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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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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뒤집는 책읽기 <3> 풀 하우스이관수 교수(교양교육원) 서평칼럼

   
  이관수 교수  
좋은 책은 때로는 양파와 같아서 껍질을 벗겨낼 때마다 싱싱한 속살이 또다시 드러난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도 그런 책이다.

일단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어나가는 솜씨 덕분에 별 생각 없이 죽 읽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가 더 인기 있지만, 굴드의 글은 도킨스처럼 날선 문장을 휘두르지 않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고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은근히 교과서가 가르쳐준 바를 뒤집어 버리는 맛이란! 생물책에 자주 등장했던 그림, 즉 작았던 말의 조상이 점점 더 큰 말로 “진화”하는 그림이 한마디로 뻥임을 부드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폭로하는 대목은 속을 푸근하게 풀어주는 해장국 같다.

게다가 굴드는 ‘미국 프로야구에서 더 이상 4할 타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 따위의, 야구광들밖에 신경 쓰지 않을 사소한 의문들을 ‘진화의 방향’처럼 묵중하고 심각한 의문들과 하나로 묶어 한 번에 해결해버린다.

   
 

풀하우스

지은이 : 스티븐 제이 굴드, 이명희 역

펴낸 곳: 사이언스북스

 
 
그것도 온갖 기교를 쏟아 붇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착상을 알기 쉽게 굴려가면서. 그렇게 풀어낸 굴드의 답변을 응용해 사람들은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는 프로선수들의 수준이 극한에 가깝게 올라갔기 때문이고, 진화란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라고 요약한다.

그런데, 다양성은 좋은 것이니 다양성의 증가도 진보가 아닌가? 이렇게 반문하면 논의는 진짜 양파처럼 매운 맛이 독해진다. 굴드가 부인하는 ‘진보’는 어떤 능동적 원인이 작용해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남쪽 창문 밖으로 콩알을 떨어뜨려보라. 콩알을 자꾸 떨어뜨리다 보면, 어쩌다 창문에서 멀리 굴러간 콩알들이 나온다.

이 모습을 두고 콩알들이 남쪽으로 ‘진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우연히 제일 멀리 굴러간 콩알이, 콩알이란 본시 남쪽으로 진보하는 존재이니 자기가 콩알의 대표라고 우쭐대는 것이나 우리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스대는 일이나 그것은 별 차이가 없다.

콩알들의 무게중심은 언제나 창문 바로 밑에 있듯이, 생물세계의 중심은 언제나 단세포생물이고, 몇 십 억년에 걸쳐 생물계의 다양성이 증가한 일은 콩알 개수가 늘다보니 생긴 일 일뿐이다. 

우리 인류는 집단 전체의 분포형태를 보지 않고, 눈에 띄는 극단적인 값들에 주목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자주 착각을 한다. 전체 분포 자체보다는 일정한 방식으로 만들어낸 지표 값이 편하고, 때로는 아주 유용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표 중독은 엉뚱한 착각만 낳을 뿐이다.

가장 널리 통용되는 지표는 평균값, 중앙값, 최빈값 등인데, 굴드의 말마따나 이런 지표는 무의미할 때가 자주 있다. 굴드는 잔여 생존기간의 중간 값이 8개월에 불과한 병에 걸렸을 때, 생존기간의 전체 분포곡선을 보고 희망을 발견했다. ‘괴짜 경제학’의 레빗도 각종 지표만으로 한 사람의 장래를 예측하는 일을 비웃지 않았던가.

좁게는 지표와 분포를, 넓게는 이미지와 실체를 헷갈리는 일은 단세포 생물들처럼 널리 퍼진 일이다. 그러니 삽질로 경제를 살리려 든다고 절망하지는 말자. 어쨌든 단세포 수준은 되니 말이다. 사람이 어찌 생겨났던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답게 사는 것. 조건반사적으로 통념을 따르는 비참함을 벗어나려는 사람에게 ‘풀하우스’는 좋은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관수 교수  dgupress@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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