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문학 분야에 있어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인 김수영 문학상의 2019년 수상자는 우리대학 출신 권박 시인이다. 학부부터 석박사과정까지 긴 과정 문학을 공부한 그에게 본지는 늦었지만 축하 인사를 건넴과 함께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길 요청했다. 수상작이자 첫 시집인 『이해할 차례이다(2019)』에 대한, 그리고 시인 본인 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진제공=권박 시인.

 


  코로나19로 인해 서면으로 진행된 인터 뷰에서 권박 시인은 동대신문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2008년과 2009년 동대신문에서 주최한 ‘동대문학상’의 가 작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그는 “김수영 문 학상을 받고 동대신문 인터뷰를 하니 감회 가 새롭다”고 전했다. 이어서 시인은 “김수영 문학상 수상은 갑작스럽게 초대된 파티처럼 기쁨과 즐거 움이 오래 지속되지만 이후의 일상에 큰 변 화는 없다”며 “그래도 첫 시집 발간은 수상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어마어마한 차이점” 이라고 덧붙였다.

마술사 모자처럼
『이해할 차례이다』의 목차에서부터 알수 있듯 시집 전반에는 ‘모자’라는 소품이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그것이 소재로서 사용되는 방식을 살펴 보면 모자는 이번 시집에서뿐만 아니라 ‘권박’이라는 개인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듯하다.(“나는 마술사의 모자처럼 모자라지 않으면서 모자란 사람이니까”, 수록된 시 「공동체」 중 일부.)

시인은 평소 마술과 추리소설을 좋아해 그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소품을 자신의 시집에도 끌고 왔다고 고백했다. 그가 말하듯 모자는 ‘주목을 받게 하면서 주목을 받지 않게 하기’도 한다. 시인의 시집 역시 마찬가지이다. 책은 꽤나 분량이 긴 171쪽(해설 제외)이다. 이는 ‘누군가의 관심을 끄는데 작용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외면을 당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는 권박 시인이 관심있는 주제인 ‘죽음’과도 연관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먼 이야기 같이 보이는 죽음에 대해 그는 “죽음은 삶보다 구체적이고, 관계보다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해할 차례이다』에는 유독 소통과 대화, 타인에 대한 이해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이는 평소 권박 시인이 줄곧 밝혀 온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고백과 깊이 관련돼 있다. 그가 밝힌 ‘말하기의 미숙함’은 ‘말하기의 억제’로 이어지는 대신 복기와반성, 그리고 다시 ‘말하기’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그는 “말을 잘하지 못해서 억제하려고 노력하는데 말이 막 쏟아져 나와 후회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감정은 글을쓰는데 좋은 원천이 됐다. 그에게 ‘반성하고 정리하는 것의 반복’과 ‘많이 나아지지않는 데서 오는 자괴감’은 ‘더 열심을 내고, 객관적이고 정리된 글을 쓰는 데’에 도움이 됐다.

 

각주를 활용한 시의 발화
세월호 사태부터 미투 운동, 탄핵, 여자연예인 디지털 성폭력 사건 등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커다란 사회 문제들은 권박 시인이 시의 근원을 고민하게 했다. 사회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고, 그와 관련해 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고민였다.

그 결과를 시에 반영해 시인이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장치가 바로 각주다. 다만 『이해할 차례이다』의 각주는 시인이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 화자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발화하는 말들이다.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그가 쓰는 각주는 ‘각주가 아닌 시’이다.

시인의 시에서 찾을 수 있는 철저한 조사의 흔적과 때로 본문보다 긴 분량의 각주 때문인지 그는 지적인 시를 쓴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서 시인은 “사회 문제가 쉬울 순 없잖아요”라며 중요한 것은 “피해입은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고 무의식을 시에 담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우리의’ 문제
권박 시인이 여성과 관련된 사회 문제를 다룬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페미니즘 분기점이 되었던 2016년 이후 점차 이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쓴 시들 중 이번 시집의 대표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마구마구 피뢰침」. 시인은 이 시가 ‘소설 『82년생 김지영』 논란에 대응한 시’라고 밝혔다.

『82년생 김지영』 출간 당시 남성 커뮤니티에서는 “80년대 생들은 차별보다는 오히려 혜택을 받지 않았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이에 83년생인 시인은 자신이 받은 차별의 경험을 풀어놓았다. 이미 상 소감으로 밝힌 바 있듯 권박 시인의 본명 ‘권민자’는 그의 부모님이 아들을 염
원하며 지었던 이름이다. 그는 “시집에서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슷한 차별을 받은 여성들의 역사를 ‘이름’ 중심으로 가공해썼다”고 전했다.

또한 시인은 최근 나타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덧붙였다. 피해자 여성들을 걱정하고 가해자 남성들에 분노하기보다, 참여 인원으로 알려진 ‘26만 명’ 수치를 의심하고 잠재적 가해자로 몰릴 것을 걱정하는 양상을 문제적으로 보았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여성들의 고
민과 피해를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인지 끊임 없이 고민했다”고 밝히며 “지금 이 시기 남성과 여성 모두가 자기검열과 반성, 이해를 기반으로 대화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끔찍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더 넓은 이야기
무겁고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사회에서 아직 권박 시인은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 다음 시집은 이번 시집의 연장선에 있으면서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다하지 못한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세월호, 코로나19, 종교, 성소수자 문제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전했다.

수상작 『이해할 차례이다』를 통해 날카로운 고발, 그리고 반성과 대화의 태도를 두루 보여준 권박 시인. 그가 앞으로 이어나갈 시작(詩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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