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과거 향수가 있는 만큼, 음악이 간직한 서정은 생각보다 시각 이미지에 가깝다. 확실히 노래는 다시 듣기보단 그것을 듣던 어느 순간을 회상하게 해주는 강한 힘이 있다. 스쳐 지나가는 몽상과 그 많은 이미지 그리고 열악한 스케치들은 음악에 쉽게 묻어나고, 달라붙는 당시의 ‘서정’은 이제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감정과 미래에 대한 염원이 과거 서정적인 ‘나’로 투영되는 것이 회상이라면, 나는 노래를 통해 그곳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쌓여 온 음악 플레이리스트는 어쩌면 또 다른 나의 일기장이라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이태건 기자

지난 한 해를 명명하고 정리하는 어느 새해 다짐처럼 작년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그것은 분명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스무 살 청년의 문학에 대한 욕심과 환상이 가득 찬 일기장이었다. ‘문학의 일상화’와 ‘생활의 심미화’를 보다 더 갈구하는 삶, 그것이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받아들이고 쓰이는 것이 곧 ‘예술가적 자의식’이라 믿는 환상. 김광석, 김현식, 유재하, 그리고 재즈와 비틀즈 풍의 팝송들… 확고한 취향만큼이나 어쩐지 새겨진 기억의 서정들까지 다 비슷비슷하게 쓸쓸했다. 그러다 수습기자 때 쓴 ‘일기장’을 찾았다. 그것은 ‘클래식’이었다. 클래식을 처음 접한 시기와 수습기자 시절이 겹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때에 대한 향수가 클래식 음악에 묻었나 보다. 나는 클래식을 통해 당시로 돌아간다.


   처음 문화 칼럼을 맡고 피드백을 받는 모습, 전화선으로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교수님께 인터뷰를 요청하는 모습, 그리고 우리대학 야구부 출신의 장웅정 선수와 대면 인터뷰를 하던 모습까지. 그것들은 분명히 내게 문학을 가져다준 예술가적 자의식만큼이나 소중한 또 하나의 자의식처럼 다가왔다. 기자라는 자의식, 이제는 참담한 일에 몸을 내던졌던 문학에서처럼 나는 더욱 쓰라리고 가슴 아픈 사회에 몸을 던지는 기자가 돼야 겠다. 정기자가 된다는 것. 나는 처음 수습 시절 때 듣던 ‘일기장’으로 글을 쓴다. 기자라는 자의식과 그에 마땅한 환상을 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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