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모든 사람이 기도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진다면 과연 좋은 세상이 될까? 한때 축구경기에 골을 넣으면 잔디에 미끄러지면서 두 손을 부여잡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이 감사 세레모니는 당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기도한다고 공을 넣어주고,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축구에 패배하게 한다면, 자신을 믿는다고 전쟁에 이기게 해주고 믿지 않는다고 죽게 한다면, 기도한다고 대학에 합격하게 하고 믿지 않는다고 떨어뜨리는 일을 실제 신이 한 것이라면, 과연 원수도 사랑하라는 위대한 사랑의 신, 대자대비한 부처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를 위해 우주의 모든 법칙을 거꾸로 돌려 달라는 이기적인 탐욕을 들어주는 것이 좋은 신인가? 과연 믿을 만한 존재일까 하는 것이다. 나를 좋아하면 이익을 주고 좋아하지 않으면 벌을 주는 것은 나같은 일개 중생의 이기적 심보인데 과연 신이 그렇게 옹졸할까? 그럴 리 없다. 사실은 신이 그런 것이 아니라 중생인 자신 수준으로 신을 끌어내려 욕망 달성의 도구로 이용하는 ‘자기가 만든 신’이다. 신을 모욕하는 행위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산업사회는 근본적으로 경쟁을 토대로 한다. 이기고 지는 일에 사활을 건다. 사회가 그렇다 보니 학교교육도 협력하고 협동하기보다 이기고 승리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경쟁은 필연적으로 상대와 나를 분리해야 한다. 경쟁이 격화되면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심지어는 전쟁이 발생한다. 전쟁 상황은 상대를 최대한 악마화하고 증오심과 적개심을 증폭시키며 자기 집단의 공동체적 결속을 강화하는데 활용한다. 


불교의 근본가르침은 연기법(緣起法)이다. 모두 연결돼 있으며 서로 관계되고 의존해 존재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경쟁적 상황은 너와 나는 분리돼 있다는 사고를 토대로 한다. 그래서 너의 패배는 나의 승리고 내 이익을 얻기 위해선 너의 손해가 당연한 사회다. 그러나 연결된 세계 속 누군가의 패배와 고통은 결국 나의 고통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불교적 가르침이다. 이렇게 끊어지고 갈라진 사회를 연결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진정한 신이라면 이렇게 상대를 패배시키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이기심과 욕망에 찬 기도를 들어줄 리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 기도를 들어주는 것이다. 서로 연결돼 있다는 불교적 가르침에서 보면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다. 자원을 착취해서 발전해지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이 보존돼 풍요로워지는 것이 인간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이 복을 받는 행위보다 남을 위해 복을 짓는 일, 상대를 위한 일이 곧 연기적으로 내가 행복해지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공부를 자신의 욕망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배워서 남 주는 일이 진정 행복한 삶인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