태섭 교수는 KBS 이사를 사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해임되었다. 비록 신교수는 1심에서 승소했지만, 그 사이 감사원의 ‘해임요구권’, 이사회의 ‘해임제청권’, 대통령의 ‘해임권’ 등 불법적인 권한을 행사해서 정연주 사장을 쫓아냈다. 대통령이 함부로 KBS 사장을 해임할 수 없도록, 2000년 (통합)방송법에서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임면권을 임명권으로 바꾼 입법 취지를 어긴 것이다.

KBS 만의 문제는 아니다. YTN, 스카이라이프, 아리랑 TV 등 방송사는 물론 지상파 방송사의 재원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자리에 특보 출신들을 줄줄이 앉혔다. 심지어 최근에는 사영방송인 경인TV(OBS)까지 진출시켰다. 혹자의 ‘특보사장단’이라는 표현이 절묘하다.

방송사 장악 특히 YTN의 특보 사장과 KBS 사장 교체가 왜 중요할까? 정부에 우호적인 신문사, 재벌들에게 유리하게 언론 구조 개편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언론 구조 개편은 법 제도 변화를 필요로 하는 중대 사안이다. 궁극적으로는 국회 다수결의 문제지만 국민 여론을 피해갈 수는 없다. 따라서 국민 여론을 호의적으로 유도할 언론 환경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12월 3일 한나라당을 통해 미디어관련법안들을 제출하였다. 사실 한나라당으로서는 9월 정기 국회 초반에 제출하여 빠른 시간 안에 통과시키고, 2008년이 넘어 가기 전에 언론계를 재편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촛불이 켜지고, KBS와 YTN의 저항이 거셌기 때문에, 시도 자체가 늦어진 것이다.

하지만 2008년을 넘기면 언론계 재편이 늦어지고, 2009년 초반 재보선, 2010년 지자체 선거 등에서 재편된 언론의 이점을 활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는지, 제대로 된 토의도 없이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인 12월 말 이전에 법을 통과시키려 했다. 그리고 언론계는 물론 범사회적 저항에 부딪혀 매우 제한적이지만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산하에 ‘미디어 발전 국민위원회’를 설치하여 100일 간의 사회적 논의를 하기로 하였다.

성급한 추진으로 저항 거세

왜 이렇게 강한 저항에 부딪혔을까? 12월 3일 드러난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은 애초 예상을 뛰어 넘는 악법이었다. 우선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신문법)’과 방송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신문의 방송보도 영역 진출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상파의 경우 20%, 종합편성채널 30%, 보도전문채널 49% 지분 소유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사실 세칭 신방겸영 금지라 말하지만 지금도 신문의 방송영역 진출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문이 방송영역에 진출할 수 없는 부분은 방송 보도일 뿐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OECD 국가 중 신문의 방송영역 진출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고 호도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신문의 여타 방송 영역 진출은 법적으로 이미 전면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중앙방송을 통해 Q채널, J Golf, 히스토리, 카툰 네트워크를 송신하면서 연간 200억 원이 넘는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 조선일보는 자회사 디지털 조선일보를 통해 ‘Business &’을 운영하면서 자체 제작을 30% 이상 하고 있으며, 다른 신문들도 케이블 방송에 진출해있다.

단지 방송보도영역 진출을 금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소수 매체에 의한 여론 지배력의 과도한 집중을 막으려는 사회적 선택이다. 민주주의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이미 여론다양성에 주목하여 신문방송겸영금지를 합헌이라 판결하였다.

세계 추세 뒤처지는 언론법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신문방송 겸영 허용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 또한 오도이다. 가장 시장주의적이라는 미국도 동일 여론시장 지역에서 신문과 보도를 할 수 있는 방송의 겸영은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를 대변하는 FCC가 2003년과 2007년 두 번에 걸쳐서 20개 대도시 지역에서라도 신방 겸영을 허용하려 시도했지만 두 번 다 실패했다. 2003년 제안은 법원이 막았고,  2007년 안은 국회가 승인하지 않았다.

영국은 전국지의 경우 20%, 지방지는 30%의 점유율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신문의 방송 진출을 허용했다. 20% 기준을 설정한 것은 무엇에 근거한 것일까? 당시 신문시장에서 2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머독의 뉴스 인터내셔널과, <데일리 미러>, <가디언> 등을 소유하고 있는 트리니티 미러 그룹의 방송 진출을 막기 위한 기준이었다. 그래서 ‘머독’ 조항이라는 별칭을 얻은 것이다. 특정 기업의 진입 금지를 겨냥해 법을 만들면 우리의 경우 민주주의를 수호했다고 평가 받을까, 아니면 특정 언론 탄압했다고 공격 받을까? 민주주의 성숙도 차이이다.

짐 보멜라 국제기자연맹(IFJ) 회장은 신문·방송·통신의 결합으로 유럽 언론이 소수의 자본가에게 집중되면서 여론 독과점이 심화되고 있다며 언론이 이윤 수단으로 전락하는 등 비판기능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여론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장치를 만들고 정교하게 다듬으려는 것, 그리고 규제 장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우려가 증대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면 추세일 것이다.

재벌이 언론장악할 발판 제공

한나라당은 더 나아가 이번 기회에 모든 대기업의 방송보도 영역 진출을 허용하겠단다. 방송보도 영역에서 신문과 마찬가지의 지분 소유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신문의 방송보도 진출도 심각한 문제지만 대기업의 진출은 더욱 심각하다. 현대 사회에서 자본은 특별한 사회적 감시를 받아야 할 중심 권력이다.

우리사회는 이미 재벌들의 언론장악에 따른 피해를 수없이 경험해왔다. 삼성 소유의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이 보여줬던 삼성 사카린 밀수 옹호, 안기부 X-파일에 대한 중앙일보의 보도, 김용철 변호사 삼성 비자금 폭로 관련 보도 등등 삼성과 관련한 사안만 놓고 보아도 재벌의 언론 장악이 어떤 재앙을 초래할지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삼성만 그런 것은 아니다.

두산 페놀 유출 사건, 한화 회장의 폭행 사건에서 재벌의 일반적 속성임을 알 수 있다.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미국 굴지의 기업 GE가 소유하고 있는 언론들은 GE에 대한 비판 기사를 한 번도 실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실 자본권력이 언론을 장악하면 단기적으로는 한나라당한테 유리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치권이 자본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즉 민주주의의 붕괴가 우려되는 것이다.

모순 가득한 미디어 관련법

이외에도 사이버 모욕죄, 외국자본 유입 허용과 같이 곳곳에 독소조항들을 갖고 있는 미디어관련법안의 통과를 동의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잘 버티던 민주당이 결국 100일이라는 제한된 기간에 자문기구에 불과한 문방위 산하 사회적 논의기구에 합의해 주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100일 간의 휴전에 불과하고, 교육감 또는 재보선 선거 기간의 역풍을 피하려는 전술에 넘어간 것이다. 지금이라도 기간에 제한 없이 국민대표성과 전문성을 담보한 합의기구로 재합의를 하려는 노력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합리적 선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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