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영 기자

요즈음 우리 세대의 표현방식은 날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자유로워졌다고들 누구는 말한다. 실제로 내가 피부로 느끼는 오늘날 우리 젊은 세대의 문화적 분위기는 적극적으로, 가능한 한 큰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하나의 미덕으로 비친다. 사실 나처럼 어떤 일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판단을 유보하고, 심지어 직접 경험한 일에 대해서 마저 매번 해석을 수정해 가는 성격에 있어서는 모든 일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자주 부담스럽다. 기자를 꿈꾼다고 했지만, 누군가가 어떤 사안에 대해 나의 명확한 의견을 물을 때면 항상 만족스러운 대답을 내놓지 못할 것 같았다. 만약 책임질 게 없다면, 혹은 익명으로 말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여전히 침묵과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전혀 쿨하지 못한 사회에서 나는 많은 순간 자신이 없었다. 어떠한 스탠스를 가지고 살아가고자 하는 건지, 혹은 내가 대학의 성실한 구성원으로서 떳떳할 수 있는지 말이다. 스스로 사회 이슈에 대해 관심이 많고 궁금증 역시 크다고 믿었지만, 과연 나의 그러한 관심이 진실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소비적으로 낭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마저 헷갈려 비참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정말 중요한 일들은 내 인생의 울타리 밖에서 벌어지고 있다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주의 깊게 보지 못해 놓쳤던 소중한 일들의 크고 작은 단서들을 조 금 더 피부로 느껴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에게 먼저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으려면 질문의 방향을 내 안으로 보다는 바깥세상으로 돌려야 할 것 같았다. 두껍고 높은 벽에 적극적으로 몸을 던져봄으로서 답을 얻어내고 싶었다. 


 어쩌면 나에게 세상은 여전히 수수께끼와 같다. 그리고 난 올바른 질문 던지기와 내면에서 스스로 소비해 버리는 관심 사이에서 오랜 시간 헤매왔다. 수습 기간을 지나 정기자가 되는 순간을 앞두고, 한 발짝 더 기자라는 꿈에 가까워지기 위한 고민이 깊었다. 앞으로는 더 많이 벽에 부딪혀 보고, 때로 아파하면서도 그럼으로써 단단해지고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우유부단함이 진중함과 책임감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언젠가 더 이상은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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